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부모님 밑에서 제대로 된 케어를 받지 못했던 숙이 씨는 고향을 떠나 지금 살고 있는 큰 도시로 올 때도 그다지 큰 꿈이나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더 큰 세계로 나아가기 전 숙이 씨는 결혼과 출산을 맞이하게 되는데.. 펼치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아니면 부모님의 적극적인 서포트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자녀들에게는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쏟는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엄마가 매일같이 싸준 과일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친구들은 내가 과수원 집 딸인 줄 알았다고 한다.), 야자가 끝나면 매번 데리러와준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특히 숙이 씨는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이나 읽고 싶은 책은 정말 아낌없이 사 주었다.
그 모든 것이 숙이 씨의 희생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야 알았다.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을지도. 지나고 보니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여유롭다기보단 숙이 씨가 자신이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줄여 나와 동생에게 먹이고 가르쳤던 깨달았다.
그걸 깨답고 나니 드는 감정은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부담감이었다. 나는 과연 숙이 씨가 그런 노력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나나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면 숙이 씨가 나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내가 엄마를 실망시켰구나 생각하면 괴롭기도 했다.
철없고 미숙한 딸은 숙이 씨의 꿈이 '나'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자신을 대신해서 딸인 나를 꿈으로 삼았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엄마의 수많은 꿈들 중 하나가 '딸의 행복한 삶'이었을 뿐. 엄마는 내가 자신을 대체해주길 바란 게 아니라 내가 나대로 평안하게 살기를 바랐던 것이다.
지금 숙이 씨의 꿈은 "건강이 제일이다, 그 다음은 즐겁게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다." 라고 말하곤 한다. 예순이 다된 숙이 씨에게 남은 꿈은 이제 남은 우리의 시간이 건강하고 다정하게 오래오래 지속되는 것. 그런 점에서 숙이씨가 꾸는 꿈과 나의 꿈은 꼭,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