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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in Mar 22. 2018

많아봐야 분기에 한 번인 회식문화




한국에서 나는 회식자리를 즐기는 편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겨했기에 사회초년생 시절의 회식을 사실 나는 좋아했었다. 공식적인 담당, 팀 내 회식과 더불어 야근 후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술자리, 동기들과 함께하는 자리 등등 입사 초기에는 일주일에 최소 한 번, 많으면 세 번 정도까지 퇴근 후 술자리를 가졌다. 맞지 않는 팀원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팀워크가 좋은 팀에서 일을 했기에 같은 부서 혹은 타 부서 사람들과 가지는 술자리가 즐거웠다.   

불편한 자리도 있었고 어려운 자리도 있었고 이상하게 술만 많이 마시고 끝나는 자리도 있었다. 전무 혹은 상무 급의 상사와 술자리가 있기도 했고, 외부 협력사와 좋지 않은 일로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자리에서는 하나라도 더 배우려 했었다. 업무적으로 배운 것들도 있었고 내가 몰랐었던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인간적으로 내가 배울 점들 혹은 배우지 말아야 할 점들은 어떤지 관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좋았고 혼자 나와서 살았던 서울 살이의 외로움이 덜 느껴져서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독일에서는 일 년에 손에 꼽을 정도의 횟수로 회식을 한다.   

독일에서 학생 신분으로 10개월 정도 일했고, 현재 다니는 회사는 삼 년째 근무 중인데 이 기간을 통틀어 공식적인 회식은 15회 남짓이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와 비교해 업무시간 만큼이나 회식일정도 줄었다.


공식적으로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타 계열사 직원들과 일 년에 두 번 공식적인 파티를 한다 (서머파티, 크리스마스 파티). 외부 장소를 섭외해서 파티를 할 때도 있고 일하고 있는 빌딩들 사이에서 출장뷔페와 라이브 밴드를 초청하는 식으로 이벤트를 한다. 이 파티도 자정쯤이면 공식적으로 종료되고 그 이후에도 술자리를 더 갖고 싶은 직원들끼리는 장소를 옮기는 식이다.       



일정은 최소 삼 주전에 계획하고 독일에서도 회식자리는 음식과 술이 기본이다 


계열사별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거나, 내가 일하고 있는 담당 임직원끼리 파티를 하기도 했고 팀 혹은 팀 내 파트별로 회식을 하기도 한다. 자녀가 있는 동료들이 있고 서로 다른 휴가 일정과 업무 외 일정이 있기 때문에 회식 약속은 최소 삼 주전에 결정된다. 

공식적인 일정인만큼 시간, 장소, 행사내용이 아웃룩 초대장에 미리 명시되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동료들이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하는 편이다. 그래도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에 미리 동료들과 상의를 한 후 최대한 많은 수가 참여할 수 있는 날짜로 지정한다. 개인적인 주말 일정을 배려하여 공식적인 회식이 금요일인 경우는 거의 없다.     


저녁식사 말고도 특별한 행사를 할 때도 있다. 한때 레이저총으로 실내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것이 유행했고, 방탈출 게임을 하거나 음악회나 공연을 보러 가는 팀들도 있다. 혹은 쿠킹클래스 수강권을 생일선물로 주는 경우가 흔하기에 팀 이벤트로 다함께 쿠킹클래스에 참석하기도 한다. 


독일에서도 한국처럼 다양한 형태로 회식을 하지만, 이 곳에서도 맛있는 음식과 술이 회식의 기본이다.


<독일에서는 노래방 문화가 흔하지 않은데 작년에는 담당 내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가라오케를 즐겼었다>



모든 비용이 회사에서 지불되지 않는다.  

전사 차원의 이벤트나 계열사/파트 내 공식행사의 경우 식사와 음료비용이 회사에서 지불된다. 하지만 팀 내 회식의 경우 예산 가용 여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더치페이인 경우가 많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는 회식 예산이 많지 않아서 퇴근 후 술자리와 식사자리는 대부분 스스로가 부담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아주 공식적인 팀 내 혹은 담당 내 회식은 일 년에도 손꼽을 정도로 적게 하는 편이다. 독일 내에서 다른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달에 한 번 문화행사를 하는 곳도 있다고 하니 이것도 회사별로 차이가 있다.



독일 회식자리에서도 술을 많이 마실까  

팀 내 회식인 경우 동료들과 함께 미리 가보고 싶었던 레스토랑을 미리 정한 후 일정을 짠다. 수제 햄버거집, 독일식 레스토랑, 이탈리아 레스토랑, 혹은 한국인 동료인 내가 있기 때문에 몇 번 한국 식당을 간 적도 있다. 저녁 식사는 두세 시간 정도로 이어지며 약간의 술도 동반되지만 식사자리에서는 그 누구도 취하지 않는 편이다. 업무이야기와 사적인 이야기를 곁들여서 이야기를 하고 1차 식사 자리가 끝나고 2차는 자발적으로 이어진다. 2차는 본격적인 술자리가 되고 주로 맥주나 칵테일을 마시러 간다.   


전형적 독일회사의 독일 동료들끼리는 취하지 않는 편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일하고 있는 팀은 회사 내에서도 특별나게 젊고, 인터내셔널하고 팀워크가 좋은 편이다. 술자리를 좋아하는 동료들이 많아서 팀원들끼리 자발적으로 한 두 달에 한 번씩은 서로의 집이나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한국에서처럼 술을 오래 그리고 많이 마시고 취하기도 한다.       



회식자리야 말로 동료들과 좀 더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기회였는데 독일에서 일하고부터 그런 기회가 한국에서보다는 많이 줄었다. 지금은 친한 동료들도 있고 아는 사람들도 많아져서 공식/비공식적인 식사자리와 술자리가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편인데 (그래 봤자 한 달에 한두 번이다) 입사 초기에는 그런 곳들이 아예 없어서 당황했었다. 한국과 비교해서 정이 없다고 느껴져 섭섭하기도 했으며 퇴근 후 일상이 정해져 있지 않았던 시절에는 저녁시간이 무료했었다.     


<동료의 집에서 함께 생일파티를 하기도 했고, 인근에서 열리던 맥주 축제에 참석하기도 했다>



생판 모르는 나라에 뚝 떨어져 가족도 친구도 없이 회사를 다니게 될 경우 가장 쉽게 가질 수 있는 인간관계는 회사에서 형성되는데, 독일에서는 결코 쉬운 관계가 아니다. 공과사를 칼같이 구분하는 동료들도 많기 때문에 회사에서 ‘친구’ 개념으로 친한 사람들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직장동료는 독일에서 가장 어려운 사회적 관계일지 모른다. 회식 기회도 많지 않고 전형적인 독일인들처럼 데면데면하게 회사를 다녔더라면 인간관계를 회사 밖에서만 형성하기란 힘든데, 그래도 그 와중에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지금 동료들과는 한국에서처럼 끈끈한 정과 믿음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다.

물론 좋은 사람들을 만난 탓도 있지만 회식과 술자리가 없었으면 친해지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 


음식을 나누고 술을 함께 마시는 것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하는 인간관계 형성의 첫 단계인 것 같다. 왜 한국에서도 친해지려는 사람들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하지 않는가 ‘밥 한 번 먹자’ ‘술 한 번 마시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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