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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Dec 19. 2024

숙이 씨, 행복한가요?

 생각해 보면 숙이 씨에게서 '행복하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맛있다, 좋다, 기쁘다는 말도 하긴 하지만 잘은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도 엄마의 이런 성격을 꼭 닮았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숙이 씨가 꽤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항상 나에게 하는 말이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이기에 나는 숙이 씨가 퍽 행복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딱히 긍정적인 표현은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가 제일 자주 하는 말은 '괜찮다'는 말이었다. '괜찮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라.', '괜찮다, 너무 마음 쓰지 마라.' 같은 말들. 그게 숙이 씨가 행복하다는 뜻인가? 숙이 씨는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뜻인가? 난 잘 모르겠다. 삼십 년 동안 내 인생의 행복에 대해 고민해 왔지만 내 행복이 아닌 엄마의 행복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물론 숙이 씨에게 물어보면 '나는 너희들을 낳아 행복했다.'라고 말했겠지만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이 어디 행복한 일이기만 했을까. 그리고 내가 알기론 그녀의 결혼 생활도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다. 행복 불행 중 오히려 불행 쪽에 가깝지 않았나, 자녀인 나는 생각해 왔다.


 여자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때때로 고민했던 화두인데, 혹자는 여자의 행복은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들 한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숙이 씨의 결혼 생활을 오래 동안 지켜본 사람으로서 느끼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럼 여자의 행복은 남편과의 사랑에서만 오는가, 자녀와의 사랑에서 오는가. 물론 남편과 자녀와의 사랑에서 느끼는 행복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그러나 한 인간의 행복을 구성하는 요인은 아주 다양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편도 자식 알 수 없는, 도무지 끼어들 수 없는 그녀만의 행복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딸인 나는 알 수가 없지만. 비단 여자뿐만 아니라 성별을 떠나 모든 인간이 그럴 것이니 누구나 자신만의 행복 꾸러미가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투자를 할 때 포트폴리오를 잘 분배해라,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있다. 행복도 매한가지라 생각한다. 파트너, 자녀와의 행복에 나의 모든 것을 담아버린다면 언젠가 균형을 잃을 때 쉽게 무너지게 될지도 모른다. 숙이 씨에게도 나와 아빠는 모르는 행복 꾸러미가 가득 있다면 좋겠다. 아마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엄마는 벌써 무너졌을 테니까.


 숙이 씨 행복한가요? 나는 나뿐이 아닌 세상의 많은 것들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면 좋겠어요. 멋진 풍경을 보면 좋다고 말하는 당신이, 맛난 차를 마시면 좋다고 말하는 당신의 그 말이 사실 행복하다는 뜻이라면 참 좋겠어요.


우리 함께 또 따로 오래오래 행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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