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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Dec 12. 2024

숙이 씨를 만나러 가요

 주말에 청첩장 모임(곧 결혼하는 친구가 식사를 대접하며 결혼식에 초대하는 문화. 종이로 된 청첩장에 받을 사람 이름을 적어서 준다. 편지를 써서 주기도 함.)이 있어 본가에 내려갔다. 기차역에 데리러 온 숙이 씨가 얼굴을 보자마자 잔소리 폭격을 시전 한다.


*주의* 경상도 사투리로 읽어주세요


 입술 바짝 마른 거 봐라.
물 좀 마셔라. 기차칸에서 물 안 마셨나?
(물을 한 컵 가득 따라주며)
이거 다 마셔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데려간 식당(아구찜 먹으러 갔음)에서도 콜라겐을 먹어야 한다, 생선은 껍질인데 왜 그걸 안 먹냐부터 탄수화물은 먹지 마라, 밥을 남기고 고기를 먹어라, 멸치 반찬도 좀 먹어 봐라. 너는 칼슘이 부족하다.


이쯤 되면 알 수 있겠지만 숙이 씨의 주된 잔소리 분야는 음식과 건강에 대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잔소리를 계속된다. 우리의 대화 장소는 주로 식탁 앞이다.(숙이 씨가 주는 것을 계속 받아먹어야 하므로. 오늘이 아니면 못 먹일 것처럼 나에게 음식을 밀어 넣고는 한다.) 부엌 창문이 열려 있길래 추워서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더니


자세가 와 그러노. 똑바로 앉아라 등이 너무 굽었다.


 추버서 그렇다 추버서! 한마디 했더니. 아, 맞나?그러고선 숙이씨, 자신을 가리키며 엄마 봐바라. 엄마는 추운줄을 모르겠다~고 하더니 내 손을 마구 주무르며


그러게 엄마가 따시게 입고 다니라 안하나! 내복 입고 핫팩도 항상 하고 다녀라. 아이고~ 손이 와이래 차노!


 여기까지도 그려려니 했다. 그런데 물 한 모금 마시려고 식탁 위의 물컵을 잡자마자 숙이씨가 나에게 짜증스런 말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엄마가 겨울에는 찬물 말고 따신 물 마시라고 했제!


 여기서 나는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엄마!
내가 물 온도까지
잔소리 들어야 되나!


숙이 씨도 참지 않는다. 어디서 엄마한테 버릇없이 구냐고 한소리 하길래 나도 성질이 뻗쳐서 엄마는~ 잔소리 안 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맞받아쳐버렸다. 그렇게 만난 지 6시간도 안 되어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는데 놀랍게도 이런 '모녀대전'은 처음이 아니다.


자기 식대로 해야 적성이 풀리는 숙이 씨와 만만찮게 고집센 나는 만나기만 하면 꼭 이렇개 한번은 부딪히고는 한다. 이 정도는 싸움 축에도 끼지 않는다. 이십년 동안 어떻게 같이 살았나 도통 모르겠다.


내가 서른이 넘어서도 우리는 변함이 없는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모녀지간 화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조금씩 단축되고 있다는 것.


환갑이 다 된 숙이 씨는 이제 성질을 내도 예전 같지가 않다. 이제는 엄마 힘이 옛날 같지 않다는 것이 느껴지면 내 성질을 멋대로 부리기가 힘다.

이번에도 분명 둘다 소리 소리를 지르며 싸웠는데 15분 만에 화해를 해버렸다. 모녀사이는 이렇게 이상하다. 우리는 둘도 없는 적이자 동지이다.


여하튼 광속 화해를 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다시는 숙이 씨와 싸우지 말아야지, 내가 참아야지 결심했지만 오늘도 전화를 해서는 '도대체 내가 보낸 생강차 왜 안 먹냐'라고 잔소리를 해대서 또 짜증이 울컥 치밀어 올라버린 딸내미다. 결심을 지키기가 정말이지 도통 쉽지 않다!




웹툰 '낢이 사는 이야기' 참조


최근에 본 낢이 사는 이야기 16화, 엄마와 딸의 싸움이 너무 공감되어 링크를 공유한다. https://comic.naver.com/webtoon/detail?titleId=833255&no=17&week=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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