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겹지? 학교에 미친 개라도 들어왔으면 좋겠다.' 열여덟 고등학생 때였다. 멍하니 창문 밖으로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종종 들곤 했다. 하지만 졸업할 때까지 학교로 미친 개가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수능날이 얼른 오기를 또 간절히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던 시기도 금세 지나고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학 생활은 좀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최소한 지겹지는 않겠지) 웬걸. 첫 해 봄 벚꽃이 지고 난 뒤에는 딱히 새로운 게 없었다.
취업을 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자 문득 이 지겨움에서 탈피하려면 고향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서울로 왔다. 말로만 듣던 한 번도 살아보지못한 도시, 말은 태어나 제주주도로 가고 사람은 태어나 서울로 간다 했지. 그래, 그래서 내가 왔다.
많이도 돌아다녔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갈 수 있는 곳은 모두 갔고, 배울 수 있는 것도 모두 배웠다. 교양을 두루 갖춘 문화인이 되기 위해 맛집들은 특히 빼놓지 않았다.
연애도 해 봤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것들 중 하나가 연애지만 그것도 잠시뿐. 연애 자체가 내 인생에 큰 의미를 부여해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집에서 유튜브만 봤다. 눈 떴을 때부터 자기 직전까지, 밥 먹을 때부터 샤워할 때까지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하루에 8시간씩 공부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한 때는 그랬던 내가 하루에 8시간씩 핸드폰을 본다. 이제 더 이상은 볼 영상이 없어졌다.
나 도파민 중독, 뭐 그런 건가?
생각해 보면 나는 반짝이는 순간을 갈망했던 것 같아. 나 말고 모두가 반짝이는 것만 같은 이 시대에 인싸 같은 대학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뭔가를 열심히 배우거나 멋진 취미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연애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내게도 있었다.
그렇다면 멋지거나 반짝이지 않았던 모든 순간들은 내게 무의미했었나? 그건 아니었다.
밤 열한 시 독서실에서 집으로 고요한 밤길을 친구와 걸어가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때,휴강하고 일찍 집에 들어와 엄마랑 나란히 소파에 앉아 일일 드라마를 봤을 때, 취준 시절 더운 여름날 엄마가 푹 고아준 삼계탕을 먹었을 때, 더운 여름 집도 차도 없어 땀을 뻘뻘 흘리며 길거리 데이트를 하며 커피 한 잔을 나눠 마실 때, 힘든 하루 일과 후 시원한 맥주 한 캔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모두 내 인생의 반짝이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지루했다고 생각했던 나의 인생도 돌이켜보면 그렇게 잔잔히 반짝이던 순간들이 있었다.
미친개를 마주하는 것 같은 도파민이 찌릿하고 올라오는 일은 생각해 보면 일어나지 않아야 좋은 일이다. 누가 봐도 멋지고 화려한 순간은 사실 인생에서 많지 않다. 빅 이슈 대신 소박하고 작은 즐거움으로 일상을 채워보는 것도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