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독일은 정말 하루 8시간만 근무해?’라는 것과 ‘일 년에 휴가가 얼마나 돼?’였다. 독일에서 힘든 순간들이 찾아올 때면 가까운 도시로 여행을 다니면서 그 슬럼프를 버텼다. 휴가일수도 한국에 비해 많았고, 휴가를 굳이 여름에 몰아쓰지 않아도 되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날씨 때문에 우울해지는 2월에는 며칠 스페인을 다녀오고, 비수기인 11월에 길게 한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 때문에 통장잔고는 조금 가벼워졌지만 말이다.
공식적인 휴가 일수: 25일 - 30일
회사마다 그리고 계약 조건마다 다르지만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직장인의 경우 대개는 일 년에 25일에서 30일 사이의 공식 휴가일수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이 휴가를 한꺼번에 소진하지는 않는다. 이곳의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에 일주일 정도씩 쉬는 것이 보통이며, 자녀들이 있는 동료들은 학교의 방학일정에 맞추어 긴 여름휴가를 떠난다. 싱글인 경우 굳이 이 시기에 떠나지는 않고 여름에 약간 긴 휴가를 가고 2월쯤에 알프스 지방으로 스키투어나 혹은 따뜻한 스페인 남부 혹은 아시아로 여행을 떠난다. 긴 휴가라고 하면 대부분 2주에서 3주가량, 혹은 그보다 더 장기간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매니저와 팀 동료들과 함께 상의 후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든 휴가는 다음 연도 3월 혹은 4월 말까지 소진해야 한다.
주말과 공휴일, 30일의 휴가를 제외하고 나면 나는 222일. 즉 일 년의 60퍼센트만 일하게 되는 셈이다.
한국에서 근무했을 때는 신입사원의 경우 일 년에 17일의 공식 휴가를 부여받았다. 사실 휴가는 5일이었고, 나머지 12일은 한 달에 한 번씩 생성되는 연차였다. 여기에 누적 연차 개념이 적용되어 1년에 추가적으로 하루씩 휴가가 더 생성되었다. 차장, 부장급이 되면 휴가 일수가 독일과 비슷해지지만 부여받은 휴가를 다 소진하지 못해 그것을 수당으로 돌려받는 선배들이 많았었다.
지금은 추세가 많이 바뀌어 수당으로 돌려주지 않고 모든 휴가를 다 소진하도록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입사했던 2010 년 초반만 해도 여름휴가는 일주일 정도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여기에 연차를 조금 붙여쓰곤 했다.
독일인들이 사랑하는 휴가
우리나라의 초중고 학생들이 부모님과 함께 부산, 제주도, 전주 등을 여행하듯이 당연히 이 곳 어린이들은 부모들과 함께 흔히 말하는 유명 관광지들을 어린 시절 대부분 여행하게 된다. 졸업여행으로 이탈리아 남부지방이나 스페인으로 가거나, 수학여행 개념으로 암스테르담을 방문하는 식이다.
여기에 한국식으로 고3이 되면 해외로 교환학기를 가는 제도가 있는데, 주위의 많은 친구들은 일 년정도 미국에 다녀오곤 했다. 대학생 시절은 에라스무스라고 하는 제도가 있어서 유럽 내 대학교 교환학기를 정부 보조금을 통해 거의 무료로 다녀올 수 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20대 초반 학생들은 웬만한 유럽 지역들은 한 번쯤 둘러봤기 때문에 그 이후의 휴가는 1) 캠핑, 스키, 수상스포츠 등의 액티비티 위주 이거나 2) 가보지 못했던 먼 나라들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3)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들 (친구네 집 별장이 있다거나, 결혼식 혹은 결혼식 전의 파티) 등등의 큰 카테고리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더 나아가 결혼을 해 자녀가 생기는 경우는 그 패턴이 바뀌는데 연령에 관계없이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는 아무래도 날씨가 좋고 물가가 저렴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지역이다. 독일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페인의 Mallorca 섬은 독일의 17번째 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고, 정말 많은 독일인들이 방문한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영국보다 독일의 날씨가 더 안 좋은 것 같고, 그래서인지 독일에서 장기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비타민 D 수치를 체크해봐야 한다. 독일인들이 일조량이 많은 나라로 휴가 가는 이유를 잘 몰랐었는데 이제는 정말 잘 이해할 수 있다.
긴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이유
너무 유명한 문구지만 이것보다 더 독일을 잘 설명해주는 것은 없어 보인다. ‘지루한 천국’
겨울이면 오후 네 시반부터 해가 지고, 영국만큼이나 독일도 나쁜 기후조건으로 유명하다. 상점들은 저녁 8시면 문을 닫고 그마저도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술집들은 오래 문을 열지만 그마저도 당연히 한국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학교에 가야 하는 어린아이들은 저녁 8시나 9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고, 일찍 출근해야 하는 부모들도 그리 늦게까지 깨어있지는 않다. 한국의 소위 프라임타임이라고 하는 밤 10시나 11시의 예능프로는 이 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지루할 만큼이나 조용한 일상을 보내는 독일인들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은 가족과의 저녁시간, 취미활동 (대개는 운동이다), 간혹 열리는 축제 그리고 휴가이다. 아주 점잖고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는 독일인들도 휴가지에서는 엄청 술에 취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루할 수 있는 일 년을 견뎌낸 보상 개념인 것 같기도 하다. 조용한 일상 속에서 큰 소비 없이 근검절약한 후 본인에게 주어지는 큰 선물 같은 것이 일 년에 한 번 주어지는 휴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