속도가 아니라 정도가 중요하다
이번 주는 오랜만에 내가 졸업한 대학교에 방문했다.
저번주 대학교 전공 교수님께 미리 연락을 드리고
수업이 없는 날에 찾아뵙기로 했었다.
타대 대학원생의 신분으로 모교에 발을 들인 순간
이유 없는 낯선 공기에 아련함과 슬픔이 밀려왔다.
내 후회, 절망, 기대가 모두 공존했던 이 공간이
이제는 과거로 남아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치열하고 공허했던 4년을 보낸 학교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인생의 일부가 스쳐간 이 학교에 방문한 이유는
대학교가 보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대학원에서 보내고 있는 시간의 가치를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물론 스승의 날에 내가 제일 먼저 떠올렸던
대학교 전공 교수님을 뵙고 싶은 이유가 제일 컸다.
교수님 연구실로 향하는 길은
사회생활로 치여 살다가 고향에 방문하는 느낌을 줬다.
정말 오랜만에 방문한 모교는
학생들이 대부분 수업을 듣고 있는 시간대여서 그런지
한산하니 내향인인 나에게 너무나도 최적의 공간이었다.
내가 떠난 후 대학교 풍경이 많이 변해 있었다.
물론 내가 변했을 수도 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던 건 사실이니.
대학교를 졸업하는 순간에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찼던 내 모습이
피곤함으로 범벅이 된 대학원생의 모습이 되었을 줄은 생각도 못했고,
오랜만에 대학교를 방문한 소감을
지금 나의 보석함인 <브런치스토리>에 쓰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난 교수님이 무서웠다.
수업을 들을 때, 발표를 할 때, 보고서를 제출할 때
항상 긴장을 했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 나를 혼낸 적도, 학생들에게 화를 내신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는데도.
하지만 졸업생이자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버린 후
학교를 방문한 지금
나를 보며 활짝 웃어주시는 교수님을 보자마자
코 끝이 시큰거렸던 사실은 교수님께 비밀로 할 것이다.
교수님 뵈러 오길 정말 잘했다.
대학원이 막아놓은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나는 교수님께 많은 것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다.
반복되는 연구의 고통에 울고 웃었던 시간,
대학원에서 만난 차가운 사람들에게 상처받았던 시간,
첫 논문 발표에서 느꼈던 긴장감.
교수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너무 조급해하지 마. 안 늦었어."였다.
그 말에 내려앉아있었던 기분들이 환해졌다.
어쩌면 늦지 않았다는 말이 가장 듣고 싶었건 걸 수도 있다.
치열하고 조급하게 살아온 3개월의 시간 속
헛되지 않았던 것은 없겠지만
교수님께서는 내가 항상 붙잡고 있는 긴장감과 강박의 끈을
살짝은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교수님께서 10번 넘게 강조하신 말씀을
집에 돌아와 일기에 적었다.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야."
교수님 연구실을 나설 때
어찌나 가기 싫었던지.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드는 순간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심각하게 괴로웠다.
'아, 진짜 가기 싫다.'
모교를 방문한 다음날
대학원에 갔을 때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들을
하나씩 머릿속에 새겨가며
난 다시 나를 바로 잡았다.
속도보다는 정도가 중요하다고.
내가 얼마나 빨리 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언젠가 자랑할 이야기만 잔뜩 가지고
대학원생이 아닌 졸업생 신분으로
교수님 연구실에 놀러 갈 밝은 미래를 상상하며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다음 주에 있을 연구 발표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