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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통신관리원

기분: 해(sunny)

by 아로미

유방암 수술 후 입원 하는 3일 동안만 엄마와 같이 있고


퇴원 후에는 수원집으로 와서 나 혼자 재활운동을 하고 손수 밥을 해서 먹었다.

천안에 사시는 엄마는 내가 혼자 사는 수원집에 와서 당분간 같이 살며 밥도 해주고 머리도 감겨주겠다고 하는 걸


난 극구 괜찮다고 사양하였다.


우리집에 남는 방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엄마랑 같은 공간에 있으면 싸울 확률이 100% 아니 1000%였다.


엄마는 아쉬워했지만 결국 내 의견대로 혼자서 생활하기로 했다.


(야호!)




대신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마다 전화 통화 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통화는 짧으면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 정도 했다.


아프기 전에는 엄마와 일주일에 1~2번, 10분 정도 통화했었는데


엄마가 우리집에 오고 싶은데 못 오게 한 게 아무래도 마음이 쓰여 나도 나름 노력한 거였다.


카톡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오래 전화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나는 처음에는 엄마말에 맞장구도 쳐주고 내 얘기도 했는데


“응” 만 하는 짧아지는 대답에 엄마는 눈치를 채시고 “이제 전화 끊자고?” 라고 말한다.

그럼 나는 “응, 오늘 통화 많이 했잖아, 내일 또 하자.” 하고 엄마 보다 먼저 통화종료 버튼을 잽싸게 누르는 나쁜 딸이다.


한 번은 대답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니 엄마 왈 “전화 끊은 거야?” 라고 말해서 빵 터졌었다.




평소와 같이 엄마와 통화하는 밤


엄마는 뜬금없이 “통신관리원” 이라는 말을 꺼냈다.


이제는 비대면으로 물건을 사는 온라인쇼핑 시장이 커졌고 부모와 자식 간에 명절 날 이외에는 만나지 않고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게 대세라며 유방암 수술 후 관리를 잘 하고 있는지 매일 전화로 체크하겠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나서 역시 유쾌한 우리 엄마네 싶었다.


‘통신관리원’ 의 본래 뜻이 궁금하여 찾아보니 통신 시설을 유지·관리하고 장애를 감시·복구하는 업무라고 적혀있다.


즉, 엄마는 정확하게 말하면 ‘통신감시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한 동안 엄마는 ‘통신관리원’ 이라는 단어에 맛 들려서 내가 전화를 받으면 ‘통신관리원’ 입니다. 라는 말로 시작하는 귀여운 박여사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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