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가대표 축구선수 외질이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줄곧 엘리트 축구선수 코스를 밟아왔고 독일 국가대표 중에서도 손꼽히는 인물인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은퇴 선언 전 몇 달 동안 외질은 여러 사건들로 인해 독일 언론의 타깃이 되었다. 터키 대통령과의 사진 촬영, 경기 전 독일 국가를 부르지 않는 모습, 브라질 월드컵의 충격적 16강 탈락 등 그 중심에는 항상 그가 터키인이라는 사실이 부각되었다. 독일과 터키 이중국적을 보유한 외질은 독일 대표팀을 선택했지만 그는 단지 터키이민자 인가? 그리고 터키인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가?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입장표명을 하지 않던 외질은 며칠 전 몇 장의 글을 트위터에 게시했고 이 글은 현재까지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여러 이슈 중 도화선이 되었던 터키 대통령과의 사진 촬영은 무슬림, 터키의 정치적 상황, 독일 내 터키인의 위치 등 근본적인 문제와 맞물려 있기에 쉽게 말할 수만은 없다. 그는 성명문을 통해 그간의 행동들에는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었다고 밝혔지만, 사실 그 이면에 어떤 이도가 있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성명문을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고 조금 슬퍼지기까지 했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심경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정상급의 운동선수도 이민자로서의 고민을 하는구나 싶었다.
“I am German when we win, but I am an immigrant when we lose. This is because despite paying taxes in Germany, donating facilities to German schools and winning the World Cup with Germany in 2014, I am still not accepted into society. I am treated as being ‘different’.
[….]
Am I not German? Are there criteria for being fully German that I do not fit? My friend Luks Podolski and Miroslav Klose are never referred to as German-Polish but why am I German-Turkish? Is it because it is Turkey? Is it because I’m a Muslim? I think here lays an important issue. By being referred to as German-Turkish. It is already distinguishing people who have family from more than one country. I was born and educated in Germany, so why don’t people accept that I am German? "
독일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
독일은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노동력 수급을 목적으로 폴란드 등지에서 이루어진 징집을 시작했고 상당수의 외국인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후 경제성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노동력으로 인해 ‘초청’ 형태로 외국인들을 영입하게 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1950년대 광부와 간호사 초청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때문에 그 시절 이민 온 부모 아래에서 나고 자란 이민 2세대, 3세대 한국인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독일의 인구는 82만 명이며 그중 92퍼센트는 독일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전체 독일 인구 중 20퍼센트. 즉 16.3만 명 이상은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터키 거주인은 3만 명 정도로 이민자들 중 가장 많은 수를 보유하고 있고 그다음으로는 폴란드, 러시아, 이탈리아가 있다.
독일 내의 터키인
누가 들어도 독일 원어민의 억양이며 외양도 전형적인 독일인인 것 같은 사람들도 사실 성을 들여다보면 부모들은 독일 출신이 아닌 경우가 많다. 본인이 먼저 밝히지 않는 이상 부모가 폴란드인 혹은 러시아인이더라도 자녀들은 독일인처럼 보인다. (실제로 독일국적을 가진 독일인이다)
하지만 터키인은 조금 다르다. 외양도 전형적 게르만족과 다를 뿐 아니라 성과 함께 종교적 이유로 그 사람이 터키 출신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수많은 케밥집, 터키 식료품점 그리고 밤에 늦게까지 문을 여는 간이 편의점들은 대부분 터키인들에 의해 운영된다. 하지만 독일 외국인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터키인들과 결부되는 이미지에는 부정적인 것들이 더 많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사회적 통합’ 문제를 꼽을 수 있다. 독일에서 태어난 터키인들은 독일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원어민처럼 독일어를 구사하지만, 특유의 집단 공동체 정신 때문에 독일 사회에 크게 융화되지 못하기도 한다. 차이나타운이 세계 어느 곳에나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독일 내 어느 도시를 가든 터키인 거주지역이 있고, 맛있는 케밥집은 독일에 있다는 이야기는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대부분 터키인 거주 구역의 렌트비는 다른 지역보다 저렴하고 간혹 치안이 좋지 않다고 소문이나 거주를 꺼리기도 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베를린의 베딩은 터키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인데, 한국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지역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말로 터키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은 위험할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민자와 범죄율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지만 외국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이슈화되기 더 쉽고 때문에 부정적인 부분이 크게 부각되는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로는 정치적 배경과 함께 이슬람교라는 종교적 배경을 빼놓을 수 없다. 가톨릭 국가인 독일에서 이슬람교의 가치는 정면으로 충돌되는 것이고 그 종교가 전파하는 사회적 가치들도 독일의 그것과 맞지 않다. 독일에서도 이민자와 터키인에 대한 인식은 양극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민자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극단적 우파들도 물론 존재한다.
독일인의 정의
그렇다면 독일인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독일인 부모가 아이를 출산할 경우 출생 장소와 관계없이 자녀는 자동으로 독일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과거에는 혈통주의를 따랐기 때문에 반드시 부모가 독일인이어야 독일 국적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나 1975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은 부모 중 아버지가 반드시 독일인이어야 국적 취득이 가능했다고 하니 사회가 얼마나 보수적인 분위기였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외국인 부모가 자녀를 가질 경우 부모 중 한쪽이 영주권 보유자이거나 8년 이상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경우 국적 취득이 가능하고, 자녀들은 23세가 될 때까지 독일 시민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독일 국적을 갖고 있으면 다 독일인일까? 서류상으로는 그렇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그렇지 않다. 흔히들 말하는 1 세계 백인의 전형적 모습 – 파란 눈의 백인, 옅은 머리색– 을 갖추지 않고 있으면 아무리 독일어가 유창해도 출생지에 관한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예를 들어 예전에 다니던 독일어 학원 선생님은 독일 출생 터키인이었는데, 누구나 그녀를 보면 당연히 외국인 취급을 한다고 했다. 너무 편견에 쌓여있는 것 아닌가 싶다가도 한국에서 미국인을 만났을 때 영어로 먼저 말 거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 사람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을지는 첫눈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로버트 할리를 생각해보라. 이름과 국적까지 바꾸었지만 아직도 그를 미국인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독일에서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
‘독일은 미국이랑 정말 달라’
내가 친구들에게 종종 하는 이야기였다. 이민자들에게 문을 조금씩 열고 있지만 독일은 외국인들에게 활짝 열린 이민사회가 아니다. 프랑크푸르트나 베를린처럼 국제적인 도시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과 쉽게 웃으며 금방 가까워질 수 없다. 사람들과 친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하루에도 최소 한 두 번은 내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유치원생들이 단체로 트램을 함께 타는 순간 온갖 이목을 집중받게 된다. 단지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내가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라고 자동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모든 아시아는 단일 언어를 쓰는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여자라서 그리고 외국인이라서 능력 발휘에 제한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 곳에도 소위 말하는 ‘톱클래스’에서는 보이지 않는 천장이 존재한다. 그들만의 리그가 있는 분야에서는 ‘순수 독일인’ 들끼리의 경쟁이 있다는 뜻이다. 그 경쟁에서는 게르만족 독일인이라는 사실이 큰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비단 독일 뿐 아니라 미국도 비슷한 상황이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외국인 CEO를 본 적이 있는가?
이민자의 삶은 내가 선택한 것이다. 다르게 보이는 것을 인정하고 그 점이 싫지 않았기에 독일에서의 삶을 선택했다. 한국에서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살고 싶었고, 내가 가진 것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루고 배워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여타 다른 독일인과 섞여서 흔히 말하는 ‘주류’에 끼어보고 싶기도 했다. 어찌어찌 그 부근까지 온 것 같은데, 한국에서도 ‘주류’ ‘상류’ 사회에 들어가기 얼마나 힘든지를 생각해보면 외국인으로서 경쟁하기가 어떨지 대충 상상이 될 것이다.
게임에서 각 단계별로 주어지는 리퀘스트를 해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처럼, 외국생활에는 수많은 과제들이 있고 (집 구하기, 비자받기, 학교 입학허가받기, 각종 과제, 취업 등) ‘이민자’의 과정까지 오게 되면 대부분의 큰 과제들은 끝나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생활이 시작되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생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실패도 했고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이제야 겨우 사회의 일원이 된 것 같은데, 그 시점부터 오히려 이 나라가 낯설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이 나라 국민들처럼 똑같이 일하고 세금을 납부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방문’으로 온 외국인이다. 외질이 말했던 것처럼 ‘다르게’ 취급되는 것을 피하고 싶지만 외국에 사는 이상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이곳에 살기로 결정한 이상 이런 부담감과 불안정함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몫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거나 이곳에 계속 머무르거나 그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이방인인 기분일 것이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졸업해서 독일회사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삶. 그 이국적이고 뭔가 근사해 보이는 타이틀 아래에서 하루하루를 영위해나가는 외국인의 삶이 늘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겪어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사실 가까운 친구들이 이민이나 유학을 상담해오면 나는 오히려 말리는 편이다.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해 주어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에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그렇게 떠나왔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가진 것들을 불안정하지만 매력적인 외국인의 삶과 맞바꾼 사람들의 결정과 또 이미 그렇게 생활하고 있는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