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로 가는 길: 날이 갈수록 빛나는 무대

텅빈 무대 vs.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나는 무대

by 꿈꾸는 미래

D-11 | 사춘기 첫째 아이와 대화를 여는 쉬운 주제 중 하나는 ‘연예인’이다. 지난주 우리 대학 축제에서 있었던 연예인 공연 이야기는 아이에게 흥미로운 화제였다. 관객들을 향해 물을 뿌리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던 장면을 이야기할 때 아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는 삶의 의미와 아이가 서게 될 무대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아이에게 물었다. “015B 알아?” 당연히 나의 어릴 적 대중가수를 아이는 모를 수밖에 없다.


대화는 큰 진전 없이 마무리되었고, 나는 호기심에 주민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그렇다. 그 오랜 가수의 무대가 오늘 토요일 주민센터에서 열린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게시된 행사 안내 포스터 왼쪽 하단 모서리에 '015B' 이름이 작게 적혀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나: “오늘 015B 공연 시작이 언제인가요?”

주민센터: “4시쯤이요. 그런데 문의 전화가 꽤 오네요.”

나: “015B 공연 문의가 많았다고요?” (놀람)

주민센터: “(웃음) 네, 그렇네요.”

나: "(웃음) 잘 알겠습니다"


많은 문의 전화가 있다는 사실에 나도, 직원분도 웃고 말았다. 015B라니. 내 젊은 날을 스쳐 지나간 이름. 내가 좋아하던 시절, 소위 언더그라운드를 표방하던 그들. 후에 방송 활동도 했던 것 같지만, 나는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오늘, 집 옆에서 공연을 한다니 한 번 보고 싶어졌다. 어떤 노래를 부를까? 내가 아는 곡일까?


그러나 현실은 늘 변수로 가득하다. 둘재 아이가 오전 프로그램 '샤이닝 키즈'를 마친 뒤, 아내가 불쑥 말했다. “아이 운동화가 필요해. 신발 가게에 가자.” 나는 언제나 그렇듯 흔쾌히 운전대를 잡았다. 오전 내내 아이와 아내가 함께 시간을 보냈으니, 이제 내가 나설 차례였다. 그런데 아내가 덧붙였다. “어머니랑 같이 가야 해.” 처갓집에 들러 장모님을 모시면 4시 전에 돌아오기 힘들 수 있다는 계산이 머릿속에 빠르게 진행됐다. “아이 운동화 사는 데 굳이 어머님이 같이 가실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했더니, 장모님이 사주시겠다는 것이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괜찮았다. 한 시간 안에 쇼핑을 끝내면 충분히 돌아올 수 있다.


신발 가게에 도착해 “1시간 안에 고르자”라고 말했고, 아내와 장모님, 그리고 아이는 예상대로 그 시간 안에 신발을 고르며 쇼핑을 마쳤다. 그 사이 나 또한 오래 신어 낡아버린 운동화를 대신해, 이번 실리콘 밸리 연수에서 신을 새 신발을 골랐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얻은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그러나 귀가하려던 찰나, 아내가 다시 말했다. “아이가 점심을 제대로 못 먹어서 자장면이 먹고 싶대.” 장모님도 덧붙였다. “자네도 배고프지?” 순간, 지금 더 지체하면 4시까지는 절대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배고픈 아이를 모른 척할 수는 없었고, 아내와 장모님도 다른 계획이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아이와 함께 자장면을 먹었고, 그 사이 장모님과 아내는 지상 1층에서 열리는 나이키 특별 세일 구경에 나섰다.


아이와 마주 앉아 자장면을 먹으면서 나는 더욱 세심하게 아이를 챙겼다. 앞치마를 매어 주고, 목끈 길이를 조정하고, 물 잔을 채워주었다. 그렇게 하면서 마음 한편의 아쉬움, 015B 공연에 대한 기대를 애써 덮었다. 사실 나는 그들을 ‘팬’이라 부를 만큼 좋아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소싯적 마음속에 자리했던 이름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을 뿐이다. 못 본다고 해도 괜찮다. 어차피 젊은 시절에도 그들의 얼굴을 본 적은 없었고, 노래는 컴퓨터 앞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들을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달래 보지만 그리운 마음 어쩔 수 없다.


돌아오는 길에 먼저 장모님을 처갓집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까지 모셔다 드리고, 교통 체증 구간을 간신히 지나 5시가 되어서야 주민센터에 도착했다. 아내가 의아한 듯 물었다. “여기 왜 왔어? 015B 좋아했어?” 나는 아내가 미안해할까 봐 “아…니…”라고 말끝을 흐렸다. 아내는 피곤하다며 집에 가자고 했다. 공연은 이미 끝났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흩어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울려 퍼졌을 음악이 막 끝난 듯, 공기 속에는 여전히 잔향이 남아 있는 듯했다.


가족들을 내려주고 차를 주차한 뒤, 나는 혼자 발걸음을 서둘러 주민센터 쪽으로 걸어갔다. 무대 위에는 빨간 천, 레드 카펫(?)이 깔려 있었으나, 무대의 앙상한 뼈대와 같이 해체 작업이 시작되었다. 옆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경찰관께 물었다. “사람들 많이 모였었나요?” 경찰관은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래도 무대 앞은 꽉 찼어요.” 가로 세로 10미터 남짓한 작은 공간, 그곳에 사람들이 빼곡히 모였던 것이다.


한때 수많은 환호를 받으며 큰 무대에서 노래하던 대중음악가는 오늘 이 작은 주민센터 무대에 섰고, 지금 무대는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응원한다. 눈에 보이는 무대는 작아졌을지라도, 그들이 전하는 노래의 메시지는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젊은 날에는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했다면, 이제는 더 깊은 차원의 사랑, 숭고한 헌신, 평화, 그리고 인류애와 희망을 노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약 열흘 후, 학생들과 나는 실리콘 밸리의 무대에 선다. 그곳에서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만나 대화하며, 질문하고, 통찰을 얻을 것이다. 낮에는 총 6개의 기업과 대학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Dream Builder 프로그램을 통해 진로를 설계하며, 밤에는 각자의 다짐을 새길 것이다. 비록 이 작은 도시, 작은 무대에서 우리의 시작이 미약해도, 언젠가 피부의 노화가 느껴지는 날까지, 날이 갈수록 더 빛나는 무대에서 나와 학생들이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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