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읽은 책이다. 헤르만 헤세의 책은 쉽지 않다. 그래서 초독 때 이해하기 어려웠다. 흐름만 읽고서 책꽂이에 넣어뒀다.
이상하다. 내용과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책이었지만, 다시 이끌렸다. 단순히 이해를 못해서 다시 읽고 싶은 게 아니었다. 재미도 아니었다. 흐름 자체가 배움과 가르침이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 재독 때의 나는 무언가 필요했던 것 같다. 빈 마음 속에 결핍을 매꾸어야 했다.
당시의 나는 반년 동안 자격증 공부를 마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업무가 많았다. 운동, 독서, 글쓰기 등에 집착하며 살았다. 쉴 틈 없이 몰아 붙였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책을 읽으니 한 문장 마다 배움이었다. 배운 것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기다림, 사색, 스스로에게 답 찾기.
싯다르타는 기다릴 줄 안다. 그가 기다림을 유지할 적에는, 오래 걸리더라도 순조롭게 일이 풀렸다. 현실에서는 기다림이 능사가 아니다. 하지만 조급하면 일을 그르칠 때가 많다. 빠른 실천이 필요한게 현실이라도, 때로는 기다림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언행을 하기에 앞서 생각을 해야 하고, 일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더라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사색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학창시절에 많은 생각을 했다. 별거 아닌 생각도 꼬리를 물었다. 그때 가치관이 넓어졌으며,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도 생겼다. 마음도 편안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사색을 시간이 줄어든 때부터 아니, 거의 하지 않게 된 뒤로부터는, 시선이 보다 편협해졌으며 이해심이 줄었다. 심적으로 조급함도 늘었다. 정보의 홍수와 쉬운 보상작용이 그렇게 만든다는데, 내가 딱 그 경우였던 것 같다.
폰을 내려 놓는다. 가방에 넣고 꺼내지 않는다. 사색할 주제를 정하고, 생각한다. 별거 아니어도 생각한다. 현대사회에 걸맞는 다량의 정보는 흡수하지 못하더라도, 단단해짐을 느낀다. 나의 학창시절의 장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 더욱 단단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배움은 내게 있다. 싯다르타가 세존에게 진정한 가르침은 타인에게 배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길게 말한다.
싯다르타는 이 가치관을 유지한다. 중간에 향락에 빠지기도 하지만, 돌아온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어려운 책 속에서 배운거라고는 고작 기다림, 사색, 스스로에게 답 찾기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실천하며 더 나은 삶을 만들려고 한다.
[짧은 평]
진정한 가르침은 내게 있다.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추구와 결핍 둘 다. 외부로부터 결핍을 채우려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