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속에 사표 하나쯤은 품고 살잖아요

퇴사각을 재는 워킹맘

by CelinA

회사에서는 일 년에 두 번 상사와 평가와 면담을 진행한다. 상반기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 해서 일 년에 총 두 번.

평가 시즌만 되면 이번엔 또 무슨 말을 써야 하나, 면담 때는 무슨 얘길 해야 하나 미리부터 걱정이 앞선다.

나는 내가 한 일을 드러내거나 포장하는 것에 재주가 없다. 뭔가 낯간지럽고 부끄럽다고나 할까. 이것도 회사 생활에서 필요한 능력이자 기술이라는 걸 잘 알지만, 나는 십여 년을 넘게 이 일을 해왔어도 아직도 이게 쉽지 않다.


고.과.면.담.

올해도 어김없이 평가 시즌이 돌아왔다. 얼마 전, 나는 상사와 하반기 면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시작된 면담이었지만 끝은 파국이었다.


나는 한 해 동안 내가 나름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프로젝트를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전임자들도 없는 상황에서 잘 알지 못하는 문제들까지 혼자서 하나하나 해결해야 했다. 나는 나름 많이 노력했고 때로는 혼자 그 모든 걸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상황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게 주어진 일이니,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나의 상사에게는 그것이 부족했나 보다. 왜 더 많은 것을 하지 못했느냐 물었다. 왜 본인이 하라고 한 일을 다 하지 않았냐 했다.

나는 화가 났다. 일 년간의 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무가치한 일을 여태 열심히 한 사람인가, 자괴감이 들었다.



퇴사 각을 재다

면담 이후, 나는 모든 근로 의욕을 한 번에 상실해 버렸다. '어차피 열심히 하면 뭐 해. 또 인정받지 못할 텐데...'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콕 박혀버렸다.

그리고 퇴사를 결심했다. 괜히 퇴직금 조회도 한 번 눌러보고, 소심하게 혼자 "배 째라 배 째"를 시전 해보기도 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다.

" 나 진짜 회사 그만둬야 할까 봐. 이 놈의 회사, 정말 답이 없어."

" 그만둬, 그만둬 " 남편은 나를 달래며 말했다.


그래, 결심했어. 관두는 거야!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만약 정말 퇴사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그 뒤를 따라왔다.


만약, 퇴사를 하면 말이지...

1. 내 월급이 사라지겠지. 그러니 씀씀이를 줄여야겠지.

1-1.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것도 맘대로 못 사고,

1-2. 좋아하는 여행도 마음대로 못 가겠지.

1-3. 나중에 우리 아이 학원비 댈 돈도 없으면 어떡하지.

2. 음식도 내가 직접 다 만들어야겠지. (요리 못 함)

3. 집안일도 육아도 모두 내가 다 맡아서 해야겠지. (막상 하려니 잘할 자신 없음)

4. 그래도 이모님 비용은 아껴서 좋겠다.


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문득 정신이 들었다.

아직은 아니구나. 아직은 내가 퇴사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답답하고 힘이 들지만, 대책 없는 퇴사는 더 위험하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오늘도 그렇게 마음을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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