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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에서 알게 된 사실

기분: 해(sunny)

by 아로미

‘행정복지센터’


80년대 생인 나에겐 동사무소가 익숙한데 주민센터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행정복지센터로 불린다.

난 고객센터나 상담사와 전화하기 전엔 준비가 필요하다.

그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반, 아쉬운 소리나 싫은 소리 하기 싫은 마음 반이 섞여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콜센터에 전화하지 않고 찾아볼 수 있는 정보를 찾아보다가 도저히 알 수 없을 때 전화한다.


행정복지센터에 전화를 해야지 하면서 급하지 않으니까 미루다가 오늘은 꼭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마음의 준비를 마친 후 어제 적어놓은 수첩을 꺼내어 의자에 앉았다.


유방암 수술을 하고 2년간 월1회 병원에 가서 생리를 멈추게 하는 난소억제주사를 맞아야 하고 6개월에 한 번씩은 정기검진도 있으며 수술한 해에는 병원을 더 자주 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물리적으로도 하루 8시간 근무가 어렵고 신체적으로도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니 유방암 진단 후 2년쯤 지난 후에 사회로 다시 한 발짝 나가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은 수입이 없어도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산정특례자 중증으로 등록되어 있어 비싼 병원비도 국가에서 95% 지원해 주고 통장에 저축해 둔 돈이 있기에


지금처럼 야금야금 통장의 돈을 까먹으면 2~3년 정도 가능할 것으로 견적이 나왔다.


그래서 생각이 미친 게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 조건대상이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할 때, 장애인이면서 기초생활수급자인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선정하는 것은 관할 행정복지센터 소관이라 아는 정보가 없었다.

홈페이지 조직도를 보니 K주무관이 담당자였고 수신호가 2번 울리자 목소리에서 젊음이 느껴졌다. 많아야 30대 초반이려나 싶었다.


“안녕하세요? K주무관님께서 수급자, 차상위 담당자 맞으시나요?”


“네.”


(목소리에서 차가움이 느껴졌다.)

“제가 지금 유방암에 걸려 최소 2년 동안은 수입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어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향후 수급자나 차상위 신청 시 궁금한 점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수급자, 차상위가 되기 위해선 집과 자동차를 포함하여 가지고 있는 재산이 8천만원이라고 하는데 맞나요?”


“아니요. 사람마다 다 기준이 달라서 딱 그 금액이라고 말씀드리긴 어려워요.”


“그래도 대충 말씀드리자면, 지금 은행에 넣어둔 돈은 얼마 있으세요?”

단도진입적으로 물어보아 당황했지만 실제 내가 가지고 있는 돈 보다 약간 낮춰서 말했다.

“집 보증금은 어떻게 되세요?”


“3천만원이요.”


“전세이세요?”


“아니요, 월세에요.”

“부채는 있으세요?”


“아니요.”

“차는 있으세요?”


“네”


“언제 구입하셨어요?”


“2021년 12월 이요.”

“금액은요?”


“천 오백만원 정도요, 경차에요.”


“차 있으면 안 되세요.”

“차 구매한 지 10년 지나면 자산으로 50%정도 쳐주는데 그렇지 않으면 100%로 산정되어서 수급자, 차상위 신청 시 무조건 탈락이세요.”


“대충 계산해 보니 예금과 집 보증금 다 합쳐서 7천만원 정도 되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럼 제가 차를 처분한 후 수급자 선정 이후에 500만원 정도에 중고차를 사면 어떻게 되나요?”


“그럼 다시 재산을 환산해야 되는데 차가 있으면 우선 불리하세요.”


“아, 네. 또 궁금한 점은 수급자나 차상위 신청일 기준으로 3개월 간의 재산을 확인한다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아니요.”

(아니, 인터넷은 믿을게 못 되는 건가? 나름 찾아본다고 했는데 다 아니라고 한다.)

“1년 치 통장을 봐요. 이건 저희가 아니라 구청에서 하고요.”

“그럼, 전 지금 빨리 수급자가 되고 싶어서 문의를 드리고 있는 건데 1년치 통장만 본다면 그 전에 제 통장에 있는 돈을 친구나 부모님께 조금씩 이체하여 7천만원으로 만들어 놓아도 되나요?”


“음, 그건 구청에서 어디까지 확인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거액의 돈이 같은 사람에게 계속 송금이 되었다면 그것도 수입으로 보긴 합니다.”


“네.”


“마지막으로 수급자일 경우 소득이 있으면 수급자 탈락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2024년 기준으로 수급자를 유지하고자 하려면 한 달 수입이 어떻게 되나요?”


“선생님은 약 백만원 정도 수입으로 예상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행정복지센터 K주무관님이 처음 전화를 받을 땐 말투가 딱딱했는데 통화 목소리로 가늠이 가능하듯이


젊은 사람이 유방암 환자가 되어 앞으로 소득이 없어 돈 걱정을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내가 안쓰러운지 많은 질문에도 성심껏 답변해 주었다.


마지막에는 신분증을 가지고 행정복지센터에 찾아와서 상담을 받아보셔도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되려면 자차가 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닝을 구매한 지 이제 만3년 밖에 안 되었는데 훗날 중고차시장에 팔 생각을 하니 울적해졌다.

차 살 때만 해도 10년은 탈 거야! 했는데...


다시 뚜벅이 생활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그럼 다음번엔 대중교통이 편리한 곳으로 이사를 가야되나?


내 인생에 차가 없어질 거라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렇지만 이렇게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에 대해 깊숙이는 아니지만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서 많이 알게 된 하루였다.


내 통장에 7천만원이 되면 행정복지센터에 똑똑똑 문을 두드려야겠구나.

그런데 이건 경기도 기준이고 지방은 더 낮은 걸로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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