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나

주말의 회복, 일상의 치유

by 빛나


Patchouli(파출리) : 약보다 위로가 먼저였던 아침. 피부보다 마음이 먼저 긁혔던 걸, 나는 알고 있었다.


Lavender(라벤더) : 네가 말없이 연고를 꺼낼 때, 나는 이미 깊은 내면의 피로를 봤어. 땀띠가 아니라, 감정의 과민반응이었지.


Fennel(펜넬) : 차 안 셀카와 귀여운 판다 그림 연고, 아직 다낭의 흔적처럼 남아 있던 쿠로미 네일 사이로 본 너의 얼굴. 햇살은 좋았지만, 너의 눈빛은 흐리더라. 웃음이 아니라, 버티는 중이었지.


Clove(클로브) : 차가운 국물에 기대고 싶을 만큼 뜨거웠던 오후, 이젠 그녀가 좋아하는 밀면의 계절이라 밀면 먹으며 기뻐하던 모습 너희들도 봤어?


Mandarin(만다린) : 응, 그 표정 기억나. 만두 한 입에도 웃음이 퍼졌지. 차가운 음식 속 따뜻한 마음이었어.


Black Pepper(블랙페퍼) : 겉으론 잘 먹고 잘 웃었지만, 그건 열기로 눌러둔 무언가였지. 땀보다 짠 마음이 더 먼저 배어 나오는 날이 있잖아.


Basil(바질) : 맞아, 그때 난 느꼈어. 미세하게 떨리던 손끝, 순간 숨죽였던 눈빛. 강해 보이지만 아주 얇은 껍질일 뿐이었어.


May Chang(메이창) : 나는 그녀의 걸음을 따라 걷다가 문득 멈춘 발끝에서 향기를 느꼈어. 그날 충주의 바람은 이상하게도 웃고 있었거든. 고요했지만 생기가 있었지.


Pine(파인) : 나도 기억나. 생태관 앞에서 파충류랑 설치류를 바라보던 그녀, 낯설고 작은 생명체들을 보며 말했잖아. “불안도 언젠간 고개를 내밀지.” 말하는 그 목소리가, 울림이었어.


Jasmine(자스민) : 그 앵무새 기억나. 이름은 ‘나나’. 꼬마들이 떠난 후, 조용해진 공간에 그녀와 짝꿍만 남았지. “나나, 안녕” 몇 번을 불러도 대답 없던 그 작은 존재가 , 돌아서는 순간 갑자

“안녕” 했잖아. 사랑해는 따라 하지 않더니 뽀뽀엔 얼굴을 내밀던 그 장면. 마음이, 아찔하게 귀여웠어.


Ginger(진저) : 맞아, 떠나려고 “빠빠이” 했더니 세상 크게 외쳐줬지. 결국 다시 돌아가 대화를 이어간 그녀, 웃는 얼굴 속에 순수한 마음이 피어났어. 그 후 나나가 자꾸 아른거렸대. 잠깐이었지만 잊히지 않는 존재. 누군가의 손길 속에 자라는 생명은, 그만큼 깊이 남나 봐.


Bergamot(베가못) : 목이 말라 차 마시러 가던 중에도, 그녀는 나나를 흉내 냈잖아 옆에 짝꿍이 놀라 물었지, “지금 너, 나나안줄 알았어”그 말에 그녀, 스스로 웃었어. ‘나도 성대모사 꽤 하는 걸?’ 하고. 나나는 그녀의 잠재력을 깨웠지. 귀여움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자존감. 삶은 그렇게, 예고 없이 웃기는 거야.


May Chang(메이창) : 그래서일까, 실희원 마당에 앉아있던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였지. “기와 담장 따라 흐르던 내 마음도, 그 앵무새처럼 대답을 찾고 있었던 걸까.”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자신에게 닿는 말들이었어.


Pine(파인) : 그날의 거북이도 기억나지? 햇살 아래 나란히 붙어 있던 두 마리. 그 느린 생명들 사이로, 그녀가 조용히 웃었잖아.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없이도 전해지는 속도였어.


Basil(바질) : 맞아. 말보다 더 조용한 속도로 그녀는 회복되고 있었어. 파충류 전시관에서 가만히 고슴도치를 보며 “나도 오늘은 들어가 있고 싶다” 말했을 때, 나 그 말이 귓가에 오래 남았어.


Patchouli(파출리) : 그건 회피가 아니라 회복이었지. 뭔가를 피하려는 게 아니라, 다시 숨 쉬기 위한 선택. 가끔은 그렇게 조용히 자신을 껴안아야 하잖아.


Black Pepper(블랙페퍼) : 그래서 더욱 강해지는 거야. 말하지 않아도 다 느껴졌어. 손끝에서, 발걸음에서, 고요한 공기 속에서― 감정이 자라고 있더라고.


Lavender(라벤더) : 감정의 자람은 소리 없이 피어나는 꽃 같아. 잊고 있던 감의 단맛처럼. 시간이 필요했을 뿐, 그건 사라지지 않았어.


Jasmine(자스민) : 그리고 그 단맛은, 결국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는 감정이 되는 거지. 나나는 말을 따라 했고, 그녀는 감정을 따라 웃었고.


Ginger(진저)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기억나? “향기로 기억되는 여행은 오래 남아.” 그 말 안엔 다 있었어. 고요, 회복, 치유 그리고 웃음.


Bergamot(베르가못) : 그건 향기 같았지. 금방 사라질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계속 남아 있는. 감정은 때론 그렇게, 냄새처럼 머물러.


Fennel(펜넬) : 그래서 우린 지금도 얘기하고 있잖아. 그 하루를, 그 순간들을. 마음이 머물렀던 향기 위에서.


May Chang(메이창) : 충주의 바람은 그날 우리 모두를 기억할 거야. 그리고 언젠가 또 불어오겠지, 네 마음의 계절 속으로.


달 : 월요일 아침,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문득, 주말의 공기가 여전히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걸 느꼈다. 충주의 햇살, 거북이의 속도, 나나의 목소리. 그리고 우룩 선생과 가야금 그 기억들이 마음을 한 톤 낮춰주고 있었다.


내담자 :주말 내내 아무것도 안 하고 쉬었는데도, 월요일 아침이 너무 힘들어


달 : 나는 조용히 웃었다. 그냥 쉬는 것과, ‘나를 회복시키는 방식으로 쉰다’는 건 다르다고. 그리고는 꺼내 보여줬다. 충주에서 내가 찍은 앵무새 나나의 사진을.


내담자 : 귀엽네. 말하는 앵무새인가


달 : 안녕, 사랑해, 뽀뽀, 빠빠이, 그리고 나나.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랑해는 안 따라 했어. 그 대신…


내담자 : 뽀뽀는 했어?


달 : 응, 얼굴을 내밀던데 아주 적극적으로


내담자 : (웃으며) 사랑은 못하겠고, 뽀뽀는 되나 봐 저도 요즘 그렇거든 , 마음은 있는데 표현이 안 돼


달 : 그 순간, 주말의 기억이 상담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쉬어간다는 건 결국, 내 마음 안의 나와 다시 대화하는 일이란 걸, 나는 다시 배웠다. 그리고 그 대화는, 다른 누군가와 이어질 때 비로소 향기가 된다.

에필로그


상담은 가끔, 여행에서부터 시작된다.

내 마음이 다녀온 곳, 내가 다시 만난 감정, 내가 미처 건네지 못했던 말.


말하지 않아도 묻어나는 향기 같은 것들.

충주의 앵무새 ‘나나’는 내담자의 마음을 웃게 했고, 거북이의 느린 속도는

그저 숨 쉬고 싶었던 누군가의 하루를 구했다.


회복이나 치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땀띠 위에 바른 연고처럼, 마음에 얹는 조용한 다정함이었을 뿐.

블로그 : 정보 여행 상담 에세이

https://m.blog.naver.com/bina800726

https://novel.munpia.com/476921

작가의 말


사라진 이름을 다시 부른다는 건,

지워졌던 감정과 이야기를 되살리는 일이다.


〈붉은 깃〉은 오래전 감춰졌던 상처와

말해지지 못한 존재의 흔적을 마주하는 장면이다.


기억보다 깊은 곳에서,

감정은 여전히 숨 쉬고 있었다.


이제, 잊혔던 이름은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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