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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Aug 22. 2024

숙이 씨도 엄마가 있다

숙이 씨에게도 엄마가 있다.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 윤옥자 씨.

요즘 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숙이 씨는 부단히 도 애를 쓰고 있다.

며칠 전 통화에서는 할머니의 식습관과 생활 습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밥 먹꼬 바로 눕지 말라고 그래- 말했는데 고마 귀찮다꼬 누워뿌드라. 우아면 좋노?"

"반찬 해 준 것도 냉장고에 그대로 있고 먹지도 않고 어? 진짜 해주지 마까보다!"


숙이 씨의 고향은 차로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장사를 하시던 할머니는 더 이상 일을 못하시게 되자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시고 계신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밖에서 일하셨기 때문에 지금의 생활이 익숙지 않으신 것인지 아니면 기력이 쇠하신 것인지.. 아마 둘 다일테지만 숙이 씨는 자식 된 입장에서 속이 상해 어쩔 줄 모른다.


숙이 씨는 왕복 3시간 거리를 왔다 갔다 하며 할머니를 모시고 나들이도 가고, 외식을 하기도 한다. 반찬과 과일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는 속상해서 돌아오기도 한다. 한평생 밖에 나가서 일만 하시느라 손수 밥을 차려먹거나 집안일을 하시는 것이 서툰 할머니도 이해가 되고, 나이 든 어머니의 맥없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숙이 씨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숙이 씨가 그녀의 엄마에게 하는 것만큼 할 수 있을까? 아니 숙이 씨가 나에게 해 주는 만큼 할 수 있을까? 내가 봐온 숙이 씨는 깡 마른 몸에 에너지가 어디서 그렇게 펄펄 나는지 시장 방앗간으로 농산물 마트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항상 뭔가를 잔뜩 사 와서 우리에게 먹일 것들을 찧고 갈고 끓여서 만든다.


"사람들 그만 갈구고 엄마 스스로 스트레스받는 거 좀 고만해라!"


자식 걱정, 남편 걱정, 부모님 걱정으로 종종거리는 숙이 씨를 보며 이런 볼멘소리를 할 때도 있다. 남을 걱정하느라 정작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할까 봐 하는 말이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고 첫째 딸이기도 한 엄마가 자기 자신에게 더 신경 썼으면 하는 마음에 말이 함부로 나간다.


나는 누군가의 딸이지만 이렇게 나약하고 누굴 챙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데, 숙이 씨는 다르다. 아니 달라진 걸까. 나보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타지에서 자식을 연년생으로 낳아 기르며 너무 힘이 들어 매일 울며 지냈다는 숙이 씨. 나도 엄마를 닮았을 테니 그때 숙이 씨의 모습이 나에게도 있겠지. 삼십여 년의 세월 동안 어떤 일들이 지나갔길래 숙이 씨는 이토록 강인해진 걸까.


나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딸이기도 한 숙이 씨를 보며, 곧 60을 바라보는 딸과 곧 90을 바라보는 엄마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나의 엄마들이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상투적인 말일지라도 그것 외에는 더 바라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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