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18년 공부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불편하다
이번 주 역시 쉽지 않은 날들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영어공부를 시작했지만
예상대로 나와 영어는 여전히 서먹한 관계였다.
생각해 보면 18년 동안 영어를 공부한 사람인데
이 사실을 자각한 지금 이 순간이 민망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남들 직장 다닐 시간에 영어책을 펼치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상황이 서글프고 불편했다.
한 단어를 암기하면 두 단어가 기억에서 도망치는 현상은 반복되었고
읽은 문장을 다시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문장을 하나씩 읽다가 어느새 머릿속에 물음표들이 끊임없이 늘어났다.
급기야 내가 읽은 문장을 나조차도 해독할 수 없다는 충격에
방 안에서 혼자 인터넷 어학사전을 검색했고 기어코 울컥했다.
대학원생의 존엄을 걸고도 영어 앞에서 무너지는 자신이 처량하기까지 했다.
나름 수능 영어 1등급 나왔던 사람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싶어 슬픔이 밀려왔다.
과연 난 지난 18년 동안 뭘 한 걸까.
이러한 영어의 참사에서 간신히 회복하려던 차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은 유학병이었다.
박사과정을 밟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향후 취업시장에 다시 뛰어든다고 해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
이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유학 가면 뭐라고 나아질까 하는 허무맹랑한 희망에 빠져
정신 차려 보니 이미 다음 주 유학 상담 일정을 잡아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상담 날짜가 잡히자마자 오히려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이 상담 이후 나는 정말로 유학을 결심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현실 도피를 위한 일시적 충동일까?
아니, 애초에 유학이 아니라 로스쿨에 합격했더라면
지금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끝없는 자기 의심과 미련 사이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 와중에 교수님과의 개인 연구 미팅까지 예정돼 있었다.
사실 교수님은 이 처량한 지도학생이
마음속으로 박사 과정 유학을 고민하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신다.
교수님은 그저 성실히 개인 연구를 진행하는 나를 보고 계실 뿐이었다.
미팅 내내 유학을 고민하는 속내를 감춘 후 돌아오는 길에
다시 현실감이 묵직하게 찾아왔다.
결국은 내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문제들이었다.
영어 공부, 유학 상담, 교수님과의 미팅으로 혼란스러웠던 20주차.
여전히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았지만
확신을 얻기 위한 몸부림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다만, 오늘만큼은 현실 자각의 충격에서 벗어나 조용히 휴식을 취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