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로잡는 방법이란
종강하고 맞이하는 첫 주였다.
페이퍼 제출 직전까지 밤을 꼬박 새운 몸으로 푹 쉬고 싶었지만
안타깝게 이번 주는 스터디가 시작되는 한 주였다.
지친 몸을 억지로 끌고 스터디 장소로 향했다.
전철을 타고 가는 동안 별의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실패하면 정말 끝장이다.'
'괜히 스터디 신청했나?'
특히 마지막 생각은 진한 글씨체로 내 눈앞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머리를 잠깐이라도 쉬게 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절묘하게도 이럴 수가 없다.
쉬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커졌다.
스터디원들과 만나 자기소개와 나이를 공유했는데
예상대로 대부분 나보다 어린 사회초년생들이었다.
그들을 보며 2~3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름 이것저것 준비한다고 시간과 돈을 썼지만
남은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허무함이 밀려왔다.
심지어 스터디원 중에는 로스쿨 졸업생도 있었다.
그 순간 잊고 있던 과거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난주, 대학교 복수전공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을 뵈었다.
15주차의 글에 미처 담지 못했던
내겐 아직도 아물지 않은 커다란 상처였기에 잠시 언급만 하고 지나가겠다.
교수님을 4년 만에 뵈자마자 걱정부터 앞섰다.
내가 로스쿨을 준비했던 걸 알고 계시던 분이라 내심 로스쿨 얘기는 하지 않길 바랐기에.
하지만 내가 타인에게 괜한 배려를 기대한 것인가.
교수님은 나를 보자마자 아무렇지도 않게
"난 네가 대학원 갔다고 해서 당연히 로스쿨 간 줄 알았지."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내가 석사 1학기라고 하자마자
곧바로 "그동안 뭐 했어?"라는 두 번째 한방을 날리셨다.
그저 순수하게 궁금하셨던 것일 수도 있지만 내겐 참 아픈 말이었다.
교수님 말투가 4년 전에 비해 많이 날카로워지신 듯했다.
작년에 은행에 지원했다가 불합격했다는 내 말에도
"은행마다 원하는 상이 있어.
내 제자 중 한명이 예쁘장했는데
별로 노력 안했는데도 붙었더라고."
성적이 안되서 로스쿨에 못갔다고 치더라도
이제는 외모가 안되니까 은행에 못 들어간 건가.
그동안 몇 번의 불합격을 거듭한 내가 받은 상처가
후벼파지는 느낌이었다.
대학원에서 다시 시작하면서 극복했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이런 말들이 날 예민하게 만든다.
기가 팍 죽었다. 스승의 날이라고 괜히 연락드렸다.
내가 알던 따뜻한 교수님은 어디 가신 걸까.
스승의 날을 맞아 찾아뵌 학부 지도교수님이 그리워졌다.
내년부터는 학부 지도교수님께만 연락드리기로 마음먹었다.
페이퍼를 쓰느라 서랍에 잠시 넣어뒀던 이 기억들은
로스쿨 출신 스터디원을 보자마자 다시 나를 인정사정없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제자에게 은행에 들어가라니,
박사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니,
대학원은 빨리 탈출하라는 교수님의 말씀까지 생각났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기죽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미 충분히 저의 기를 죽여 놓으셨습니다. 교수님"
나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며 대학원 추천서 써주셨던
학부 지도교수님께 찾아가 고민상담을 하며 키운 연구에 대한 의욕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정말 진심으로
스승의 날을 맞아 학부 지도교수님 뵈러 학교에 방문했을 때가 그리웠다.
다시 찾아가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결국 지난주 교수님을 뵙고 난 후 생각이 더 많아졌다.
나에게 하셨던 말씀에 상처를 받은 이유는
어쩌면 숨겼던 사실을 밖으로 끄집어냈기 때문일까.
그래서 충동적으로 스터디를 신청한 것이었다.
박사과정을 꿈꾸고 박사과정만 바라보는 것이
지금 나에게 가장 현명한 방법인지,
아니면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다시 사회에 나가 취업준비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앞으로의 나를 위한 방법인지
정말 모르겠다. 혼란스러워졌다.
차라리 정신없이 수업을 듣던 학기 중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종강 후 고민은 더 깊어졌고
생각은 더 복잡해졌고
자존감은 더 낮아진 느낌이 들었다.
더욱이나 로스쿨 합격생을 마주하니
기껏 잊혔던 아픈 기억들이 쿡쿡 찌른다.
열심히 살고자 대학원에 들어갔고
1학기 동안 대학원생으로서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종강하고 나서 나를 돌아보니 공허했다.
지금 내 손에 뭔가가 남아있긴 할까?
우울하다.
대학원생의 생존전략은 이런 나를
다시 바로잡아주는 것이었다.
내 정신을 쏙 빼놓을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스터디만으로는 부족했다.
내일은 다시 개인 연구를 시작하고 지도교수님께 면담 요청 메일을 보내야겠다.
내 흐트러진 정신 좀 제대로 잡아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스터디가 끝난 후 집에 도착했을 때
오후 5시가 넘어 있었다.
왕복 2시간 스터디라... 이게 맞나 싶다.
대학원생으로서 백수는 아니었지만
백수 시절보다 더 촉박하고 막막하다.
생각보다 사는 게 어렵다.
대학원생으로서 맞이하는 첫 방학인데
뭘 먼저 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새벽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 혼란스럽고 힘들다.
다른 대학원생들은 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이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지
누군가 명확한 답을 줬으면 좋겠다.
분명 종강은 찾아왔는데
왜 내 마음은 이렇게 불안하고 바쁜 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아직도 종강했다는 게 거짓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