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으로 살기 : 15주차

대학원생에게 종강이란

by 수잔



지난 일주일 동안은 꿈같은 시간이었다.

난 일주일 동안 가위눌린 듯이 힘겹게 지냈다.

3일 동안 총 세 과목 텀페이퍼를 쓰면서

단 3일 만에 텀페이퍼 세 개를 써야 했다.

정확히 20시간을 책상 앞 노트북과 함께 고립되어 있었다.

하루에 커피를 몇 잔이나 마셨는지,

몇 번이나 일어났다 앉았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원래 나는 하루에 커피 3잔 이상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이걸 대학원이 해내고 말았다.

오늘은 커피 4잔째다.


특히 지도교수님 과목 페이퍼는 나를 가장 괴롭혔다.

시작할 때만 해도 데이터 수집이 예상보다 잘 진행되어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완전히 꼬이기 시작했다.

마치 서울행 표를 끊고 부산행 열차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나를 가장 고생시켰던 페이퍼는 지도교수님 과목이었다.

잠시 정신이 나갔는지 데이터를 모은 것까지는 순조로웠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비유를 하자면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표를 예매했지만

다른 기차에 탑승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미치겠다."




내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를 알았을 때에는

제출 마감 하루 전이었다.


청량한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노동요로 삼아

데이터를 검토하고 인공지능과 함께

반쯤 미친 상태로 페이퍼를 썼다.

인공지능은 정말 내 말을 듣지를 않았다.

계속 다른 소리를 반복하며

내 화를 음악 볼륨 높이듯이 점점 키웠다.

이 친구는 나한테 죄송하다는 말 밖에 못했다.

화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한참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다 문득 시간을 보니 밤 12시였다.

분명히 깜깜한 밤이었는데 초안을 완성하고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다.

창밖은 이미 어렴풋이 밝아지고 있었다.

어쩐지 온몸의 관절이 삐걱거리는 듯 쿡쿡 쑤셨다.


이런 책상과의 사투는 대학생 때도 경험하지 못한 고통이었다.

지도교수님 과목 페이퍼라 그런지

더 잘하고 싶었고 더 완벽하고 싶었다.

과거에 실패했던 내 모습을 떠올려서 그런지

더 열심히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아꼈던 연구 주제이기도 했다.

예전부터 관심 있는 분야라서

지도교수님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연구주제로 도전해 본 거였는데...


이 말은

결국 내가 스스로 불러일으킨 재앙이라는 뜻이다.


이번 주 교훈은 딱 한 문장이다.

'대학원생으로서 무언가를 하려고 손들지 말 것.'

쉽게 사는 게 제일 힘들고 어렵다.




대학원생에게 종강이란 결국 페이퍼 제출 마감일이다.

종강이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페이퍼를 제대로 제출한 건지 걱정이 앞섰다.

마감일이 지났으니 이 걱정들이 다 쓸데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주일 내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인공지능과 실랑이를 벌이며 만들어낸

이 원수 같은 페이퍼를 떠올리면 괜히 긴장되었다.


이 걱정들을 씻어내고자 헬스장에 갔다 왔다.

이제 남은 건 거대한 피로뿐이었다.

간단히 마라탕을 먹고 평소 안보는 드라마를 보고 겨우 잠들었다.


매년 나에게 다가오는 6월은 고통만 안겨준다.

나 오늘은 드라마 보는 거 빼고는 아무것도 안 할 거니까

아무도 메일 보내지 말아 주세요.





중강 한 대학원생 여러분,

한 학기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학사모를 집어 던지는 그 날까지

이렇게 하루하루 버텨봅시다.


수선화 도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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