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인 사과

by 용혀기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스스로가 자본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삶을 기꺼이 희생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은 곧 권력이다. 계급의 정도를 나타내는 징표가 자본인 것이다. 자신의 경제적 자유의 획득을 위하여 타인의 자유를 자본으로 매수하려 하지만 우리는 거부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힘들다고 토로하고 성공의 목표를 자본의 획득과 연결시키고 만다. 인간관계의 건강함을 위항 상호존중과 배려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 또한 자본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자본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의 보호를 위하여 방어벽을 치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는 모습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리고 삶의 허무함을 느끼기도 한다. 황새가 뱁새를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자존심이라고 칭하며 굽히기를 거부한다. 지금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하지만 이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성인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다. 빈자의 모습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오해받는 현실은 드라마 속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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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난한 농부가 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성실하고 정직하게 딸기 농사를 지어 유치원에 납품을 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먹을 것이기에 특히나 신경을 쓰고 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갓 수확한 딸기를 가지고 유치원에 도착하여 평소와 같이 주방 냉장고에 넣고 원장님에게 인사를 마치고 나온다. 그래도 유치원 원장님의 신분이라서 그런지 딸기 아저씨한테 친절한 말투로 대응한다. 유치원 원장님이라는 신분 때문에 입에 발린 소리를 달고 살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 자체도 자본주의가 낳은 오해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사건은 발생한다. 교실에 있던 현금봉투가 사라진 것이다.. 그사이에 다른 선생님과 학부모와 교육청 사람들이 다녀갔다. 물론 가난한 딸기 아저씨가 강력한 용의선상에 올랐다. 그들중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물론 예상하듯이 현금봉투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고 다른 곳에 사용한 것을 잊어버리는데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하지만 사건은 이미 경찰서까지 접수되었다. 사과에 사고를 하지만 이미 상처받은 딸기 아저씨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어쩔 줄 모르고 있던 차에 선생님이 사과하는 의미로 트럭에 실려있는 딸기를 몽땅 팔아주겠다고 제안한다. 이에 딸기 아저씨는 더욱 화를 내며 돈이면 다냐며 고개를 돌리지만 트럭에 있는 딸기 전부 얼마냐고 물어오는 사과자의 물음에 제값은 얼만데 얼마는 받아야 한다며 말끝을 흐리며 사건은 종결된다.


드라마 같은 이야기인 듯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다. 경찰서에서 나오면서 동료 선생님이 딸기를 팔아준 선생님에게 어떻게 사과를 돈으로 할 수 있냐며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이 아님을 훈계한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진심 어린 사과의 말보다는 현실적인 문제해결이 더 효과적인 사과가 될 수 있다고 받아친다. 맞는 말이다. 자존심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자존심보다 앞서는 것은 지금 당장의 현실이다. 진심이 어렸는지 형식적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사과의 말 한마디를 듣는 것보다 오늘 수확한 딸기를 제시간에 납품하거나 팔지 못하면 버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현실인 것이다. 도둑으로 오해받은 마음의 상처보단 우리의 현실은 트럭 위에서 말라가는 딸기가 더 중요하다.


준비되지 않은 채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타인의 삶에서 벗어 나와 주체적인 삶으로의 과정을 걷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책을 읽고 마음을 글로 표현하면서 내적인 성장을 위한 시간을 갖고 있다.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자신의 운을 불러들이면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의 불행은 나중의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한 시험이라고 한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면서 자기 계발의 과정을 지속하라고 한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세상으로부터 준비되지 않은 나, 타인의 삶 속에서 안주하고 있는 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 나로 오해를 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살았다. 인간관계의 범위도 넓히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것이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이라 여겼다. 지금 나는 세상으로부터 오해를 받아 시련이라는 고통을 받고 있지만 긍정정인 사고와 행동이라는 진심 어린 노력의 사과보다는 현실에서 겪고 있는 경제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이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생각과 행동이 현실에 억눌리지 않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동안의 나에게 진심어린 사과의 말을 전한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다는 핑계로 나에게 소홀한 것, 타인의 삶 속에서 안주하는 동안 내면의 나를 버려둔 것, 힘들다고 외쳐대는 감정을 그저 참아내야 한다고 했던 것, 관계형성을 위한 노력을 하면서도 자신과의 관계는 형성하지 못한 것,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지 못해서 지금 시련의 고통을 맛보게 한 것 등에게 미안하다.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지켜봐 준 내면의 나를 보지 못하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했던 것에 미안하다. 진심 어린 사과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있다면 기꺼이 수용하련다. 현실의 시련극복이 그것이라면 이제 우리는 화해를 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더 나은 미래로 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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