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남친과 헤어진 후 처음 맞는 주말, 숙이 씨가 대전에서의데이트를 제안했다. 엄마가 사는 곳에서 대전까지는 KTX를 타고 한 시간 남짓한 거리, 내가 사는 곳과딱 중간 지점이 대전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난생처음 대전 당일치기 여행을 하기로 했다.
먹지도 마시지도, 잠들지도 못해 퀭해진 나의 얼굴을 숙이 씨는 엄마표 농담으로 맞이했다. (엄마 특유의 실없는 개그, 맨날 하는 그거 있음) 한 번 피식 웃고는미리 알아본 샤브샤브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 중에 구남친 얘기는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친구 얘기, 내 친구 얘기, 할머니 얘기, 동생 얘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이별 후 처음으로 배불리 식사를 마무리했다.
온천을 좋아하는 숙이 씨의 "대전이 온천물이 좋다 카더라!"는 말에 온천도 갔다. 뜨거운 물에 온몸을 푹 담가 떫은 기억을 오래오래 우려내었던 것 같다. 온천이 딸린 아주 오래된 호텔이었고 시설은 낡아도 동네 사람들이 꽤나 방문하는 곳이었는데 지금 다시 찾아보니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 아쉬운 마음이 든다.
개운하게 온천욕을 마치고 나선 시내로 돌아와 그 유명한 성심당 구경을 했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성심당 부티크 작은 테이블에 끼여 앉아 롤케이크 한 조각과 뜨거운 차를 올려두고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사진도 찍었다. 그때 찍은 사진 속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수척한 얼굴이 아직도 애잔하다. 서로 실없는 말들을 나누며 먹었던 케이크가 참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역 대합실에 앉아 작별 인사를 할 때가 되어서야 엄마는 구남친 얘기를 꺼냈다. 다 잘 될 거라고 말해주었던 것 같은데 사실 그 말의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엄마가 내 기운을북돋아주려고 시간을 내어 먼 곳까지 와 주었다는 사실이,내 옆에 꼭 붙어앉은 엄마의 체온이 참 따스했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일상을 어떻게 회복하게 되었는지 자세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족들이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세상에서 나보다 내 편을 더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건 숙이 씨일 것이다.
이런 경험은숙이 씨와 내가 아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하고 또 그녀의 걱정이나 간섭 없이 내가 오롯이 혼자서기를 해야 한다고 느끼게도 한다. 나는 내가 언젠가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숙이 씨와의 데이트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쭉~~
[딸내미기 추천하는 엄마와 대전 당일치기 추천 코스!] -> 따끈한 샤브샤브 집에서 점심 식사 -> 유성 온천 지역에서 뜨거운 온천욕 -> 성심당에서 달달한 디저트 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