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해(sunny)
유방암 수술 후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슬기로운 집콕 생활’ 이 시작되었다.
10년간 일하면서 여름휴가를 제외하곤 일주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백수 이겠다 기약 없는 휴가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파워 계획형인 나는 집에서 그냥 쉬는 꼴을 못 보는 성격으로 하루 단위로 할 일을 핸드폰 노트에 적어 알차게 채워 나가려고 노력했다.
<아침 8시> 기상
밤새 착용하고 있던 대학병원에서 준 유방암 환자용 브라와 실리콘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잡아주는 ‘윗밴드’를 풀어 가슴이 숨을 쉬게 해준다.
침대를 정리하고 집안의 커텐을 걷어 해가 집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아침 8시 20분> 샴푸&샤워
매일 하던 샴푸와 샤워가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팔 올리는 게 힘들어 이틀에 한 번 하기로 했다.
다행인 건 3월 말이니 하루 쯤 씻는 걸 건너뛰어도 괜찮았다.
머리를 말리는 드라이기가 원래 이렇게 무거웠나?
수술한 오른쪽 팔에 힘이 안 들어가서 반대편 왼손으로 드라이기를 잡고 쇄골까지 내려 오는 머리를 말렸다.
평소 40분 이면 끝날 것이 1시간이 되어서 끝났다.
<아침 9시 20분> 청소
머리카락은 매일 줍고 걸레질은 이틀에 한 번 했다.
마대걸래를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꾸어서 해 보다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오른손으로 바꿔 잡은 후 힘을 최대한 들이지 않고 했다.
그러니 깨끗이 닦이진 않았으나 당분간 못 본척 흐린눈으로 살기로 했다.
<아침 9시 30분> 아침식사
이제 아침을 먹어볼까나~ 아침부터 샤워하고 샴푸하느라 에너지와 시간을 너무 많이 썼다.
샐러드를 매끼니 먹겠다고 나무로 된 샐러드볼을 거금 18,000원을 주고 사왔다.
양상추, 양배추, 파프리카, 당근, 오이, 블루베리, 2가지 제철과일을 넣고 각종 견과류를 올린 후 올리브유를 두 바퀴 돌려준다.
매끼 올리브유만 뿌려서 먹는 게 지겨워서 새콤함이 첨가된 소스도 추가로 구매했다.
어제 저녁 3일치 먹을 계란을 미리 삶아 놓아서 바로 껍질을 까 접시에 담았다.
아프기 전엔 밥을 빨리 먹는 편이었는데 이젠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다.
<아침 10시 30분> 아침운동
원래도 출근 전엔 10분 정도 스트레칭 겸 요가로 가볍게 몸을 풀고 집을 나섰는데 시간을 3배로 늘려 30분 동안 운동 한다.
항상 하던 동작들이 절반 밖에 안 되어서 속상하다.
‘유방암 환자의 시기별 운동법’ 유튜브를 재생하고 따라한다. 매일 하니 1주일이 지나면 영상을 틀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였다.
쭉쭉 늘어나는 탄력밴드가 없었는데 굳어 있는 수술 부위를 늘려주고자 탄력밴드를 구매했다.
아령은 한 손에 2kg 들었는데 지금은 어림도 없어서 500ml 생수에 물을 반만 담아 팔 근육 운동을 시작하여 1kg 까지 늘렸다. 2kg은 아직도 무리다.
<아침 11시> 오늘의 할 일- 글쓰기
정신이 가장 맑은 아침에 글을 쓰기 위해 식탁 겸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유방암 진단 후 겪었던 일을 기록하는데 시간 순서대로 쓰다가 주제별로 묶어도 보다가 결국 처음으로 돌아와 시간 순서대로 써 내려갔다.
이 글이 다 완성되면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내 자신과 주변 모든 게 새로웠기에 글을 쓰다보면 벌써 1시간이 다 되어서 아쉬웠다.
욕심내서 더 쓰고 싶었지만 수술한 팔에 무리가 갈까 싶어 스스로 약속한 시간이 되면 노트북을 접었다.
그러나 이것도 몇 달, 시간이 흐르고 단조로운 일상이 지속되면서 오늘은 뭘 써야 하나 고민이 깊어갔고 그럴 땐 써 놓은 글을 다듬었다.
그리고 꾸준한 글쓰기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될 무렵 브런치스토리 작가에 합격하여 약속한 일요일에 글을 올리면서 다시 마음을 잡고 글을 써 내려갔다.
<오후 12시> 점심식사
매 끼 샐러드는 고정이고 오후에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운동을 하기에 되도록 붉은고기는 피하고 닭가슴살을 먹었다.
요리를 못하는 나는 모든 채소를 몽땅 익힌 후 고추장을 넣어 비빔밥으로 해 먹었다.
<오후 1시> 점심운동
살려고 운동하는 시기로 온 몸이 다 뻐근해서 운동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대신 아침보다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필수운동만 하였다.
<오후 1시 20분> 낮잠
밥도 먹고 운동도 했으니 의자에 앉으면 눈이 감긴다. 졸음을 참지 말고 침대로 가서 누운다.
잠깐 달콤한 잠에 빠질 때도 있었고 눈만 감고 멀뚱멀뚱 있을 때도 있었다.
암환자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고 하여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전기장판을 틀었는데 작동이 잘 되었다.
<오후 2시> 오늘의 할 일- N마트, 도서관, 공원산책
최소 2주는 운전을 하지 말라고 하여 장보러 갈 때 차가 없는 게 가장 불편했다.
중소형이면서 체인점인 N마트는 빠른 걸음으로 10분 거리에 있어 가까운 편이었으나 건강한 왼쪽 손으로 들고 올 수 있을 정도로만 장을 봐야 했다.
엄마의 조언대로 수술 전에 무게가 나가는 쌀, 식초, 세제, 섬유유연제와 식재료 중 고기와 생선은 미리 사 놓아서 냉동실에 얼려 놓았다.
바나나 한 다발 사면 이미 무게를 꽤 차지 하여 다른 과일 사는 건 다음 날 또는 그 다음날로 미뤄야 했다.
일주일에 적으면 2번 많으면 3번 똑같은 마트에 갔는데 되도록 머리를 감은 날에 외출하려고 했지만 그렇지 못한 날에는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갔다.
마트에 가지 않는 날에는 집 앞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는 공원을 걸었다. 수술한 3월을 지나 꽃이 피는 4월은 걷기에 참 좋았다.
5월과 6월이 되면서는 날씨가 더워졌고 슬슬 꽤가 났다. 결국 6월 말, 밖에서 운동하기를 포기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공원산책을 하지 않고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은 걸어서 10분이면 가기에 마실 삼아 다녀오기 딱 좋았다.
<오후 5시 30분> 저녁식사
일찍 자는 습관을 들이고자 저녁은 가볍게 준비해서 먹었다.
역시나 샐러드는 빠지지 않고 고기보다는 소화가 잘 되는 생선을 찌거나 익혀서 먹고 밥 대신 고구마나 감자를 쪘다.
계란은 하루 2번 먹었는데 난각번호 2번을 고집하다가 지갑이 다 털릴 거 같아 4번도 가끔 먹는다.
<오후 6시> 오늘의 할 일- 엄마와 통화 하기, SNS하기
엄마와 따로 사는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이틀에 한 번 꼴로 전화를 했다.
그냥 오늘 뭐 했는지 일상을 나누고 엄마는 먹고 싶은 반찬 뭐 있는지 물어보며 만들어 놓았으니 가져가라는 이야기였다.
유방암 신약이 나왔다는 뉴스 헤드라인을 클릭해서 유심히 보고 나면 곧 암도 정복할 날이 오겠구나! 싶었다.
인스타그램도 하고 보고 싶었던 영상도 보고 즐거운 휴식시간을 갖은 후~
<오후8시> 저녁운동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침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저녁 운동으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오후9시> 잠들기
수술 직후엔 체력이 떨어져서 9시면 비실비실 되었는데 지금은 10시 쯤 침대로 간다.
오늘 하루 끝~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으로 따분하다고 느낄 때면 카페로 고고씽~!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퇴원 후 첫 진료를 보러 천안 S대학병원에 내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