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저

좋은 사람인데, 왜 사랑은 어려울까(?)

by 빛나

류 : 같은 창인데, 오전 햇살이라 그런가, 오늘은 또 다른 기분이야.


달 : 오전 공기는 입술보다 숨이 먼저 차지하는 느낌이라, 리듬이 아직 워밍업 단계니까.


류 : 그러게 , 어제는 졸림 시간대라 감정이 잔뜩 끌어올라 있었고, 오늘은 머리는 더 맑은데 마음은 오히려 느려. 이상하게도, 숫자 보고 있다가 이런 공간이 생각났어.


달 : 숫자 보고 있다가?


류 : 투자 제안서였어. 디지털 공급망 예측 플랫폼 관련한 건데, 흐름을 정리하고 변수 따져가며 시뮬레이션 돌리는 그런 쪽. 일은 잘 맞아. 예측도 되고, 반응도 바로 오니까.


달 : 사람보단 시스템에 가까운 쪽이구나. 네가 움직이면, 그에 대한 답이 명확하게 돌아오는.


류 : 맞아. 근데 요즘 자꾸 그 공식이 사람한테는 안 통한다는 걸 느껴져


달 : 타이밍도, 말도, 감정도… 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가끔은, 정적이 오래 머무는 순간이 생기지?


류 : 그 정적이 제일 어려워. 뭘 더 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멀게 느껴졌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 맴돌아.


달 :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멀어진 느낌.

그럴 땐, 말보다 눈치가 먼저 앞서지?


류 : 응. 조급해지면서도,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사실 나 혼자 속도 내고 있었던 거 아닐까 싶더라.


달 : 그 마음, 향으로 한번 꺼내볼래?


류 : 눈감고 바른 자세로 서 있는 클로브(Clove). 이건… 무슨 뜻이야?


달 : ‘집착하지 않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놓지 못한 마음이 있을 때 이 향이 반응하거든. 마음을 열진 않으면서도, 확인받고 싶은 순간들이 있잖아. 겉으론 조심스러웠는데, 안에서는 이미 조급해져 있었을 수도 있어.


류 : 예측이 안 되면 자꾸 불안해져. 관계도 시나리오처럼 흘러가길 바랐던 것 같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오히려 더 멀어지게 되는 것 같아


달 : 마음을 지키려고 만든 선이, 어느 순간 너를 가두는 선이 되기도 해. 알고 있어도, 쉽게 벗어나진 못하잖아. 그게 마음이라는 복잡한 시스템인거야


류 : 클로브에서 내가 뭘 놓지 못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아. 근데, 그다음은 좀 막막해. 놓으면, 뭐가 남는 걸까.


달 : 네가 두 번째로 뽑은 카드는 샌달우드(Sandalwood)야. 포인트는 분명히 짚었는데, 정작 그 마음을 누구와 어떻게 나눌지는 아직 선명하지 않아. 생각이 너무 많아서, 감정이 따라갈 틈이 없었던 건 아닐까?


류 : 맞아. 머리는 이미 결론까지 가 있는데, 감정은 아직 거기까지 못 따라가. 그래서 자꾸 타이밍이 어긋나는 것 같아.


달 : 샌달우드는 감정의 속도를 다시 느끼게 해주는 향이야. 네가 진짜 머물고 싶은 감정, 그 자리를 돌아보라는 신호일 수도 있어.


류 : 그 자리… 솔직히 요즘은, 감정 말고 조건만 자꾸 따지게 되더라. 이쯤이면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압박 같은 거.


달 : 그게 마지막 카드에 반응한 이유일지도 몰라. 네가 뽑은 건 만다린(Mandarin)이야. 이 향은 ‘행복을 느끼는 감각’을 되찾게 해 줘. 이유보다 표정이 먼저 떠오르게 하는 감정. 계산 없이 그냥 좋은 순간들.


류 : 그런 기분, 요즘엔 너무 멀어진 것 같아. 같이 웃고, 아무 말 없이도 편했던 그런 사이. 내가 먼저 복잡하게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


달 : 마음이 정리돼야만 웃을 수 있는 건 아니야.

만다린은 계산 없이 웃던 그때를 떠올리게 해.

그냥 좋아서. 순수해서. 아무 이유 없이 맑았던 시절처럼.


류 : 가만 보면, 감정보단 상황에 더 익숙해진 것 같아. 관계에서도 그냥 정답 맞히는 느낌.


달 : 네가 첫 번째로 뽑은 카드는 페티그레인(Petitgrain)이야. 이 향은 ‘의식적인 마음’의 습관을 말해. 사람과 있을 때도 네가 먼저 계산하고 움직이는 순간이 많았을 거야. 무의식보다, 인식이 더 앞서는 관계.


류 : 맞아. 자연스러움보다 효율을 먼저 따지는 버릇이 있어. 누굴 챙기거나 말할 때도 ‘이럴 땐 이렇게 해야지’ 같은 게 자동으로 돌아가.


달 : 그게 틀렸다는 건 아니야. 다만 그게 계속 반복되다 보면, 진짜 감정이 묻힐 수 있어. 머리로는 잘해도, 마음은 자꾸 거리감을 느끼니까.


류 : 두 번째 카드는?


달 : 레몬그라스(Lemongrass). 방향은 맞는데 에너지가 분산된 상태를 말해. 네가 지금까지 맺어온 인간관계, 많고 넓지만 그만큼 피로도도 컸을 거야.


류 : 맞아. 잘 지내긴 해도, 가끔 다 끊고 쉬고 싶단 생각도 들어. 어울리는 건 쉬운데, 진심을 오래 나누는 건 오히려 어렵더라.


달 : 그래서 마지막 카드가 중요해. 네가 뽑은 건 팔마로사(Palmarosa)야. 이 향은 ‘감정의 유연성’을 상징해. 완벽하게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힘.


류 : 예전엔 관계에서 내가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야 편안해진다고 믿었고. 근데 지금은… 그냥 흘러가게 두는 게 더 편할 때도 있어.


달 : 그게 바로 팔마로사가 알려주는 균형이야. 너무 맞추지도, 너무 밀어내지도 않고. 그렇게 네 감정에 맞춰 유연하게 흐르는 방식, 그게 지금의 너한텐 더 어울릴지 몰라.


류 : 관계 안에서는 이제 좀 덜 조급해진 것 같아. 예전처럼 뭘 자꾸 맞추려 하지 않게 됐어.


달 : 그래, 그만큼 감정에 여유가 생긴 거야. 사람 사이에서 힘을 덜 들인다는 건, 네 안의 구조가 조금 달라졌다는 뜻일지도 몰라.


류 : 구조라니…


달 : 겉으론 익숙해 보여도, 마음 깊은 데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막막함이 있잖아. 사람들과는 잘 지내는데, 정작 스스로는 잘 모르는 어떤 감정 말이야.


류 : 맞아. 겉으론 괜찮은데,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진 잘 모를 때가 있어.


달 : 그래서 이번엔 그 내면을 들여다보려 해. 감정도, 관계도 결국은 내면에서 시작되니까.


류 : 또 카드를 뽑는 거야?


달 : 응. 이번엔 네 ‘기준’을 보여줄 카드야. 겉으로 드러난 감정이 아니라, 더 깊은 설계도를 말해주는 향들. 손이 가는 대로 골라봐.


류 : 이 카드는 좀 민망하네. 앞면 이미지 때문인지 손이 잘 안 가. 내가 이상한 건가?


달 : 아니야. 대부분 사람들도 너랑 비슷해.

첫 번째 카드는 베티버(Vetiver). 흔들리는 뿌리를 단단히 잡아주는 향이야. 겉으론 정돈돼 보여도, 안에서는 계속 중심을 잡으려 애쓰고 있었던 거 아닐까?


류 : 맞아. 흐트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어. 근데 그게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


달 : 중심 없이 쌓은 안정은 오래 못 버텨. 중요한 건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를, 너에게 스스로 묻는 거야.


류 : 어릴 땐 그런 기준 없이도 잘 웃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너무 조심스럽더라.


달 : 두 번째 카드는 유칼립투스(Eucalyptus). 분산된 마음을 다시 하나로 모아주는 향이야. 네 안의 감정과 기준이 따로따로 흘러가고 있었던 거지. 겉으론 괜찮아 보여도, 안에서는 산만했을 수도 있어.


류 : 그 말 좀 아프다. 혼자 있으면 더 산만해져. 어떤 게 진짜 나인지 헷갈릴 때도 많고.


달 : 유칼립투스는 네 안의 조각들을 다시 엮으라고 말해줘. 타인보다 먼저, 너와 너 자신 사이의 관계부터 정리하라는 신호야.


류 : 나랑, 나 자신과의 관계라…


달 : 마지막 카드는 로즈우드(Rosewood). 수용과 성장의 향이야. 무언가를 이겨내기보다, 받아들이면서 자라나는 마음.


류 : 이젠 그런 마음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 예전엔 뭐든 정답을 내야 한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그냥 내 마음부터 들여다보고 싶어.


달 : 그게 진짜 성장이지. 강해지는 게 아니라, 더 부드러워지는 쪽으로 기준을 다시 짜는 것.


류 : ‘기준’이란 말, 예전엔 되게 무겁게 들렸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져. 내 안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달 : 맞아. 네 안에서 시작된 기준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 그리고 이제, 그 기준으로 다시 사랑을 바라볼 준비가 된 것 같네.


가장 어려웠던 감정. 이제, 연애에 대해 말해보자.


류 : 관계는 좀 편해졌는데… 이상하게 연애는 더 어려워졌어.


달 : 관계는 익숙함으로도 유지되지만, 연애는 진심이 아니면 금방 어긋나니까. 너한텐 진심이 중요했던 거야.


류 : 그런 것 같아. 좋은 사람, 괜찮은 조건, 다 있는데도… 어쩐지 마음이 안 움직일 때가 많았어.


달 : 네가 첫 번째로 뽑은 카드는 라벤더(Lavender)야. 이 향은 ‘돌봄의 피로’에 반응해. 사랑하면서도 늘 네가 더 챙기고 맞추려 했던 건 아닐까?


류 : … 맞아. 좋은 연애를 하고 싶었는데, 어느새 내가 더 이해하고 참는 쪽이더라. 그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지쳤던 거야.


달 : 라벤더는 네가 계속 ‘괜찮은 사람’으로 남으려 했던 걸 말해줘. 하지만 사랑은 돌봄의 균형이야. 기대고, 쉬는 관계도 분명 존재해.


류 : 그런 사랑… 나도 해보고 싶어.


달 : 두 번째 카드는 진저(Ginger). 이 향은 ‘주저하는 감정’에 반응해. 좋아하는 마음은 있었는데, 행동이나 표현으로 옮기지 못했던 순간들. 떠오르지?


류 : 많아. 타이밍 놓치고, 혼자만 끙끙대다가 끝난 관계도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다 겁이었던 것 같아. 거절당할까 봐, 실망시킬까 봐.


달 : 진저는 네 마음을 데우는 향이야. “움직여도 괜찮다”는 신호지. 네가 너무 오래 망설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류 : 인정. 그럼 마지막 카드는…


달 : 네롤리(Neroli). ‘깊은 연결’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에 반응하는 향이야. 판단보다 감정, 조건보다 존재 자체에 끌릴 때 나타나는 신호지.


류 : 난 여전히 그런 사랑을 바라고 있었구나. 조율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그냥, 함께 있는 게 편안한 사람.


달 : 그게 네롤리가 말하는 사랑의 방식이야. 마음이 안전하다고 느껴질 때, 비로소 진심이 머무를 수 있어.


류 : 사실, 얼마 전에도 괜찮은 사람을 만났어. 조건도 잘 맞고 대화도 편했는데… 마음이 깊게 움직이진 않더라.


달 : 감정보다 구조가 먼저 맞춰졌던 거야. 네 마음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거지.


류 : 응. 나쁘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망설여졌어. 이 사람이면 괜찮다고 머리는 말하는데 마음은 자꾸 미뤘어.


달 : 그건 네 마음이 더 정직해졌다는 증거야. 예전엔 타이밍에 맞추려 애썼다면, 지금은 네 감정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거니까


류 : 맞아. 이번엔 내가 조급하지 않아서 좋아.


달 : 지금 네가 사랑 앞에서 하는 말들이, 예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어. 억지로 맞추거나 애쓰는 게 아니라, 그냥 네 속도로 말하고 있잖아.


류 : 숨기지 않고, 천천히. 이 감정부터 보여주고 시작하고 싶어.

에필로그


류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오늘 그가 꺼낸 말들은 어느 때보다 조용했고, 그래서 더 진심이었다는 걸.


돌봄이라는 이름 아래 미뤄둔 감정,

좋은 사람이라는 틀에 가둬온 마음,

괜찮다는 말 뒤에 숨어 있던 피로까지.


그 모든 것을 천천히 들여다본 오늘,

그는 이제 조급하지 않은 사람으로,

숨기지 않고 사랑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랑은 정답보다 리듬이라는 것.

그 리듬은 결국, 자기 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은, 더 이상 타이밍을 미루지 않는다.


조금만 더 따뜻했더라면,

조금만 덜 머뭇거렸더라면

그 사랑은 진저처럼 데워졌을지도 모른다.

PS: 이 글은 실제 상담 장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감정 중심 심리코칭형 상담 에세이입니다

아로마 심리카드는 내담자의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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