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으로 살기 : 25주차

방학은 없었는데 개강은 있다

by 수잔

이번 주였다.
다음 주가 벌써 개강이라는 불편한 진실에 직면한 때가.


개강하면 지금보다 훨씬 바빠지고 힘들 거라는 불안감,
새로 맡은 수업 조교를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6개월 전부터 이어진 고생이 다시 반복될 거라는 막막함,
그리고 또다시 약아빠진 사람들과 마주해야 한다는 절망.

그러다 문득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방학을 했던 걸까?

나는 몰랐는데...





방학이 있었다면, 그건 분명 나 몰래 스쳐 지나간 게 분명하다.
연구와 스터디, 영어 공부에 시달리다 보니

방학은 이름만 남고 실체는 증발해 버렸다.

떠올려보니 ‘방학다운 방학’이라 부를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볼 시간, 침대에 앉아 편히 애니메이션을 몰아볼 시간,
한적한 여행, 소소한 취미 생활, 고즈넉한 혼술 같은 것들.
이 중 단 하나라도 제대로 해본 게 없었다.
심지어 그 흔한 "심심하다"는 말조차 꺼낼 틈이 없었다.


내가 지난 두 달 동안 했던 건 고작 이랬다.
인공지능과 코딩으로 씨름하고, 교수님과 연구 미팅을 하고,
스터디원들과 모여 미래를 걱정하며,
날 비웃는 듯한 영어 성적과 끝없는 사투를 벌이는 것뿐이었다.

개강이 바로 다음 주라는 사실조차
동기들이 단톡방에서 절규하는 메시지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만큼 두 달이 치열했고, 또 바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대학원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들은 날이면
밤마다 울다 겨우 잠들곤 했다.
돌이켜보니 나 자신을 위해 쓴 시간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이런 나에게 개강이 눈치 없이 찾아온 것이다.
방학도 방학 같지 않았는데 개강은 언제나처럼 정확히 제시간에 찾아온다.
이쯤 되면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방학이란 게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개강이 정말 싫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번 학기부터 수업 조교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 조교 일을 조금씩 시작했다.


수업 자료 준비하다가 도저히 모르겠는 게 있어서

이번 학기에 같이 조교를 맡은 연구실 선배에게 물었다.

저번 학기에 조교를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궁금한 사항에 대해 알려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나도 잘 몰라. 우리 그냥 같이 힘내자.”


아직 개강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너무 막막했다.

실수 없이 잘 해내고 싶은 내 완벽주의 성향이

개강과 동시에 슬슬 나올 때가 온 것이다.






keyword
이전 26화대학원생으로 살기 : 24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