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 낙찰받은 소유자 32명 아파트 명도기 -빨간쪼끼-
공매로 낙찰받은 안산 반지하 물건의 인테리어를 위해 휴가를 냈다.
값비싼 휴가인데 인테리어 견적만 보러 먼 길을 다녀오기에 아까워 안산으로 가는 도중 혹시나… 휴게소에 들렀을 때 물건 검색을 해봤다.
안산지원 물건 중 감정날짜가 오래돼 저평가되어 있고(감정가 2.7억), 네이버 매물검색을 하니 전세는 없고 매매만 딱 3개가 나온( 매매가가 3.7억, 3.8억)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3년간 공실이었으니 인테리어를 1천만원 정도에 하고, 밀린 관리비를 조금 내면 2천만원 정도는 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를 나오자마자 방향을 법원으로 틀었다.
결과는 낙찰. 경매는 매번 패찰이라 기대도 안했는데 웬일이람?
그런데 뒤에서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싸늘한 느낌. 법원을 나오자마자 부동산으로 가야 하는 이 느낌.
아니나 다를까 1층 시세가 3.3억, 3.4억이란다.
뭐가 씌었는지 매도가를 3.7억으로 생각하고 입찰했는데, 취등록세에 관리비에 인테리어에 아주 그냥 반나절 만에 일을 낸 셈이었다.
당시 한 달 사이에 5개 물건을 낙찰받는 바람에 잔금 맞추기도 힘든 상황이고, 불허가도 안 되는 상황이고, 보증금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큰돈이다.
차분히 내용을 정리하니 의외로 답은 쉽게 나왔다.
잔금을 미납해 보증금 2700만원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소유권이전 후 매도 시 손실로 처리해 나중에 양도차손으로 상계할 수도 있지 않나.
명도를 하려니 그제야 소유자 32명이 눈에 들어왔다.
단전·단수되어 빈집인 것은 관리사무소에 확인했는데 32명 중 아무도 연락처가 없고, 내용증명을 보냈으나 단 한명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정말 큰일났다.
32명 소유자 등기부등본에 나온 주소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몇동 몇호 사는 사람 연락이 안 되니 집주인이 연락 달라고 인터폰 좀 해달라. 아니면 전화번호를 전해달라' 이런 식으로 어렵게 몇몇과 통화가 됐다.
아… 그런데 소유자 32명이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른단다.
내용인즉슨 이 물건 소유자 할머니가 주택연금을 받다가 사망하면서 상속 처리 됐는데, 자식이 없다 보니 먼 친척들에게 재산이 골고루 퍼진 것이었다.
그들은 이 할머니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법원에서 자꾸 등기가 오고 경매니 뭐니 하니까 채무를 상속받는 줄 알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무것도 안 받겠다'는 상황이었다.
배당기일은 다가오는데 배당도 안 받겠다는 바람에 법원 경매계장님과 통화해 어렵사리 배당금액이 나와 있는 서류를 받았다. 많게는 수천만원에서 몇백만원까지였다.
나는 이 금액으로 딜을 하기 시작했다. '이 배당금을 안 받으시겠냐? 나와 관리비 및 명도에 대해 협의되지 않으면 내가 배당금에 가압류를 걸 것'이라고.
여러명과 일일이 협상해 결국 문도 따고 관리비도 받아냈다.
처음에는 다들 서로서로 모르는 관계에서 연락처를 주었더니 법무사를 디밀어 대항하는 바람에 살짝 쫄기도 했다.
법무사 사무장님이 '얼마면 되냐' 하기에 밀린 관리비랑 수고비 10만원 달라고 했더니 '그건 드려야죠'라고 쿨하게 말씀하시는데 너무 조금 부른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32인과의 명도가 끝이 나고 집에 들어갔더니…
3년 공실이라 엉망일 줄 알았는데 인테리어가 싹 되어있는 상태였다.
돌아가시기 전에 씽크대랑 도배까지 다 해놓으신 것 같았다. 붙박이장에 꽃무늬 벽지까지. 싹 청소만 하고 부동산에 내놨더니 초역세권이라 일주일 만에 전세가 나갔다.
11월 22일에 낙찰받고, 32인과 힘겨운 여정 끝내고, 2월 17일에 전세 입주했는데 결과적으로는 3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경매하면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말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다.
고가낙찰로 보증금을 포기하냐 마냐 고민했지만, 이제는 시세를 보며 웃음 짓는 나를 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딱 맞는 듯하다.
위 글은 '행복재테크' 칼럼니스트 빨간쪼끼님의 옛 칼럼을 재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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