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이 씨는 우리 집의 건강 전도사다. 초등학교 때부터 보온병에 따뜻한 오미자 차를 타서 다녔던 사람이 나다. 지금도 본가에는 각종 효소와 청들이 커다란 유리 용기에 담겨 옹기종기 모여있다.
요즘 숙이 씨는 생강청에 꽂혀 있다. 숙이 씨가 이렇게 뭔가에 꽂혀 있을 때는 짧으면 몇 달, 길면 1년을 간다. 신문 기사와 유튜브 영상으로 생강의 효능에 대해 보내주거나, 통화를 할 때면 "티브이에 의사가 나와서 그러는데~"로 시작하는 전문가 가라사대가 시작된다.
가공 식품은 몸에 폐기물(또는 오물. 더 심한 표현을 썼지만 순화하겠다.)과 같다고 엄마는 그 흔한 스팸도 소시지 반찬도 해 주지 않았다. 아빠가 나서서 끓여주지 않으면 라면도 거의 먹어볼 수가 없었다. 감기에 걸리면 약을 지어먹는 대신 배와 도라지를 직접 달여주는 숙이 씨이니 말 다했다.
생선 반찬에 푸성귀가 가득한 우리 집 식탁을 나는 참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숙이 씨는 '음식은 알록달록하게 먹어야 한다.'며 갖가지 채소들로 식탁을 채우고는 한다.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얘기다. 참고로 얘기하자면 숙이 씨의 최애 도서는 허준의 <동의보감>이다. (그래서 별명도 '우리 집 허준'이다.)
음식뿐이랴? 갱년기가 시작되고서부터 숙이 씨는 운동 전도사 타이틀도 획득했다. 어제도 실내 자전거와 달리기의 효과에 대해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았다. 갱년기가 되면 몸이 안 고장 나는 곳이 없다고 하더니 힘들긴 한 모양이었다.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에 숙이 씨를 잘 챙기지 못해 걱정도 되지만 나보다 엄마가 더 건강을 더 잘 챙기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숙이 씨가 이렇게 건강을 챙기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썩 건강한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음식이나 운동에 크게 관심이 없던 숙이 씨는 출산과 육아로 건강이 많이 상하게 되었고, 거의 매일을 누워 지냈어야만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때의 기억이 엄마에게는 상당히 크게 남아있는 모양이다.
매일같이 날아드는 숙이 씨의 음식 잔소리와 운동 잔소리(엄마는 조언이라고 주장한다.)들이 지겨울 때도 있지만 "남 같으면 얘기도 안 한다!"는 숙이 씨 말대로 엄마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면조금은 편해진다.
그리고 재밌는 건 수십 년 잔소리를 들어서인지 나도 점점 건강 전도사가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건강에 관해서는 엄마 말을 들어서 손해 볼 건 없단 걸 나이가 들면서 점점 체감하는 중이다. 앞으로는 우리 집 건강 전도사의 말에 조금은 더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