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에 춤을 춘다'는 말이 있다. 이는 주로 격에 맞지 않거나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행동을 할 때 핀잔하거나 비웃는 의미로 사용되는 속담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날 들을 달밤에 춤을 추면서 살아왔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추고 있는 춤은 삶의 희망을 그리는 몸짓이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추는 춤을 채근하기도 한다.
달이 뜨는 시간은 밤이다. 그 시간 이면 하루를 정리 하면서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춤을 춘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의 모든 현상은 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에 맞는 시간과 장소가 주어진다. 자기한테주어진 상황과 여건에 맞는 행동, 즉 때와 장소에 맞는행동을 해야한다. 다른 사람들 하고 맞출 필요는 없지만 공통적인 삶의 패턴은 지켜져야 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쉼과 내일을 준비 해야한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다. 물론 특수한 경우도 있겠지만 어쨓든 하루는 낮과 밤이 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주어지는 시간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살았다.그저 서비스로 생각하고 무절제한 낭비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땐 그것이 낭비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관계형성의 기반을 넓히고 더 나은 성공의 기틀을 닦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달밤에 춤을 추면서 영원한 미래를 기도했다.
너무 비약적인 표현 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그렇단 얘기다. 미래의 삶에 대한 걱정으로 지금 당장을 붙잡고 싶어서라고 그랬다고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한 행동까지는말았어야 했다. 그땐 그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삶을 살면서도 자신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낮에도 일하고 밤까지 춤을 추는것이 열심히 산다는 증표처럼 생각했다. 달밤에 춤을 추면 다음날이 피곤하다. 피곤하면 업무에 지장이 생긴다. 그래서 또 밤까지 일을 해야한다.
과거 직장생활중 부하직원이 날마다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면서 퇴근을 늦게했다.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와서 일을했다. 누가 시킨것이 아니다. 스스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고 가끔씩 격려의 전화도 해쥤다. 그러나 세상의 시선은 꼭 한곳만 보지 않았다. 일처리가 늦어서 제때 하지 못한것 이라고 해석을 하는 간부의 이야기가 야박 하면서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때 좌우명이 남들 하는만큼만 하자였다. 남들 일할때 일하고 남들 놀때 더 신나게 놀고, 무리에서 밀려나지만 말자는심보였다. 처음에는 나보다 잘나고 멋있는사람을 보면서 남들의 기준을 잡았다, 그러다 그 기준이 점점 내려오더니 지금은 나와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남들의 기준이 되었다. '끼리끼리' '유유상종' 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님을 실감했다.
스스로가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쉼을 줄여가면 업무에 충실한 모습은 달밤에 춤을 추는것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자신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에 대한 질투와 시기를 부린다. 하여 시선의 방향이 굽어진게 된다. 윗사람에게 잘보여서 승진하려는 속셈이라 생각한다. 주변의 시선은 더 이상의 열정을 방해하게되고 결국 무리중에 섞이지 못한다면, 벗어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우리는 세상에 돋보이기 위한 삶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래도 돋보이고 싶다면 자신보다 조금 부족한 무리에 속해야 돋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무리에서 아무리 높이 올라가 봐야 지금의 자신밖에 안된다. 그래서 자신보다 높은 곳을 향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 곳은 험난한 곳임을 알게되고 그것을 뚫기 위한 노력보다는 포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도전도 아닌 결국 끼리끼리의 무리에 들어가서 안주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야하는가? 아니면 끼리끼리의 무리에서 달밤에 춤을 추어야 하는가?자신의 삶을 살고있다고 하지만 정작 내면의 자신은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한다. 그렇게 달밤의 춤이 아닌 체조를 해야 한다. 성현들의 이야기를 거울삼아 나침반을 만들고, 자기 계발의 과정을 통해 삶의 손목에 시계를 차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행선지는 명상, 자기암시, 독서, 글쓰기, 역의 차표를 끊으면 된다.
한때 라이온스클럽 활동을 했던 적이 있다. 당시 어떤 주제의 강연을 듣게 되었고, 강연자가 무슨 질문을 했는데 내가 답을했더니 책을 선물로 주었다. 두번째 책도 나에게 기회가 주어져서 얻은 것이다. 카네기의 '인간관계론'과 '성공대화론' 은 책장의 맨 앞에 꽂혀있다. 그동안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달밤에 춤을 추느라 관심을 두지 못했다. 아니 두지 않았다.
그렇게 밑줄을 그어가며 읽어 내려갔고, 두번째, 세번째, 이어지면서 이백 오십 번 이 되었다. 무슨 내용인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그동안 나 자신도 몰랐던 또 다른 내가 내 안에 있음을 느꼈고 지금까지 찾아가고 있다. 얼마나 꼭꼭 숨었는지 모르지만 실루엣의 흔들림이 조금만 더 를 외쳐주고있다.
오늘도 나는 달밤에 춤을 추고 있다. 6개월 동안 추었던 헬스춤을 추고 있다. 때와 장소에 맞지않은 엉뚱한 행동이 아니라 철저한 계획에 의한 춤이다.무의미 하거나 불필요한 행동도 아니다. 땀흘리며 걸으면서 내안의 나를 불러내고 나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달밤에 체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춤을 체조를 승화시킬 수 있는 자기 계발 과정의 수행이다. 나는 달밤의 체조를 통하여 건강한 마음으로 내면의 나를 만날것이다. 그런날을 위하여 오늘도 열심히 춤을 체조를 하고 있다.
열두시가 되면은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거리를 달리며 달밤에 체조를 하는 친구가 1.5KM를 달린 러닝지도를 보내올 것이다. 이른 아침도 아니고 한 낮도 아닌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달리기를 하는 친구에게는 자기 내면의 자아를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내면의 자신과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달밤에 춤을 추는 것이다. 건강상의 이유가 크지만 그러함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진정한 자신을 찾고싶은 욕망때문이다.
이제부터 우리의 달밤은 춤을 추는 시간이 아니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내면을 향하여 나가는 시간이다. 우리가 추는 춤은 체조가 되고 그렇게 우리는 건강한 내면과의 조우를 통해 더 나은 삶을 계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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