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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에 대해 변해가는 인식과 감정

여행을 회고하며, 영원한 것은 없다.

by 두몽

2주전 1년동안 교환학생으로 지냈던 도쿄에 약 6-7년만에 다녀왔다.

코로나 이후 이상하게 교토나 삿포로 같은 일본의 다른 지역은 다녀왔지만, 그렇게 자주 드나들던 도쿄는

발걸음을 안하게 되었다. 아마도 비행기 표가 예전에 비해 너무 비쌌다 던가, 큰 이유는 없었다.


유학 후, 1년에 3-4번은 다녀왔을 때는 참 만날 친구도 많고, 갈 곳도 많았는데, 오랜만에 가려고 하니,

예전에는 어딜 갔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도 않고 크게 중요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예를 들면 살던 동네의 소바집이라던가, 과자점 같은 것들. 그리고 친했던 친구들이 외국에 나가 살기도

하고 연이 많이 끊기기도 했다.


생소하고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왠지모르게 조금은 쓸쓸한 마음을 안고 도쿄를 향했다. 일정은 오전 6시 비행기로 가서 오후 8시 비행기로 돌아오는 아주 꽉꽉 채운 2박3일 이었다.

다행히도 유일하게 일본에 남아있는 친한 친구, 피자(리카코의 별명)가 2,3일째에 마침 휴무여서 만나게 되었고, 그렇다면 피자를 만나지 않는 동안은 예전에는 관심이 전혀없었던 미술관 투어를 열심히 하기로 결심했다. 월화수 일정 중, 마침 혼자 다니는 월요일에 미술관 휴무가 많아서 매우 아쉬웠는데, 흠 전혀 아쉬울 필요 없었다.


영화에도 나왔다던 국립신미술관(프렌치레스토랑도 있다)

예전에는 2-3개는 가지고 있던 파스모, 스이카와 같은 교통카드들을 찾을 수 없어, 지하철역에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역무원 분이 알려준 48시간 지하철 패스(JR은 안되는)를 구매했다. 정말 종이장 보다 얇은 카드였는데, 이 카드를 처음 목적지였던 국립신미술관에서 잃어버리고 찾으러 다니고, P의 성격이 발현되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밥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시간이 부족했다. 지하철 패스를 찾은 것도 미술관의 개관 시간이후라, 경비아저씨들의 감시와 경호(?) 그 사이 속에서 엄청난 서류까지 작성하여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롯폰기의 모리뮤지엄은 밤 10시까지 하여, 전시를 후딱 보고 저녁을 먹겠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이게 뭔가, 전시장이 정말 크고, 내용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을 정도로 흥미롭고 재밌는 소재로 가득찼었다.

[MACHINE LOVE] 라는 전시였는데, 정말 별관심 없었던 nft, AI, game 같은 주제의 현대미술들이었는데 다양한 나라의 작가들을 작품을 볼 수 있었고, 그 중 한국, 중국의 작가들의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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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폰기 뮤지엄 (첫번째는 중국의 루앙작가, 두번째는 귀여워서 찍었다, 세번째는 전시 포스트)

앗, 이런 이렇게 자세히 지난 도쿄여행에 대해 리뷰를 쓰려던 건 아니다.

미술관, 전시 등에 정말 관심이 없었던 20대 초중반 때에 비해, 지금은 이렇게 전시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도쿄에 정말 휼륭한 미술관들이 많다는 걸 알게되었던 여행이었다.


더불어, 예전에 항상 만났던 친구를 못만났지만, 또 다른 친구가 채워주어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여행이었다.

아, 그리고 교환학생으로 있던 학습원여자대학교가 곧 학습원대학교와 합쳐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피자와 학교를 갔다. 우연히 피자의 담당 교수였던 나카지마 센세를 마주쳐서 수업에도 들어가는 귀중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는데 다시 가보니, 새삼 학교 건물이 범상치 않고, 햇빛과 창을 조화가 너무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게 느껴져 찾아보니 거장 마에카와 구니오(前川國男)의 작품이었다!

분명 다닐때도 아름답다고 느꼈겠지만 학교와 관련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월마다 바뀌는 아이스크림 맛이라니.

먹고잽이의 일생의 잘 살아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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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익숙했던 장소들의 새로운 면들도 보이고, 예전에는 웨이팅이 극심했던 시부야의 미도리 스시에 가서 살짝 실망도 하며 '영원한 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분명 학교의 건물도 재단의 건물로

영원히 있을 것이며, 스시집도 여전히 시부야 중심에 건재하게 자리잡고 있지만 학교는 더이상 내가 다니던 대학교가 아닐것이며, 스시집에서의 맛과 경험도 변해간다.

그리고 피자와 헤어질 때, 그녀가 마치 내가 일본에 있는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틀이었는데 내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고 말해줬다.

아마 그녀도 나와 같이 있던 장소들에 대한 감정들이 여러가지 변화가 있겠지.

피자는 항상 나와 헤어질 때 눈물을 보인다. 이번에는 이상하게 나도 같이 눈물이 펑펑났다. 거 참 먼나라도 아닌고, 라인도 있는데 웃기는 소녀들이다. (마음만은 여전히 소녀)


조금 다른 결이긴 하지만, 장소에 대한 인식이 확연히 변한 경험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부산이다.

부산은 아버지의 고향이자 큰 집 식구들이 살고 있다. 큰집의 분위기는 언제나 엄격하고, 성적을 중시하고, 나의 단점이나 꿈들이 매서운 세상의 기준에 재단되는 곳이었다.

정말 어렸을 때는 몰라도,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점점 심해지는 성적에 대한 책망이나, 불편한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었다. 되돌아보면 그으렇게 엄청나고 극단적인 비난이나 혼남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뭐 쌍욕을 들었다거나 매질을 당했다거나 하는.. 하지만 1년에 설날, 추석 이렇게 2번보는 사이가 되면서 감정의 유대가 없는 상황에서 오랜만에 만나 성적만 묻거나, 살이쪘는지 아닌지 등의 일들을 도마에 올려지는 경험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뭔가 같이 놀거나 놀이를 하는 것은 없고 tv를 보는 일 밖에 딱히 할 일이 없었던 것도 있다. 특히 언니와 사촌언니가 동갑이었는데 그 둘 사이의 긴장감이 꽤나 있었던 것도 참 견디기 힘든 일이다.


짧게 말해, 푸른 바다와 관광으로 유명한 도시 부산은 나에게 불편한 장소이자 싫은 기억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렇게 근 30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우연히 대구에 사는 친한 친구와 부산여행을 갔는데, 세상에나 바다도 너무 즐겁고, 힙한 카페나 바이닐 바가 이렇게 많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부산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뜨거운 바다와 밤의 후덥지근한 선선함이 도시를 24시간 밝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영원히 부산을 좋아하지 않을 줄 알았지만, 이제 꽤나 즐거운 면이 많은 도시라고 생각하다.

이재모 피자는 정말 최고다..


아무튼, 예전에는 전혀 변할 것 같지 않은 특정한 장소에 대한 나의 인식과 감정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씁씁할 것도 있는 반면 기쁨도 가득하다.


불변하는 마음도 상황도 없다고 생각하니, 삶이 가볍게 느껴지면서도 조금은 쓸쓸하기도 하다.

불교책을 좀 읽어야겠다.


이상. 별거 아니지만 마음속에 남은 일본 여행 사진을 남기며.

모두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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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창가의 피자, 학습원의 트레이드마크 벚꽃과 우리의 발들, 공항 모노레일을 타러가는길에찍은 전차길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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