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해(sunny)
유방암 수술 전 모든 검사를 마쳤고 결과는 1주일 뒤에 나온다.
1주일이 참 길게 느껴질 거 같아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1박 2일로 혼자 강릉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기분 좋은 여행을 좌우하는 많은 요소 중 8할은 날씨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여행 시에는 전국적으로 날씨가 안 좋다고 떴다. 비가 올 확률도 높다고 한다.
검사결과를 듣고 나면 수술 날짜가 잡힐 거고 유방암 수술이라는 큰 일을 앞두고 몸을 사려야겠다 싶었다.
그러면 여행은 한 동안 못 갈 거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날씨가 좋지 않더라도 여행을 추진했다.
바다가 보이는 오션뷰 카페 중 좋았던 곳은 또 가기도 하는데 이번엔 안 가본 카페들로 동선을 짰다.
경기도 수원에서 3시간을 달려 아침 11시에 도착한 영진해변에 위치한 C카페에는 중년의 아주머니께서 친절하게 맞이해 주셨다.
C카페의 첫인상은 앤티크한 가구들이 관리가 잘 되어 있는 따스한 느낌을 받았고 여기에 어울리는 따뜻한 라떼를 주문했다.
요즘 카페 답지 않게 여사장님이 직접 자리로 음료를 가져다 주셨다.
지금은 2월이니 추운 겨울인 건 당연한데 내가 추워보였는지 따뜻한 물 한잔도 같이 주셨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많지 않아 2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서 혼자 물멍을 하였다. 여긴 다음에도 또 오고 싶은 곳으로 낙점하였다. 여행의 시작이 좋다!
점심은 회덮밥을 먹으러 갔다. 회를 좋아하지만 좀처럼 혼자서는 잘 먹지 않는 음식이다.
유방암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한다면 날 음식은 피하라는 정보를 알고 나니 회를 미리 먹어 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먹지 말라고 하면 더 먹고 싶은 청개구리 심리가 발동했다.
그것도 이 식당에서 가장 비싼 2만원 짜리 모듬회덮밥
밑반찬은 종류가 많지 않아 아쉬웠지만 메인요리인 덮밥에 회가 가득해서 만족스러웠다.
다음으로는 강릉에 사는 현지인에게 입소문이 난 아파트 상가 내에 있는 작은 동네 빵집으로 갔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 먹지는 못하고 저녁에 먹을 생각으로 사기로 했다.
오후 늦게 가서 그런지 사고 싶었던 맘모스빵도 크림빵도 다 팔려서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갈 순 없지!
식사대용으로 가능한 샌드위치와 야채고로케, 그리고 정체를 잘 모르겠지만 폭신해 보이는 빵은 호기심에 입가심 디저트용으로 샀다.
빵집에서 나온 후 사천진해변에 위치한 H카페로 향했다.
예전에 한 번 온 적 있었는데 전깃줄이 시야를 가려 좀 아쉬웠던 카페였다.
주인이 바뀌었는지 카페이름이 바뀌고 나서 후기가 많지 않았다.
일요일 오후 3시경인 이 때는 어디를 가나 사람이 많기에 오션뷰를 만끽하기에 최적의 장소는 아니더라도 창가자리에 앉을 수 있는 확률을 따져 이곳에 오게 되었다.
예상대로 나이가 지긋하신 3명만 앉아 있었고 이후 나가시면서 나 혼자 독차지 하게 되었다. 가지고 온 책은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고 신이 나서 바다 사진을 연신 찍었다.
그러나 달콤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커플들이 들어오면서 명당자리에 앉아 있는 게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카페에 온지도 2시간이 다 되어 가니 이제 이 커플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겠구나 하며 카페를 나와 숙소로 향했다.
강릉 숙소비가 비싸서 속초에 새로 생긴 후기에 칭찬글이 자자한 오픈특가로 뜬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강릉에서 속초까지 1시간 남짓 달려서 동명항이 반쯤 보이는 객실로 배정받았다.
생각한 것보다 객실에서 보는 뷰가 좋아 테라스에서 사진을 몇 방 찍었다.
짐을 풀고 낮에 샀던 빵이 혹시나 상하진 않을까 냉장고에 넣은 후 의자에 앉아서 오늘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휙휙 넘겨 보았다.
빵은 주식이 아니라 후식 개념인 나에게 저녁을 빵으로 대체하려고 하니 영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다른 것도 먹고 싶었다.
치킨이 먹고 싶은데...
결국 치킨을 포장해 왔고 그 날 저녁 빵에 치킨에 과식을 했다.
먹다 남은 빵은 다음날 아침으로 먹을까 생각했는데 다른 빵도 아니고 샌드위치의 야채가 상해서 배가 아프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스쳐 입속으로 넣었다.
잠자리가 예민해서 자다 깨다 반복하다가 일찍 일어났다. 어제 저녁 많이 먹어서 아침은 건너뛸까 했는데 이미 핸드폰으로 숙소 근처에서 아침 먹을 만한 곳을 물색하고 있다.
체크아웃 후 검색한 순댓국집으로 갔는데 문이 닫혀있다. 차선책으로 이미 2번 다녀 갔던 B순댓국집으로 핸들을 돌렸다. 물론 맛은 보장되어 있었다. 오늘로써 3번째 간 집이 되었다.
어제도 날씨가 좋았고 오늘도 날씨가 좋은데 일기예보에선 여전히 비 소식이 뜬다.
카페 한 곳만 들린 후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집으로 가야겠다 싶었다. 수원집 까지 안 막히면 3시간이 걸리니 강릉에서 늦게 출발 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위치는 강원도 고성이나 속초와 가까운 유명한 B대형카페로 갔다.
워낙 유명한 카페인데 난 이제 서야 왔다. 사람 많은 걸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카페사진을 보니 뷰가 엄청나게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실제로 가보니 소나무에 가려 뻥 뚫린 오션뷰가 아니어서 아쉬웠지만 소나무의 초록색과 바다의 파란색의 조화가 잘 된 곳이었다.
통창으로 해가 많이 들어와 덥긴 했지만 이 정도면 괜찮은 곳이었다.
굿바이~ 강릉
1박2일 동안 성공적인 여행이었다. 일단 날씨가 도와줬고 오션뷰 카페에 가서 모두 창가 자리에 앉았으며 식당에서 먹은 음식들도 모두 맛있었다.
그치만 이번 여행은 나답지 않은 여행이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선 예민하지만 입맛은 무뎌서 아무거나 잘 먹고 대전을 가도 성심당을 가지 않는 내가 빵집을 가다니.
바다를 좋아해서 강릉엔 수십 번 갔지만 회보다 떡볶이에 김밥을 더 많이 먹고 온 나인데 이번엔 굳이 비싼 돈을 내며 회덮밥을 먹고 왔다.
암 환자가 되면 음식을 가려 먹어야 되는데 빵도 회도 치킨도 수술 전에 다 먹어두고 싶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