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구름(cloudy)
8년 전, 해외봉사를 하며 알게 된 L이 있다.
난 해외봉사를 마치고 한국에 정착하여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는 동안
L은 다시 해외로 나갔고 휴가 차 한국 잠깐 들어올 때 보았는데 이번에는 2년 간 아프리카로 간다고 하였다.
아프리카로 출국 하기 전 수원 행궁동에서 만났다.
이제 유방암 수술 후 2달이 채 되지 않아 밖에서 사람들과 밥 먹고 차 마시고 할 정도의 체력이 받쳐주질 못했다.
L도 내가 유방암 인 걸 알고 있어서 이해해 주었고 벚꽃이 멀리서 보이는 S카페에서 차 한 잔 하기로 했다.
밖에 나가는 거라곤 집 앞 공원과 마트가 다였는데 오랜만에 카페에 가서 맛있는 음료도 마시고
수다도 떨 생각을 하니 외출 준비를 하면서 마음이 설렜다.
L은 시간계산을 잘 못하여 너무 일찍 왔다며 내가 마실 음료를 미리 시켜놓겠다고 했다.
“그럼, 난 따뜻한 디카페인 카페라떼”
카페에 도착하니 L은 달콤 쌉쌀한 티라미수 까지 주문해 놓았다.
“케익 먹어도 돼?”
“응... 이렇게 밖에 나올 땐 스트레스 받지 않고 먹으려고”
L은 잔병치레가 많은 친구로 병원을 자주 다녀서 나의 아픔을 잘 공감해 주었다.
벚꽃이 만발한 4월 초, 수요일 오후
통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저 멀리 보이는 벚꽃을 바라보며 라떼 한 입, 그리고 케익 한 입
"언니, 좀 피곤해 보이네.“
“응, 한 달 동안 하루에 4-5시간 밖에 못 잔 듯. 보형물을 넣고 옆으로 못자고 똑바로만 자야해서, 원래 난 옆으로 자는 사람인데.”
“어렵게 잠에 들어도 자주 깨니 원래도 꿈을 잘 꾸는데 요새는 더 많이 꿔.”
“내 방이 물로 가득 차서 내가 물 속에 잠겨 숨 쉬기 힘들어 하였고 놀라서 꿈에서 깬 거 있지.”
“꿈에서 깬 후, 심장이 쿵쾅 거렸고 꿈풀이를 찾아보니 피곤할 때 이런 꿈을 꾼다고 하는데 피로가 많이 축적되었나 봐.”
“경추베개 라고 있는데 그거 쓰면 좀 도움이 될 거야.”
“응, 집에 가서 찾아봐야겠다.”
“너 아프리카 가면 벚꽃 못 볼 텐데 걸으면서 얘기 나누자~”
카페에서 나와 행궁동을 돌며 가까이에서 벚꽃을 보았다.
사진을 찍어 준다는 걸 한사코 거절했다.
머리를 안 감고 질끈 묶고 나와서 영 태가 안 나기도 했지만 아픈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30분 정도만 걸을까 했는데 얘기가 계속 이어지고 나도 체력이 괜찮다 싶어 1시간을 걸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
버스를 타기 전, 나는 L에게
“건강해” 라고 말하니
L은 “건강해” 를 따라 말하며 웃었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잘 지내” 라고 말했을 거 같다. 그래서 L이 웃었나보다.
오후 4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니 학생들의 하교시간과 맞물렸다.
한 번도 의자에 앉지 못한 채 만원버스에 몸을 싣고 집에 오니 오후 5시가 되었다.
<카톡>
“난, 지금 집 도착! 도착했어? 언니.”
“응, 집 와서 침대에 누워있어.”
“너랑 있을 땐 하나도 안 피곤했는데 집에 오니 뻗었네.”
씻지 않으면 침대에 가서 절대 눕지 않았는데 아프고 나서는 밖에 나갔다 오면 집에서 입는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채 자주 누웠다.
멍 때리며 쉬고 있는데 계속 누워있으면 이대로 자버릴 거 같아 이불을 박차고 샤워 후 저녁을 준비했다.
오늘 L과 만나서는 나의 유방암 얘기만 했지 L에 대한 얘기는 거의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 내가 차 한 잔을 샀다.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고, 한국 들어올 때 연락해”
포옹과 함께 아프리카로 잘 보내주었다.
1년이 지나고 휴가를 받아 한국에 오는데 이번에는 나를 보지 못할 거 같다는 연락이 왔다.
서운하긴 했지만 그 사이 결혼을 하며 챙겨할 가족들이 많아졌다는 걸 알기에 내색하진 않았다.
카페에서 얘기 하는 동안 옆 사람이 들을까봐 ‘유방암’ 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면 소리를 낮추었다.
2024년 그 해 봄은 사진 한 장 없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