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를 얼마나 많이 닮았는지 느낄 때면 깜짝 놀라곤 하는데, 때로는 숙이 씨의 모습에서 내 인생의 예고편 같은 것을 엿보기도 한다. 숙이 씨와 나의 닮은 점들 중 제일 큰 것들을 꼽자면
1. 성격이 급하고 감정적임
별다른 일이 없을 때는 평온한 기분으로 모든 것을 여유롭게 해결하곤 하는데, 조금이라도 예상 밖의 사태가 다치면 감정에 불이 붙으며 이성적인 사고 판단이 안 된달까? 이 점을 숙이 씨와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 뼈저리게 느꼈는데,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둘 다 혼비백산하여 서로 언성을 높이는 탓에 결국 둘 다 감정이 상해버리고 만다. 위기상황에서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2. 걱정이 많음
길을 걷다가 내 옆으로 차가 지나가기만 해도(한 팔 정도로 먼 거리인데도) 숙이 씨는 깜짝 놀라며 '어후!' 소리와 함께 나를 안으로 잡아당긴다. 내가 서른몇 살이 된 지금도 그렇다. 숙이 씨의 걱정거리는 가짓수가 끝이 없다. 대부분 가족들의 건강, 딸의 미래 등을 걱정하곤 하는데나도 숙이 씨와 걱정 카테고리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물리적인 위험(각종 사고나 화재 등)들을 과하게 걱정한다는 것이 특이점이다.
3. 칭찬을 잘 못함
숙이 씨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의심한 적이 없지만 돌이켜보면 엄마는 늘 뭔가를 잘 해내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수행하기를 바랐다.(공부, 교우관계 등) 숙이 씨의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면 엄마가 나를 마땅치 않아 한다는 생각이 들어 사춘기 때는 꽤나 괴로워하기도 했다. 나는 누군가의 장점을 잘 눈치는 채지만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스타일인데 그런 점에서는 숙이 씨를 닮은 것 같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나 완전 숙이 씨 버전 2잖아?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성격의 모 나보이는 부분도 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감정적이기 때문에 안 좋은 일은 금방 잊어버리고 가라앉았던 기분을 금방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은 장점이다. 걱정이 많기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주의를 기울여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나쁜 일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다. 칭찬을 잘 못하는 건 실드가 안 된다. 그래서 엄마도 나도 요즘 많이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닮은 점을 하나씩 찾아가는 게 숙이 씨 입장에서는 좀 복장이 터질지도 모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재밌기도 하다. 나에게 아이가 생겨 그 애에게서 나와 닮은 점을 발견한다면 어떤 기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