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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Nov 28. 2024

숙이 씨와 데이트

 구남친과 헤어진 후 처음 맞는 주말, 숙이 씨대전에서의 데이트를 제안했다. 엄마가 사는 곳에서 대전까지는 KTX를 타고 한 시간 남짓한 거리, 내가 사는 곳과 딱 중간 지점이 대전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난생처음 대전 당일치기 여행을 하기로 했다.




 지도 마시지도, 잠들지도 못퀭해진 나의 얼굴을 숙이 씨는 엄마표 농담으로 맞이했다. (엄마 특유의 실없는 개그, 맨날 하는 그거 있음) 한 번 피식 웃고는 미리 알아본 샤브샤브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 중에 구남친 얘기는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 친구 얘기, 내 친구 얘기, 할머니 얘기, 동생 얘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이별 후 처음으로 배불리 식사를 마무리했다.


 온천을 좋아하는 숙이 씨의 "대전이 온천물이 좋다 카더라!"는 말에 온천도 갔다. 뜨거운 물에 온몸을 푹 담가 떫은 기억을 오래오래 우려내었던 것 같다. 온천이 딸린 아주 오래된 호텔이었 시설은 낡아도 동네 사람들이 꽤나 방문하는 곳이었는데 지금 다시 찾아보니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 아쉬운 마음이 든다.


 개운하게 온천욕을 마치고 나선 시내로 돌아와 그 유명한 성심당 구경을 했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성심당 부티크 작은 테이블에 끼여 앉아 롤케이크 한 조각과 뜨거운 차 올려두고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사진도 찍었다. 그때 찍은 사진 속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수척한 얼굴이 아직도 애잔하다. 서로 실없는 말들을 나누며 먹었던 케이크가 참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역 대합실에 앉아 작별 인사를 할 때가 되어서야 엄마는 구남친 얘기를 꺼냈다. 다 잘 될 거라고 말해주었던 것 같은데 사실 그 말의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엄마가 내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시간을 내어 먼 곳까지 와 주었다는 사실이, 내 옆에 꼭 붙어 앉은 엄마의 체온이 참 따스했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일상을 어떻게 회복하게 되었는지 자세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족들이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세상에서 나보다 내 편을 더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건 숙이 씨일 것이다.


 이런 경험은 숙이 씨와 내가 아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도 하고 또 그녀의 걱정이나 간섭 없이 내가 오롯이 혼자서기를 해야 한다고 느끼게도 한다. 나는 내가 언젠가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숙이 씨와의 데이트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쭉~~


[딸내미기 추천하는 엄마와 대전 당일치기 추천 코스!]
-> 따끈한 샤브샤브 집에서 점심 식사
-> 유성 온천 지역에서 뜨거운 온천욕
-> 성심당에서 달달한 디저트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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