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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루 Jun 17. 2024

2)

그 시절을 살아낸 엄마에게


 30대 중반이 된 내 인생의 파트를 나누자면 적당히 네 파트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파트 원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승주 씨와 호진 씨가 가게를 시작하기 전인 10살 때까지. 이 시기의 나는 대개 마-냥 행복만 했다. 우리 집은 전형적인 보통의, 평범한, 이런 수식어를 마구 갖다 붙일 수 있는, 90년대 한국 가족을 떠올릴 때 딱 떠오르는 그런 4인 가족이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시대의 구호에 딱 적합한,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 그저 단란한 그런 가정. 작은 평수에서부터 시작해 정말 열심히 하루를 살아내며 내 집을, 내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그런 가정.


스물 일곱 승주 씨와 서른의 호진 씨

 

 당시 호진 씨는 펄프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승주 씨는 미싱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초등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며 이 직업마저도 그들이 그 시대에 딱 부합하는, 그 시대를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는 그런 것들이라는 걸 알게 됐다.


 승주 씨는 우리를 낳고부터는 원래 다니던 미싱공장에 다니지 않고 전업주부 생활을 하면서 집에 미싱기를 들여 집안에서 부업으로 미싱을 돌렸다. 삶에 대한 열정이 크고 가족을 지켜야겠다는 다짐이 굳건했던 그녀는 오빠나 나를 낳고 뼈도 다시 아물지 않았을 그 시기에도 부단히 미싱을 돌렸다고 했다. “엄마는 너 거의 낳자마자도, 너 업고도 베란다에서 미싱 돌렸잖아. “라고 말하는 승주 씨의 이 말이 과장이 아닌 걸 안다. 정말로 내 몇 안 되는 아기 시절 기억 속에는 베란다에서 미싱 돌리고 있는 승주 씨, 거실로 나와 그런 승주 씨를 보다가 혼자 거실에 놓인 큰 쿠션 위에 눕는 내 모습이 선명하다. 이건 쓰려고 보니 과장인 것 같아 진짜인지 헷갈릴 정도로 당황스럽긴 한데 포대기에 업혀 승주 씨 등 위에서 미싱 하는 걸 구경했던 어린 내 모습도 마치 옛날 영화 보듯 제삼자의 시선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참 신기하게도 이때의 기억들은 지금 유행하는 밈에 빗대어 말하자면 그날의 온도, 습도, 공기가 다 완벽할 정도로 따뜻한 풍경으로 남아있다. 마치 영화 인트로에서 햇살이 착 드리우고, 살짝 열어둔 베란다 창문으로 완벽한 타이밍에 바람이 살랑이는 덕에 커튼이 잔잔한 파도처럼 일렁이고, 그 옆에서 승주 씨가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미싱을 돌리고 있으며,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평화롭게 안정감을 느끼고 쿠션에 누워 가만히 잠에 드는. 몽환적이고 평안한 그런 장면.


 지금 생각해 보면 승주 씨는 뼈가 쑤시는 상황이었을지 모르겠는데 내 기억 속 풍경이 이런 것을 보니 나는 눈을 뜨면 항상 승주 씨가 함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었나 보다. 이렇게 참 애석하게도 태어날 때부터 나는 이기적일 만큼 나의 행복이 먼저였고 나의 엄마, 승주 씨는 자신보다도 자식이 먼저였다. 그것이 우리의 초기 설정값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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