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지친 지금
개인 연구는 손도 못 대고 인강과 스터디만으로 이미 에너지가 고갈됐다.
겨우 2주뿐인 방학은 터무니없이 짧게 느껴졌고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졌다.
하루하루 발만 동동 구르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종강한 지 좀 되었지만 동기들이 종강파티를 하자며 일정을 잡았다.
아쉽게도 그 단톡방에 내가 있었고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약속 장소로 향했다.
이 날따라 더위는 왜 그리도 가혹했는지.
학부 동기들이었다면 설레는 마음으로 나섰겠지만
족보 사건이며 학기 내내 쌓인 경쟁심으로
정이 다 떨어진 대학원 동기들을 방학에도 마주해야 한다니.
그저 집 밖에 나가기 싫어 연구실에도 못 가고 있었던 내겐 악몽이었다.
동기들과 만나서 일상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부터
각자 연구실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외부인들을 만난 지 3시간 이상이 지나버리면
기가 쫙 빨리는 내향인으로서 나는 슬슬 집에 가고 싶어졌다.
결국, 밤 12시가 넘어서 집에 도착했다.
하필이면 학교에서 진행하는 학회가 내일 있을 예정이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일어나야 했기에 겨우 잠에 들었다.
동기들도 가려나 궁금했지만
아무도 내일 있는 학회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에 아닌가 보다 싶었다.
'나만 가는구나... 나만'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어제 봤던 동기 셋이 각자 연구실 사람들과 와 있었다.
특히 족보 사건의 장본인은 늘 그렇듯 자기 무리 속에서 나를 스쳐 지나갔다.
연구실마다 문화가 다른 건 알겠는데
어제도 봤는데 굳이 모른 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류애를 꺼내 인사를 건네려던 내 손은 뭐가 되는 건가.
새삼 어제 내 연구 주제에 집요하게 물어보던 그 동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나는 그때 이미 여러 번 당해본 전적이 있어 잽싸게 화제를 돌렸다.
속으로 쓴웃음이 났다.
어색한 나는 그냥 노트북을 펼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도 연구실 사람들이랑 왔으니까.
본래 대학원생이란
방학 때도 학교에 머물러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걸까.
할 일은 태산인데 세션은 좀처럼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다.
누군가 연구실 단톡에 한 문장을 써 내려갔다.
"코 고는 소리 들리면 접니다."
공감한다. 나도 그렇기 때문에.
2시간이 지나 학회는 끝났고
더위와의 사투 끝에 집에 도착했다.
이번 주는 할 일은 정말 많은데
외출도 정말 많이 해야 했다.
마음은 급한데 왜 이렇게들 날 찾는 걸까.
방학 동안 잠깐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이제는 개인 연구로 돌아올 시간이 왔다는 걸 안다.
교수님 면담 일정을 잡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고뇌에 빠질 차례다.
지난 2주간 다른 세계에 다녀온 느낌.
결국 이제야 다시 대학원생으로서의 자각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더위에 지친 대학원생의 삶은
여름의 숨 막힘과 졸업을 떠올릴 때의 막막함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구분할 수 없어진 상태다.
그저 오늘도 살아남았다는 사실로 하루를 마무리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