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이 씨의 어머니, 즉 나의 할머니는 캐릭터가 아주 확실한 분이다. 어렸을 적 할머니 댁에 가면 늘 집에 안 계시곤 하셨는데 그 이유는 할머니가 장사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크게. 도매업을 하셨던 할머니는 항상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새벽마다 물건을 떼러 나가시곤 하셨는데 어렸을 땐 그저 할머니가 많이 바쁘시단 생각만 했다.
이제는 팔순이 다 되어가시는 할머니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을 계속하셨었는데, 늘 바쁘셔서 그런지 사실 손자 손녀들과는 항상 데면데면하셨었다. 그러다 장사를 그만두시고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이제는 손자손녀들이 다 장성하여 타지에 있으니, 오히려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기는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그러나 근래 몇 년 동안 남는 것이 시간이었던 나는 바다를 보고 싶다는 핑계로 할머니 집이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을 발이 닳도록 드나들게 되었고, 그 덕에 어머니의 어머니가 겪은 삶의 한 페이지나마 전해 들을 수가 있었다.
할머니는 결혼과 동시에 고향을 떠나 지금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 오게 되었는데, 홀 시어머니와 위로는 누나가 여럿인 집의 막내아들인 할아버지는 정말 지지리도 가난했다고 한다. 쌀이 없어서 고구마나 다른 곡식들을 넣은 밥을 주로 지어먹었다고 하는데, 그 밥이 정말 먹기 싫더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어느 날, 어선들이 부둣가에 부려놓은 오징어며 생선 상자를 보고는 저걸 내다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 길로 오징어 한 상자를 사 와서 깨끗하게 손질해 말려서 팔았더니 순식간에 팔려나갔다고. 손에 쥐어지는 돈을 보고 '아, 이게 돈이 되겠구나.' 싶었던 할머니는 그 길로 장사에 뛰어들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버스를 타고 부둣가에 가서 한두 상자씩 물건을 떼오다가 트럭을 얻어 타고 옆 마을(더 큰 항구 도시였다.)에서 열상자 스무 상자씩 물건을 사 와서 팔았다고 한다. 좋은 물건을 잘 볼 줄 알았던 할머니가 떼어온 물건들은 부리나케 팔려나갔단다. 그때는 새벽 일찍 일어나 트럭 짐칸을 얻어 타고 다니면서도 돈 버는 재미에 힘든 줄을 모르셨다고 하셨다.
그렇게 시작해 1톤 트럭에 물건을 떼어 올 때까지 할머니는 수십 년간 생선을 팔아 자식들 학교도 보내고 독립을 시키고 손주들 용돈도 주셨다. 할머니가 왜 장사를 하게 되었는지, 할머니의 젊은 시절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난 한 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었는데 이런 히스토리를 듣고 보니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왜 그렇게 목청이 크신지, 왜 그렇게 옷차림과 외모를 깔끔하게 하는 데에 신경 쓰셨는지 알 것도 같았다.
할머니가 이렇게 장사에 매진하시는 동안 나의 엄마, 숙이 씨는 어머니의 케어를 거의 받지 못했는데 이것이 조금은 섭섭했던지 딸인 나에게는 당신의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없도록 했다. 아주 어릴 적 기억에서부터 나는 숙이 씨의 손길 하나 받지 못한 부분이 없었다.
이렇게 어머니에서 어머니로 내려오는 히스토리를 읽어내는 일이 나는 퍽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인생이 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그 딸이 어머니가 되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가히 한 편의 대하드라마와 같았달까. 이것은 비단 우리 집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우리 가족의 역사를 틈틈이 기록해 두고 있는데, 그 내용은 나의 또 다른 연재물인 [할머니와 여름 방학]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지금 듣고 기억해두지 않으면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언젠가 나의 딸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가족에 이런 멋진 어머니들이 있었다고, 꼭 말해 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