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방암 치료법 논쟁

기분: 비(rainy)

by 아로미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수술을 할 때도, 그리고 회복할 때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누구는 주치의 앞에서 펑펑 울었다는데 나는 암 진단을 받고 덤덤했다.


혼자서 진단 받은 후 한 번 울고, 수술을 앞두고 복잡한 마음에 두 번째 울음을 터트린 것이 끝이었다.




지금까지 삶을 돌아보면 난 아픈 거를 잘 참는 편이었다.

20대 후반, 몸이 으슬으슬 춥더니 감기기운과 함께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 날은 하필 1박 2일 회사 워크숍이 있었다.


급한 불을 끄고자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서 먹고 워크숍에 참여하였고 저녁이 되어 공식 일정이 끝났다.

이후 술과 함께 한 뒤풀이에는 도저히 참여를 못하겠어서 먼저 숙소에 들어갔다.

잠을 자는 동안 식은땀으로 옷이 흠뻑 젖었다.


워크숍이 끝난 다음날 아침, 병원으로 직행했고 의사선생님께서는

“이미 감기가 다 나아서 오셨네요. 지금은 열이 없어요.”

“네?”


“아직 감기기운이 있는 거 같은데요...”


“그렇게 느끼실 수는 있는데 집에서 잘 먹고 잘 쉬면 나으니 약 처방은 안 해드릴게요.”

허무하게 병원을 나오고 나니 병원을 들렸다 늦게 워크숍에 참석했어야 했는데 미련하게 아픈 걸 참아가지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아픈 건 참을 수 있는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삐걱거려 마음이 아픈 게 내겐 더 힘들었다.




유방암 수술 후, 교수님께서 제시한 치료는 초기이기에 항암 8회 중 절반인 4회를 우선적으로 하고


먹는 호르몬 억제제 알약을 5년간 복용하면서 난소억제주사를 2년 간 맞는 거였다.

엄마는 20년 전 아빠의 대장암을 가장 가까이 지켜보면서 줄곧 항암치료에 대해 반대하셨다.


아빠는 발견 당시 대장암 4기로 손을 쓸 수 없어 그냥 있어도 괴로우니 항암약을 쓴 거라고


마지막 가는 길에 고통만 겪다가 간 거 같다며 엄마 본인도 암에 걸리면 항암은 안 할 거라는 말을 하였다.

세월이 흘러 아빠 없이 산 10년쯤 되니 엄마가 유방암에 걸렸다.


다행히 순한암으로 분류되어 부분절제 후 항암 없이 방사선 치료만 하셨다.


엄마도 나와 같은 호르몬성 유방암으로 여성호르몬 억제제를 처방 받았는데 작은글씨로 앞뒤 빼곡하게 적혀있는 부작용을 읽어보신 후, 몇 번 먹다가 혼자 임의로 중단하였다.

천운인건지 아니면 엄마는 재발이나 전이가 될 사람이 아닌 건지 8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 일 없이 지내신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내게 항암치료를 안 해도 약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며 자신을 증명해 보였다.


항암치료에 있어서는 나도 엄마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유방암 2기의 경우 재발과 전이 될 확률이 20%인데 항암치료를 하면 10%로 줄어든다고 하였다.

항암은 다시는 유방암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치료제가 아니라 재발과 전이의 확률을 줄여주는 확률 싸움이었다.


항암치료는 암세포를 죽이기도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세포들도 죽이기에 면역력이 약해질 것이다.


몸에 좋다는 음식과 영양제, 주사를 맞으며 삶을 연장 시키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다 마친 후에도 죽을 때 까지 남는 후유증으로 고생한다는 사람의 후기를 들으니 무서워졌다.




항암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거에는 엄마와 내가 동의했으나 먹는 여성호르몬 억제약과 난소억제주사를 맞는 거에 대해서는 입장이 달랐다.


나는 항암을 안 하니 약을 먹고 주사는 맞아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엄마는 여성호르몬을 억제하면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서 힘들 거라고 하였다.


지금도 갱년기로 힘들어 하는 엄마는 변덕스럽게 더웠다 추웠다 하고 잠을 깊이 들지 못 하며 골다공증이 빨리 와서 각종 약으로 버티며 살아가야 한다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재발, 전이 때문에 그 독한 약을 먹는 거에 대해 반대하였다.


계속 각자의 의견만 주장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급기야 엄마는 “딸, 암 아니야.” 라고 내뱉었다.


“엄마, 무슨 소리야. 병원에서 암이라고 판명했고 수술까지 했는데.” 라고 말하였다.


수화기 속 엄마는 울면서 딸의 유방암을 부정하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항암치료를 안 하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먹는 치료약도 주사도 안 할 거라 생각했다는 거였다.


지난번 진료 시, 교수님께서는 항암을 하지 않겠다는 나에게 다시 생각해 보라며 엄마와 나를 돌려 보냈었다.


진료일을 3일 앞두고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었다.


매를 빨리 맞기 싫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내가 먼저 말을 꺼내어 이 사단이 났다.


“이번 진료는 나 혼자 갈게. 엄마랑 의견이 다른데 같이 가서 엄마가 딴 소리 하면 어떻게 해”


“알았어, 혼자 가.”


그 전에 엄마는 나를 만나면 직접 기른 무농약 채소들을 한 움큼 줄 생각으로 들떠서 이건 어떻고 저렇고 얘기했었는데


내가 혼자 진료를 보겠다고 하니 만나지 못하고 반찬도 못 주게 된 상황이 되었다.

엄마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게 좋을 거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어서 “앞으로 내 몸 상태가 어떤지 안 물어 봤으면 좋겠어


아프다고 하면 엄마 말 듣지 않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니 그런 거라고 말할 거니까” 라며 독한 말들을 쏟아냈다.

휴대폰이 뜨거워졌고 엄마와의 통화 시간이 1시간이 넘어가면서 내가 먼저 휴전을 선포했다.


“엄마, 우리 전화 한지 1시간이 넘었어. 피곤해.”


“그래, 알았어.” 라며 힘없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내겐 엄마와의 싸움 후 회복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는데 역시나 엄마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니 문자가 왔다.

딸 마음만 아프게 한 거 같아 미안

날씨가 따스하다. 꽃구경 나갔어?

여기는 벚꽃이 만발해서 예쁘네

엄마는 딸이 어떤 결정을 하든 기쁘게 응원할게.


마트에서 장을 보느라 휴대폰 진동을 느끼지 못해 답문이 늦었는데 엄마는 혼자서 속을 끓고 있었다.

딸이 아직도 화가 많이 나 있어서 답장을 안 했는 줄 알았다는 거였다.


그 날 저녁 엄마는 내게 통화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고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 전화를 받았다.


난 사실 엄마 말을 믿지 않았다.


분명 어제 까지만 해도 모든 치료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 손바닥 뒤집듯 오늘은 딸이 어떤 결정을 하던지 기쁘게 응원한다며 내 편을 들어준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엄마의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교수님 만나서 “약 먹어볼게요.” 라고 말하라며 그래야 나중에 약을 중단하기 수월하지


“약 먹을게요.” 라고 말하면 나중에 약을 못 끊는다나 뭐라나.

약을 먹다가 부작용으로 힘들어서 못 먹겠으면 안 먹어도 된다는 엄마의 말에 “그건 내 몸 상태를 보고 교수님이 결정하는 거지”


“엄마는 지금도 내가 약을 안 먹기를 바라는 거잖아.” 라고 쏘아 붙였다.

엄마는 “아니야~ 아니야~” 라고 말했지만


어제 보다는 언성을 높이지 않고 이 정도에서 통화를 마쳤고 당분간은 전화 보단 문자로 일상을 주고 받으며 거리를 두고 조심하였다.




3일 후, 혼자서 천안 S대학병원 진료실에 들어갔다.


유방외과 교수님께서는 내가 들어오자마자 항암 여부를 바로 물어보셨다.


“교수님, 항암 안 하겠습니다.”


“네, 환자분의 의견을 존중해야죠. 대신 남은 치료 잘 해 봅시다.”


“네.”


유방암 2기인데 항암을 거부하고 호르몬억제 치료 두 가지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한 달에 한 번 난소억제주사 ‘졸라덱스’

매일 한 알 먹는 약 ‘타목시펜’




<오늘 기분은 어때?> 2편을 마무리 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애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편에서는 유방암 재수술을 위해 다시 수술대에 오른 이야기와 재활하는 모습이 전개될 예정입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29화엄마는 통신관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