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J Aug 15. 2024

숙이 씨는 사랑한다

'애정은 좀 아껴야 한다.'

'여자는 좀 못돼야 한다.'

'사람은 다 믿으면 안 된다.' 

숙이 씨의 이런 말들을 들을 때면 나는 그냥 웃음이 난다. 숙이 씨는 그와는 정반대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은 내가 과수원 집 딸인 줄 알았다고 한다. 손바닥 두 뼘 길이의 큰 밀폐용기에 매일같이 각종 과일을 싸갔기 때문이다. 껍질과 씨를 제거해서 조각으로 썬 사과, 복숭아, 키위, 귤 등 아침마다 숙이 씨가 준비해 주는 과일들은 아무리 식성 좋은 여고생이라도 혼자 먹기는 힘든 양이었다.


엄마는 늘 혼자 먹기 벅찬 양의 과일 도시락을 싸주며 친구들과 함께 나눠먹으라고 했고, 점심을 먹고 나는 친구들과 과일을 한 조각씩 집어먹고는 했다. 너네 집은 과수원을 하냐는 친구들의 물음을 즐겁게 웃어넘겼던 기억은 먹이고 대접하는 데에 아끼지 않는 숙이 씨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랑을 받고 자랐으면 바르고 올곧은 어른으로 속 썩일 일 없이 자라야 할 딸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렇지 않았다. 고집은 더럽게 세고 말도 안 들었는데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숙이 씨는 불나방같이 퍼덕이는 나를 보고 제발 남자한테 착하지 말라며 채근하고는 했는데, 솔직히 그건 아빠에게 모두 지고 사는 엄마가 할 말은 아니었다.


가족들에게 바른말(잔소리?)을 아끼지 않는 숙이 씨지만 아빠를 비롯한 자녀들은 꺾이지 않는 똥고집이나 큰 병치레(?)로 그녀의 속을 상하게 하거나 몸을 상하게 하기도 했다. 지금은 숙이 씨가 나에게 준 상처보다 내가 숙이 씨에게 준 상처가 더 마음 쓰이게 되었는데, 말로는 못되게 굴면서 남편과 딸들에게 대한 인내와 희생을 멈출 수 없는 그녀가 답답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깝기 때문이었다.


애정을 아끼고 여자는 좀 못되야 한다는 말은 모든 것을 다 주고 상처받지 말라는 뜻이고, 사람을 다 믿지 말라는 말은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숙이 씨가 정반대로 행하고 있는 그 말들이, 딸들이 스스로를 지키라고 한 그 말들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숙이 씨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