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일도 초짜여도 괜찮아
달 : 오늘, 표정에 바람 한 줄기 묻어있다.
내담자 : 바람이 좀 거칠었나 봐. 괜찮은 척하느라 더 쓸렸어.
달 : 그럼 잠깐 멈춰도 돼. 흔들리는 게 아니라, 네 뿌리를 다시 찾는 중일 수도 있어.
내담자 : 근데 타이밍이 참… 결혼도 했고, 돈도 좀 모았고. 근데 딱 하나, 일만 빠져 있어.
달 : 그래서 지금이 중요한 거야. 일이라는 건 방향이 아니라 감각이니까. 넌 지금, 네 자리를 다시 찾는 중이야.
내담자 :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방향이 안 보여.
달 : 그럼 오늘은 이걸로 시작해 보자. 네 인생의 사용 설명서, 오늘은 그걸 한 장씩 열어보는 시간이야.
내담자 : 설명서… 그런 거 진짜 있었으면 좋겠다.
달 : 지금부터는 너한테 필요한 감각을 찾는 거야. 마음이 이끄는 카드 세 장, 골라봐.
내담자 : 첫 번째는 베티버(Vetiver). 왜인지 모르겠는데 이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어.
달 : 그 향은 뿌리야. 몸은 바쁜데 마음이 불안할 땐, 중심부터 놓친 거거든. 넌 지금 너무 올라가려고만 해서 더 허공에 붕 떠 있었던 거야.
내담자 : 그 말… 좀 와닿는다. 나 사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싫어서 뭐라도 하려고 했거든. 근데 이상하게 다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어.
달 : 중심이 없으면 바빠질수록 방향이 흔들려. 무조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어디에 있어야 나다운지부터 찾는 게 먼저야.
내담자 : 그다음은 스피어민트(Spearmint). 시원한데… 좀 맑아지는 느낌?
달 : 활력이 필요한 때야. 지금 넌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이걸 해도 될까, 저건 안 될까. 근데 그런 질문보다 중요한 건, 다시 결정을 내릴 힘이 남아 있느냐는 거야.
내담자 : 맞아… 난 지금, 결정도 너무 피곤해. 뭘 해도 자신이 없어.
달 : 그건 너한테 힘이 없는 게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너무 오래 눌러놔서야. 이 향은 네 안에 숨어 있던 언어를 다시 꺼내줄 거야.
내담자 : 마지막은 만다린(Mandarin). 따뜻하네. 묘하게 편안한 느낌.
달 : 만다린은 너의 ‘괜찮고 싶은 마음’을 기억나게 해. 행복은 대단한 게 아니라, 무너졌던 마음에 다시 신뢰를 쌓는 거거든.
내담자 : 요즘 계속 생각했어. 난 아직 괜찮은 사람일까, 괜찮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달 :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게 너야. 아직 괜찮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단 뜻이고, 그건 충분히 시작이 될 수 있어.
내담자 : 신기하네. 그냥 향을 고른 건데, 내 얘기를 듣는 느낌이었어.
달 : 네 마음이, 답을 찾으려고 해서 아닐까?
내담자 : 근데 이제 뭐 하지? 갑자기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또 밀려오네.
달 : 안 해도 돼. 이건 네가 ‘할 수 있는 걸’ 찾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걸’ 다시 기억하는 과정이야.
내담자 : … 나, 진짜 하고 싶은 게 있었나?
달 : 잘 생각해 봐. 잊고 있었던 그 감각을 다시 불러내는 게 오늘의 목적이야.
내담자 : 그럼, 난 뭘 잘할 수 있을까?
달 : 다음 향들이, 그 질문 곁으로 너를 데려갈 거야. 이번엔 조금 더 내면으로 들어가 보자.
내담자 : 첫 번째는… 클라리 세이지(Clary Sage). 이름이 좀 낯설긴 한데, 뭔가 끌렸어.
달 : 혼란 속에서 길을 보여주는 향이야. 감정이 너무 많으면 생각이 뿌옇게 흐려지잖아. 그럴 때 이 향은, 잠겨 있던 직감을 다시 깨워줘.
내담자 : 요즘 내 머릿속이 딱 그래. 생각은 너무 많은데, 하나도 결정을 못 내리겠고. 계속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느낌.
달 : 그건 네가 결정이 느려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걸 한 번에 생각해서야. 이 향은 너한테 필요한 생각만 걸러내주는 역할을 해. 한 가지만 고르면 돼. 지금은 그걸로 충분해.
내담자 : 다음은 사이프러스(Cypress). 초록빛 나무 같은 느낌이랄까. 뭔가, 바람이 통하는 이미지가 떠올라.
달 : 맞아. 이건 정체된 걸 다시 흐르게 해주는 향이야. 지금 넌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몸은 아직 멈춰 있잖아. 이 향은 그 멈춤을 조용히 흔들어.
내담자 : 진짜, 마음만 앞서고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거든. 근데 묘하게… 이 향엔 “지금부터 움직여도 돼”라고 말해주는 기운이 있어.
달 : 그게 너의 리듬이야. 남들보다 늦어도 괜찮아.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그 리듬을 다시 타는 거니까.
내담자 : 마지막은 블랙페퍼(Black Pepper). 강렬한데, 따뜻해.
달 : 블랙페퍼는 열정을 다시 일으키는 향이야. 네가 한동안 숨겨왔던 ‘나도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널 방향을 잡아줄 거야
내담자 : 사실… 나도 뭔가 시작하고 싶어. 근데 주변에선 “지금 그걸 왜 하냐”라고 하고, 나도 괜히 위축됐어.
달 : 근데도 네 마음은 알고 있었잖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이 향이 말해주는 건 하나야.
“시작해도 돼.”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내담자 : 사실 나, 공부는 일찍 그만뒀어.
중학교 다니다가 집안 사정이 너무 안 좋아서, 그냥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
달 : 어린 나이에, 그런 선택을 해야 했구나.
내담자 : 근데 또 내가 그렇게 활발한 성격이 아니거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서툴고, 일도 잘 못 따라가고. 돈은 벌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달 : 그게 네 잘못이 아니라, 너무 어린 마음이 어른의 짐을 떠안은 거야. 책임감이 앞서버리면, 감정은 자라기도 전에 멈춰버리거든.
내담자 : 집에 빚이 산더미였거든. 외동이라 그걸 내가 갚아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어. 그래서 그냥, 선택했어. 결혼이 답일지도 모른다고. 소개로 만난 사람이랑 결혼해서 한국 왔고, 그게 나한테는 제일 현실적인 길이었어.
달 : 현실을 감당하기 위해 사랑보다 생존을 먼저 택했던 거네.
내담자 : 그렇게 살다 보니까 그래도 좋은 사람도 만났고, 재산도 어느 정도 모았어. 그런데… 이제 와서, 뭔가 내 인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게 좀, 나를 당황하게 만들어.
달 : 늦게 찾아온 마음은, 가장 솔직한 감각일 때가 많아. 버텨야 하는 시간 속에선, 하고 싶은 마음이 늘 뒷순서였으니까.
내담자 : …근데, 막상 뭘 시작하려니까 또 겁이 나. 이 나이에, 뭐든 초짜잖아.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달 : 시작은 언제나 초짜야.
늦은 게 아니라, 이제야 네 시간에 맞춰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한 거지.
내담자 : 그런가?
달 : 지금부터는 네 안으로 좀 더 깊이 내려가보자. 마지막 세 장, 너를 지금 이 자리에 세울 수 있는 향들이야.
내담자 : 첫 번째는… 시나몬(Cinnamon). 따뜻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강하네. 처음엔 반가웠는데… 갑자기 뜨겁게 밀려오는 느낌이었어.
달 : 시나몬은 안으로 타오르는 향이야.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안에서는 계속 끓고 있었던 거지.
지금 네가 느끼는 불편함은,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너 자신의 감각’에 다가가려는 몸의 반응이야.
내담자 : … 그게 익숙하지 않아. 늘 남한테 맞춰왔거든. 지금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뭘 하고 싶은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
달 : 당연해. 평생 다른 사람을 위해 선택해 왔으니까. 이 향은 너한테 물어보는 거야. “이제 너는, 너를 얼마나 믿고 있냐고.”
내담자 : 다음은 유칼립투스(Eucalyptus).
이건 뭔가… 숨통이 트이는데, 동시에 코끝이 시큰해.
달 : 유칼립투스는 통합의 향이야. 잊고 싶었던 일, 외면하고 싶은 감정, 지금까지 너를 버티게 했던 모든 것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 있지.
내담자 : 근데 그게 더 아파. 이제 와서 다 인정하려니까… 그게 너무 부끄럽고, 또 미안해.
달 : 그래도 그 감정을 피해 가지 않았잖아.
지금껏 버틴 너한테 미안해하는 그 마음, 그게 바로 시작이야. 이제야 너 자신을 안아줄 준비가 된 거야.
내담자 : 마지막은 시더우드(Cedarwood).
묵직한데… 차분해. 마음이 바닥에 닿는 느낌이야.
달 : 시더우드는 용기의 향이야. 세상이 흔들릴 땐, 다시 딛고 설 땅이 필요하지. 그게 바로 지금 이 자리야. 누구의 것도 아닌, 너의 감각과 너의 속도로 시작하는 자리.
내담자 : 진짜… 시작해도 괜찮을까?
달 : 이미 시작됐어. 처음으로 ‘네 마음이 원하는 삶’을 말하고 있으니까. 지금부터는 너의 시간이고, 너의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두 번째 시작이야.
로즈 : 오늘, 우리 달이 상담하느라 우리랑 대화할 시간이 없어. 아침 10시에는 50대 여성 내담자, 오후 1시에는 또 30대 후반 남성 내담자. 바쁘다 바빠…
문 열고 들어온 그는 단정했고, 말투엔 여유가 있었지만, 그 속엔 어딘가 조용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지.
달 : 오랜만에 보는 얼굴 같지는 않네.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아.
내담자 : 나도 그래. 이런 데 처음인데… 익숙한 기분이야.
달 : 그럼, 오늘은 그 익숙한 낯섦에서부터 얘기해 볼까?
내담자 : 솔직히 좀 웃겨. 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돈도 벌었고, 일도 나름 잘하고. 근데, 어디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어.
달 : 그런 감정, 보통 ‘관계’에서 시작되곤 해. 채워져야 할 자리가 있는데, 오랫동안 그걸 외면하고 있진 않았을까?
내담자 : 맞아. 연애를 안 한 건 아닌데… 늘 겉돌았어. 나도 깊이 들어가는 게 두려웠고, 진짜 감정을 꺼내 본 적도 거의 없었지. 그러다 보니까, 지금은 시작조차 어려워졌어.
달 : 괜찮아. 오늘은 너 안에 남아 있는 연결의 감각을 다시 꺼내보자. 향 세 장, 마음 가는 대로 골라봐.
내담자 : 첫 번째는… 베르가못(Bergamot). 상큼한데, 묘하게 쓸쓸해. 익숙한 향이기도 하고.
달 : 베르가못은 감정을 통과하게 해주는 향이야. 너, 그동안 너무 자주 “괜찮아”라고 말해왔지? 그 말 안에 너 마음은 없었던 거 알아.
내담자 : …그 말, 그냥 습관처럼 했던 것 같아. 혼자 밥 먹고, 혼자 자는 것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너무 허전했어. 아무한테도 말 못 했고.
달 : 네 마음은 알고 있었던 거야. 괜찮다는 말로는 덮을 수 없는 감정이 있다는 걸.
내담자 : 두 번째는 로즈(Rose). 의외였어. 이런 향에 끌릴 줄 몰랐거든.
달 : 로즈는 사랑의 향이야.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먼저 너 자신이 너한테 따뜻해지는 게 필요했을 거야.
내담자 : 그런 생각 요즘 자주 해.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는데, 말 꺼내는 게 어색하고 부끄러워. 나이도 있고… 괜히 혼자 오버하는 느낌 들기도 하고.
달 : 오버 아니야. 네 안에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아직 있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시작이야. 로즈는 그냥 묻는 거야. “너, 아직 사랑하고 싶어?”
내담자 : 마지막은… 샌달우드(Sandalwood). 깊고 고요한 느낌이야. 생각이 잦아들어.
달 : 샌달우드는 치유의 향이야. 말하지 못했던 감정, 멀리 밀어놨던 아픔, 다 천천히 꺼내어 쉬게 해주는 향이지. 이건 너한테 말해주는 거야. “그땐 힘들었지만, 이제 괜찮아도 돼. 너 잘 버텼어.”
내담자 : … 정말로 괜찮아져도 되는 걸까?
달 : 응. 이제야 진짜 너를 위해 감정을 꺼내고 있으니까 혼자가 아니라, 연결을 꿈꾸는 너로 다시 돌아오고 있으니까.
에필로그
오늘,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말했다.
“이제, 내 시간으로 살아보고 싶어요.”
“누군가를, 다시 좋아해도 될까요?”
하나는 삶을 견뎌온 시간 끝에서,
하나는 성공 뒤의 고요 속에서,
마음 깊은 데 숨어 있던 ‘진짜 나’를 꺼냈다.
향은 단지 향이었지만,
그 안엔 말하지 못했던 기억과, 외면했던 감정과,
잃어버린 감각들이 조용히 깨어나 있었다.
버티느라 잊고 있었던 자신에게,
그들은 오늘, 처음으로 다정하게 물었다.
“괜찮아?”
그리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응, 지금부터는 내가 정한 길로 갈 거야.”
두 번째 시작은 언제나 낯설지만,
그 낯섦을 마주한 용기 안에서,
삶은 다시 부드럽게 숨을 쉬기 시작한다.
익숙해지지 않아도 괜찮은, 나만의 리듬으로.
PS: 이 글은 실제 상담 장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감정 중심 심리코칭형 상담 에세이입니다.
아로마 심리카드는 내담자의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블로그 : 정보 심리 에세이
https://m.blog.naver.com/bina800726
https://novel.munpia.com/476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