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본성은 수강신청 날에 알 수 있다
이번 주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던 수강신청 기간이었다.
학부 시절, 4년 동안 매번 덜덜 떨면서 PC방에 갔던 기억이 생생했다.
대학원까지 와서도 수강신청으로 긴장할 줄은 몰랐다.
'9시 59분'
수업 하나를 잡을 때마다 몇 초 간의 정적이 지속되었다.
서버가 왜 이렇게 느린 걸까?
내 속은 타들어 갔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느려터진 신청 속도가 괜히 원망스러웠다.
먼저 전공과목 3개를 잡았다.
지도 교수님께 여쭤보고 잡은 수업을 마지막으로
수강신청은 끝났다.
원래 대학원 수업은 9학점이 마지노선이라
그 이상 들으면 삶의 질을 포기해야 한다고 들었다.
이번에 잡은 수업은 총 12학점인데
이 4개 수업 중에 뭐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깊은 고민이 앞섰다.
오티부터 들어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시간표를 만들었다.
대학원 동기들 단톡을 보니 다들 전공 필수 과목을 제외하고
어떤 수업을 듣는지 서로 간 보는 중이었다.
먼저 알려주는 사람이 지기라도 하듯이
그 누구도 물어보기만 할 뿐 어떤 수업을 잡았는지 말을 안 했다.
지난 학기 이후로 대학원 동기들에 대한 모든 정이 떨어진 나조차
단톡에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전공 필수 과목이야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수업에서 만큼은 웬만하면 마주치지 말자.
전공을 제외하고 나머지 한 과목은 다른 대학원 수업이었다.
의미 있는 대학원 생활을 보내기 위해 다른 대학원 수업도 들어보려 했지만
학점은 보장할 수 없다는 생각에 걱정이 땅속을 뚫고 내려가고 있었다.
대학원은 학점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고
그렇다고 너무 학점이 낮아도 득이 될 게 없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비싼 등록금내고 최대한 이득이 되는 수업만 듣고 싶었다.
이미 수강신청을 마무리한 마당에
이런 고민들은 오티 듣기 전까지 의미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냥 개강하고 다시 고민하자.
대학생이었던 시절부터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사람의 본성은 '수강신청' 날에 나온다는 것이다.
대학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수강신청 기간에는 연구실 선배의 본성을 알아버렸다.
이번 사건의 배경부터 이야기하자면
다음 학기부터 조교를 시작할 예정이었고
1, 2, 3교시와 4, 5,6교시 수업을 연구실 선배와 나누기로 했었다.
지도교수님께서 우리 둘이 알아서 나누라고 하셨다.
수강신청 당일에 선배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본인은 어차피 수강생으로서, 조교로서 수업 2개를 모두 들을 수밖에 없으니
내가 편한 시간으로 고르라고 했다.
난 조교만 하면 되었기에 당연히 4, 5, 6교시 수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10분 후,
선배는 갑자기 지도교수님께 여쭤봤다며 상황을 바꿔버렸다.
자신이 수업을 들으면서 조교를 해도 된다며
굳이 수업 2개를 전부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처음으로 돌아가 둘이서 수업을 다시 나누자는 말을 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한테는 그냥 1교시 수업은 죽어도 하기 싫다는 말로만 들렸다.
결국 사다리 타기로 정하기로 했다.
운이 좋았는지 내가 4·5·6교시 수업에 배정됐다.
그런데 선배가 갑자기 무효라며 나에게 다시 사다리판을 만들라고 했다.
본인이 처음 사다리 타기를 잘못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정하자는 얘기였다.
정말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나도 참 순하다 못해 멍청했다.
두 번째 사다리 타기 결과는 또다시 나의 승리였다.
4·5·6교시 수업 조교는 이제 확실히 내 몫이다.
적어도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사회적 동물이라면
더 이상 '두 번이나 결과를 뒤집으려 하진 않겠지'라고 믿어보겠다.
다만, 대학원 동기들이 이 선배를 여전히 예쁘고 친절한 ‘천사’로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이렇게 혼돈 속에서 이번 학기 수강신청이 마무리됐다.
정말이지 사람 성격은 수강신청날에 알 수 있다.
사람은 수강신청 날에 본색이 드러난다는 불편한 진실은
대학교나 대학원이나 똑같다.
평소 온화해 보이던 사람도 그날만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공정함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처음부터 그런 건 몰랐다는 듯 행동한다.
심지어 인간관계마저 가볍게 접어 던져버릴 기세로 나와 맞선다.
그 과정에서 나의 인류애 농도는 조금씩 옅어져 간다.
수강신청이라는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알아선 안될 것을 알아버린 찝찝함이 남아있다.
동기들은 물론이고 개강 첫날부터 선배의 얼굴을 보고 싶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