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틈에 피어난 것들
별 : 문 여는 순간, 여기 공기부터 좀 다르네. 향기 때문에 울컥했어.
달 : 지금 퍼지는 건 마조람이야. 불안할 때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혀주는 향이지.
별 : 향기는 내 편인데. 그 인간은 진짜 킹 받아.
달 : 일단 숨부터 쉬자. 천천히, 들이마시고. 그래, 너 요즘 마음, 복잡했구나?
별 : 응. 결혼을 앞두고 자꾸 생각이 많아져. 이 결혼, 진짜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괜히 언니한테 반말까지 했네.
달 : 괜찮아. 지금은 내가 상담사고, 넌 내담자니까. 편하게 말해도 돼.
별 : 그럼 진짜… 반말해도 되……요?
달 : 해. 전통 상담은 존댓말이 기본이긴 하지만, 우린 좀 다르게 가보자. 요즘은 틀보다 거리감이 더 문제니까.
별 : 근데… 퀄리티 떨어지는 거 아니야?
달 : 전혀. 상담이란 게 말투보다 중요한 건, 진심이 나올 수 있느냐니까.
별 : 오, 그 말 좀 멋있다. 그럼 나, 진짜 막 말할게. 요즘 완전 혼자서 결혼 준비하는 기분이야.
디지털 청첩장 쓰자고 했는데, 어른들이 안 된대. 결국 종이로 200장 넘게 만들었어. 주소 적고, 봉투 붙이고, 우체국 가고… 그 사람?
“고생했어.” 이게 다야. 킹 받지?
달 : 받아도 모자랄 감정이 많았겠다.
별 : 진짜, 누구랑 결혼하는 건지 모르겠어. 연애할 땐 내가 걸어오기만 해도 빛난다더니… 지금은 그냥 일 잘하는 파트너? 감정 없이 회의만 하는 느낌이야.
달 : 연애 때 비췄던 후광이, 지금은 꺼진 것처럼 느껴지는 거구나.
별 : 응. 그리고 그 후광, 내가 껐나 싶기도 해. 아니면 그 사람이 눈을 감은 걸지도 모르겠고.
달 : 숨 좀 돌렸으니까, 지금 머릿속에서 가장 자주 맴도는 생각은 뭐야?
별 : … 결혼이, 진짜 맞는 선택일까? 이걸 계속 밀고 가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멈춰야 하나. 솔직히 말하면, 킹 받아. 웨딩 준비가 문제가 아니라, 이 결혼 자체가 나만 애쓰는 느낌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걸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근데 또 이걸 엎어버리자니, 상처받을 사람도 많고, 나 자신도 후회할까 봐 무섭고.
달 : 그 마음, 지금 이 자리에서 조금 정리해 보자. 여기 아로마 심리 카드가 있어. 질문은 하나야. “이 결혼, 엎을까 말까?” 손이 끌리는 카드 세 장만 골라봐.
별 : …이 세 장이 자꾸 손끝에 머물러.
달 : 너가 뽑은 카드, 펜넬, 레몬, 제라늄이야. 먼저 향부터 맡아볼래? 향이 먼저 마음을 건드릴 수도 있으니까.
별 : 이거 펜넬… 묵직하고 강한데?
달 : 그래. 펜넬은 고집스럽고 단호한 에너지를 갖고 있어. 자기 신뢰라는 말도 있지만, 쉽게 안 꺾이겠다는 뿌리 같은 뜻도 있지. 그 향을 먼저 골랐다는 건, 네 안에 이미 ‘이건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이 자라고 있다는 거야.
별 : 그럼 진짜 엎으라는 뜻이야?
달 : 결정은 네가 하는 거야. 하지만 첫 번째 카드가 이렇게 나왔다는 건, 지금 너한텐 누군가 설득하거나 다독여주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내가 지켜야겠다는 감정이 더 강하다는 거지.
별 : 오케이. 일단 보류. 두 번째, 레몬. 이건 향이 좀 상큼하네.
달 : 레몬은 정리, 분석, 거리 두기의 카드야. 두 번째로 나왔고, 부정으로 읽으면 감정이 억눌려 있고, 머리로만 판단하려는 상태를 뜻해. 쉽게 말하면, 지금 너는 마음은 제쳐두고 계산부터 하고 있는 중이야.
별 : 뭔지 모르겠지만… 이 카드한테 마음 들킨 기분이야.
달 : 마지막은 제라늄이야. 이건 긍정 카드로 읽어. 키워드는 균형, 회복, 감정적 안정. 앞에 나온 두 개의 카드가 마음속 소용돌이라면, 이건 그 마음들을 하나로 모아보자는 의미야. 결정을 혼자 끌고 가지 말고, 네 감정도 감정이지만 상대와 같이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하단 얘기지.
별 : 결국…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달 : 카드가 결정을 대신해주진 않아. 근데 방향은 알려줘. 지금 너한테 필요한 건 엎거나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혼자 고집부리지 말고, 이 감정을 같이 꺼내놓고 이야기하라’는 거야. 그게 새로운 균형이고, 네 마음도 덜 다치게 하는 길일 수 있어.
별 : 근데… 이 결혼 말고, 그냥… 내가 왜 이렇게까지 힘들었는지 그걸 모르겠어. 혼자 예민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내가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달 : 좋아, 그 마음에서 질문을 바꿔보자. 이번엔 “나는 이 관계에서 진짜 뭘 지키고 싶었던 걸까?” 그걸 떠올리며 카드 세 장만 뽑아봐.
별 : 이번에는 로즈우드, 티트리, 그레이프프루트가 나왔어
달 : 첫 번째, 로즈우드. 향으론 부드럽지만, 카드의 의미는 ‘수용과 성장’이야. 네가 바라는 건 바뀌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관계였던 거지.
별 : 맞아. 그냥 나로서 사랑받고 싶었어. 너무 참고, 맞추다 보니까 내가 누군지 잊을 뻔했어.
달 : 두 번째는 티트리. 관계의 본질은 서로 이해힘이야. 너는 함께 있어도 나를 잃지 않는 선을 지키고 싶었던 거야.
별 : 진짜… 그 말 와닿는다. 다 공유해야 한다는 게 사랑인 줄 알고, 싫은 말도 못 하고 계속 나를 미룬 것 같아
달 : 세 번째는 그레이프프루트. 낙천적인 시각, 기분 회복. 네가 지키고 싶었던 건 처음 만났을 때의 맑고 유쾌한 느낌이었을 거야.
별 : 예전엔 웃음소리만 들어도 기분 좋아졌는데, 요즘은 그 웃음이 나 때문이 아니라 일 얘기하면서 나오더라.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이 그 사람을 웃게 해.
달 :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기도 해. 하지만 지금 뽑은 카드들은 네 마음을 말하고 있어. ‘나’를 지키고 싶고, 건강한 거리감 속에서 다시 웃고 싶다는 마음. 계속 가든, 멈추든, 기준은 너 안에 있어.
별 : 그 말 듣는데… 속에서 뭔가 울컥했어. 마음은 좀 정리된 것 같은데, 현실은 또 다르더라. 나 혼자 바뀐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야.
달 : 그 다름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뭐야?
별 : 예단. 양가 부모님이 하나씩 말 보태는데, 그게 그냥 말이 아니야. 금액, 순서, 답례… 처음엔 우리 둘의 결혼인 줄 알았는데, 점점 가족 대 가족의 싸움 같아졌어. 난 중간에서 다 맞추느라 지치고, 그 사람은 자기 부모님 말만 되풀이해.
달 : 그건 네가 예민해서가 아니라, 진짜 상황이 복잡한 거야. 이번엔 이렇게 물어보자. “가족의 개입 속에서, 넌 지금 무엇에 상처받았고, 뭘 지키고 싶은 걸까?” 카드 세 장만 골라봐.
별 : (조용히 카드 세 장을 고른다) 클로브, 팔마로사, 사이프러스.
달 : 첫 번째, 클로브. 집착과 기대를 내려놓는 카드야. 아마 너는 조용하고 따뜻한 결혼을 기대했을 거야. 근데 자꾸 예상치 못한 요구들이 그 기대를 흔들었지.
별 : 맞아. 그냥 예쁘게 결혼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양쪽 다 맞춰야 하는 사람이 된 느낌이야.
달 : 두 번째는 팔마로사.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지금의 흐름 안에서 내 마음을 다시 살피는 카드야. 너무 얽혀 있으면, 내 감정인지, 엄마 생각인지도 헷갈리게 되거든.
별 : 그 말 진짜 맞아. 요즘은 내 감정이 뭔지도 모르겠어.
달 : 마지막은 사이프러스. 흐름을 바꾸는 카드야. 그만두란 말이 아니라, 지금처럼은 안 된다는 사인이지. 둘이 주체가 되는 방식으로, 이 결혼의 판을 다시 짜라는 거야. 이미 네 안에서는 변화가 시작되었으니깐…
별 : 그 말… 진짜 와닿는다. 다시 짜야겠다, 진짜.
함류 : 문, 열려 있길래… 들어와도 돼?
달 : 들어와. 이제 둘이 마주 앉아야 할 타이밍이야.
별 : 여기 앉으니까… 좀 어색하지?
함류 : 응. 그래도 와야 할 것 같았어.
별 : 나… 많이 예민했지?
함류 : 아니. 너 혼자 다 감당하게 해서, 미안해.
달 : 오늘은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려고 부른 거 아니야. 지금 너희 마음이 어디쯤 와 있는지, 같이 보는 자리야.
함류 : 자꾸 네 앞에서 말이 짧아지더라. 무슨 말을 해도, 너한테 상처될까 봐 겁났어.
별 : 나도. 말하면 멀어질까 봐, 계속 참고만 있었어.
달 : 그럼 이제, 참지 말고 말해보자.
이번 질문은 “서로를 위해서, 내가 내려놓아야 할 건 뭘까?” 남은 카드가 여섯 장이야. 각자 세 장씩 골라줘.
별 : 난… 베가못, 로즈마리, 마조람.
달 : 첫 번째, 베가못. 감정이 눌려 있었어. 겉으론 괜찮아 보여도 속은 많이 지쳐 있었던 거야.
두 번째, 로즈마리. 계속 생각만 하느라 에너지가 바닥났지. 머리는 복잡한데 마음은 텅 비어 있었고.
세 번째, 마조람. 그 모든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어졌어. 마음을 다시 가라앉히고 싶은 거야.
별 : 맞아. 이제는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준비해보고 싶어. 이번엔 같이… 넌 머 골랐어?
함류 : 난… 미르, 페티그레인, 레몬그라스.
달 : 첫 번째, 미르. 네 생각 안에 갇혀 있었어. 혼자서만 답을 찾으려고 했던 거지.
두 번째, 페티그레인. 마음은 있었지만, 표현이 부족했어. 네 스스로도 네 감정을 잘 모르고 있었고.
마지막, 레몬그라스. 이제는 흐름을 바꾸고 싶단 의지가 보여.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다시 시작해 보려는.
함류 : 난 별이 워낙 잘하니까 그냥 믿고 맡겼는데… 그게 오히려 더 부담을 줬던 거 같아. 나도 같이 했어야 했는데.
달 : 맞아. 이래서 소통이 중요해.
서로를 위해 참다 보면, 정작 마음은 엇갈려.
조금 부족해도, 말로 꺼내야 함께 풀 수 있어.
에필로그
오늘 상담실엔 향이 먼저 들어왔다. 불안과 복잡함, 마음 한켠에 남은 서운함과 조용한 물음들이 마조람 향기 속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이 에세이는 내담자 ‘별’과 상담사 ‘달’의 이야기다. 결혼을 앞두고 마음의 결을 놓치고 있던 예비 신부와,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상담사의 대화를 담았다. 마지막에 문을 열고 들어온 ‘함류’는 그녀의 예비 신랑이었다.
심리 도구로는 아로마 심리 카드 15장을 사용했다. 각 카드의 향과 의미는 두 사람의 감정과 관계를 비추는 거울처럼 곁에 놓여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서로를 모른다. 참는 건 다정이 아니라, 때로는 거리감이 된다.
그리고 그 다름을 말로 꺼내는 순간, 연결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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