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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수술 후 한 달, 운전대 잡기

기분: 구름(cloudy)

by 아로미

아프지 전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10분 정도 스트레칭 겸 요가를 하여 굳어있던 몸을 풀어주며 잠에서 깼다.


이제는 당연하게 되던 자세들이 안 되면서 여전히 몸이 찌뿌둥하다.

유튜브에서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스트레칭’ 영상을 하루 3번씩 한 달을 따라 하니 수술 전에 비해 80% 정도 팔이 올라갔다.


교수님께서는 단거리 운전은 수술 후 2주 뒤부터 가능하다고 하였으나 혹시 수술 부위가 잘못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1달 뒤에 운전을 시작했다.

그동안 운전은 못하는데 집에서 꼬박 세끼를 해 먹으려니 자주 장을 보러가야 해서 불편했다.




1달 만이다.

그리웠던 모닝, 그리고 차 방향제 향기


운전대를 잡고 집에서 편도 20분 거리의 H대형마트로 향했다.

겨드랑이는 팔 보다 더디게 회복하여 50% 정도 감각이 돌아왔다.

겨드랑이에 물파스 바른 거 마냥 얼얼한 느낌인데 누가 꼬집어도 아픈지 모를 거 같았다.

여기에 실리콘이 위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복대 처럼 가슴에 윗밴드를 꽉 잡아놓았으니 감각이 더 무뎠다.


신호가 노란불로 바뀌어 앞차와 간격을 확보한 후 이 정도 쯤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되겠지 싶었는데 한 박자 늦은 느낌이었다.


다음 신호에선 평소 보다 조금 빠르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겨드랑이와 팔의 감각이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 느꼈다.


이미 차는 도로에서 달리고 있고 마트에 도착할 때 까지 내내 긴장하면서 갔다.

오랜만에 느껴 본 초보운전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오늘 H대형마트에 오기 전엔 집 근처 마트에서 수술하지 않은 왼손으로 들고 올 수 있을 정도로만 사서 걸어오곤 했는데


오늘은 차도 가지고 왔겠다 사고 싶은 물건들을 카트에 마구 담았다.

계란 30개 짜리 한 판 사고 달콤한 파인애플향이 코를 자극하여 하나 사고 고구마도 할인한다고 하니 한 박스 사고 이것 저것 담으니 6만원이 나왔다.

예전 같으면 한 박스에 담아 양손으로 들고 왔을 텐데 이젠 오른손은 무거운 것을 들면 안 돼서 장바구니 두 개에 나눠 담았다.

그리고 차에 내려 장 본 것을 집으로 옮길 때도 왼손만 쓰다 보니 두 번 왔다 갔다 했다.

교수님께서 알면 노하시겠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오른손으로도 잠깐씩 무거운 것도 들고 가끔은 박스에 담아 양손을 이용하기도 한다.




며칠 뒤, 유방암 수술 후 계속 착용하고 있는 서지브라에서 스포츠브라로 바꿀 시기가 왔다.


서지브라는 앞지퍼가 있어 입고 벗기가 수월한데 시중에 파는 대부분의 스포츠브라는 앞 지퍼가 없다.

아직은 브라를 위로 입고 벗을 만큼 팔이 온전하진 않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입을 앞지퍼가 없는 스포츠브라를 구매하고자 했다.


유방암 환자들이 가입되어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이 난 U브랜드의 스포츠브라를 구매하러 차를 가지고 수원역으로 갔다.


일본 제품이어서 그동안 불매운동 했었는데 이번만큼은 예외다.


그리고 U브랜드는 입어보고 구매할 수 있기에 실패할 확률이 적었다.

생각해보니 성인이 되고 나서 스포츠브라를 한 적이 없었다.


30대가 되면서 직장에서 8시간 이상 있다 보니 편안한 브라를 해볼까 하여 한 번 착용해 보았는데


가슴을 받쳐주는 와이어가 없어 가슴이 크진 않지만 쳐져 보여 마치 노브라인 거 같아 계속해서 와이어가 있는 브라를 착용하게 되었다.

피부색과 비슷한 베이지 색상의 S와 M사이즈 두 개를 가지고 피팅룸에 들어갔다.

아직 수술한 오른쪽 가슴의 붓기가 다 빠지지 않아서 M사이즈를 먼저 입어보았다.




아뿔싸!


아직 팔을 위로 올리면 아픈데 그 생각을 하지 못하고 평소처럼 입었다.


입는 거 까진 괜찮았는데 벗으려고 하니 벗어지지가 않는다.

어쩌지? 그냥 입고 간다고 할까?


브라를 벗으려고 안간힘을 써서 얼굴이 빨개졌고 몸을 최대한 숙여 브라를 벗었다.

착용해 보고자 가지고 온 S사이즈는 입어 보지도 않은 채 피팅룸에서 나왔다.

그 동안 브라의 기술이 점점 발전했는지 입고 벗을 때 힘들어서 그랬지 입은 게 맞나 싶은 편안한 착용감과 심미감도 만족스러웠다.

가격표를 보니 29,900원이라 써 있다.


아프지 않았다면 슬며시 내려 놓았을텐데...

지금까지 브라 1개에 19,900원 이상 짜리를 사 본 적이 없었다.

우선 1개만 사서 입어 본 후 좋으면 하나 더 살 생각으로 구매했다.




2주가 흐른 후, 5월 초


지금 입고 있는 U제품의 브라가 좋긴 한데 사람 마음이 또 그렇지 않나?

이렇게 많은 제품들이 있는데 다른 브라도 해 보고 싶고 최소 2개는 있어야 돌려가며 입을 수 있었다.

지난 번 갔던 H마트에 다시 방문했다.

곧 여름이 와서 더울 텐데 통풍이 잘 되는 지, 금액은 적정한지, 어깨끈이 너무 얇지는 않은지 등 비교하며 3개를 피팅 한 후 최종적으로 1개를 선택했다.

세탁기에 돌려도 늘어나지 않고 어깨끈이 잘 밀착되어 착용감이 좋은 건 많은 사람들이 추천했던 U제품이 압승이었지만 사계절용이다 보니 한여름에 입기엔 더운감이 있었다.


H마트에서 산 브랜드 없는 제품은 통풍과 가격면에서 만족스러웠고 착용감은 보통이었다.


하지만 세탁기에 몇 번 돌리니 헤졌고 등판에 써 있는 로고와 사이즈 정보의 글씨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M사이즈 브라 두 개가 생겨서 하나를 빨면 하나를 입는 생활패턴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수술한 가슴의 붓기가 거의 다 빠지면서


S사이즈를 사야겠다고 느끼는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수술 후 3개월이 평생 간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은 내게 중요한 시기였다.

다시 U매장에 방문하여 S사이즈 스포츠브라를 구매했다.

가격은 여전히 29,900원 이었다.


한 번 브라를 사면 계속 입을 줄 알았는데 몸의 변화에 맞춰 뭔가 계속 물건을 사는 느낌이다.

브라는 시작일 뿐


유방암 환자가 되고 나서 물건들을 참 많이 샀다.

- 다음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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