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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의 첫 미술시간

by Xero Mar 11. 2025

미술학원 등록 후 첫날, 조용하게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재빨리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구석자리를 찾아 앉았다. 평소 눈치를 많이 보는 나는 주위를 둘러보니 나처럼 늦게 미술을 시작한 사람도 있고 앳된 피부를 가진 어린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가장 궁금한 건 이제 와서 가능성이 있느냐였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비슷하거나 더 연배가 많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고 대충 혼자 합리화하였다.


첫날은 펜의 종류와 특징, 펜 잡는 법, 종이 질감별 특징 등 가장 기초적인 내용과 전망이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그림을 그릴 땐 공부할 때처럼 펜을 잡는 법과 펜을 눕혀 잡아 길게 선을 그릴 수 있는 그립법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설명해 주신 대로 따라서 그려봤는데, 펜을 눕혀서 잡는 그립법이 익숙하지 않아 왠지 모르게 손이 떨리고 선이 마구 휘게 그려졌다. 채색할 때도 적합한 방법이기 때문에 반드시 친숙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지우개는 그냥 쓱싹쓱싹 지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지우는 방법도 있다는 것은 예상 못했다. 몇 번 쓰면 둥글게 무뎌지는 지우개는 연필을 계속 깎아서 쓰듯이 지우개도 디테일한 작업을 위해 잘라서 사용해야 하고, 질감 표현이나 톤 조절은 지우개를 문지르는 방법이 아닌 '콕콕' 찍는 방식으로 지울 수 있다. 방구석에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내 귀에 딱 꽂힌 건 '프리랜서, 게임 원화가' 직업에 대한 설명이였다. 처음에는 이거 하나를 보고 학원에 등록했기 때문이다. 미술을 전문가에게 정식으로 배우는 게 흥미롭고 즐거웠지만 편으로는 마음은 불안했다. 20대가 아닌 나는 선생님에게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을 깨닫게 되지만 말이다.


"눈앞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나중에 다시 배우겠지만 사람의 눈은 생각보다 왜곡을 많이 하거든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더 좋은 작품을 그려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연습 중에서도 계속 맴돌았다. 생각해 보니 살면서 선입견이 많다,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여러 차례 들어본 것 같다.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지만 이제 나 자신을 알아볼 기회가 찾아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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