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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니 Oct 11. 2022

쌍둥이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1)

#11. 눈물의 타임라인이 똑같습니다.

일란성쌍둥이여서 그런지 일 욕심 많은 건 비슷했다. 하지만 쌍둥이 언니가 새로 둥지를 틀게 된 대기업은 업무 강도가 조금 남다른 회사 같아 보였다.


쌍둥이 언니도 일에 욕심이 많았다. 아주 순화해서 표현을 한 것이고, 거의 일에 미쳐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늘 야근이었다. 뭔 놈의 회사가 야근을 그렇게 많이 시키는지. 쌍둥이 언니네 회사는 석식 값을 따로 줘가면서 일을 시켰다 (지금은 주 52시간 엄수로 인해 야근을 신청하는 시스템으로 바뀐 것 같았다). 

성격이 이 모양이라 나는 친구가 많지 않았다. 쌍둥이 언니가 해주는 재미난 회사 이야기를 듣는 게 하루의 낙이었는데. 쌍둥이 언니는 늘 집에 늦게 왔다. 대기업은 역시 양아치 나쁜 놈이라며 혼자 툴툴거리던 저녁이 많았다. (몇 없는) 친구들을 만날 때가 아니면 나는 퇴근 후 집에 와 운동을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영화를 봤다. 오직 쌍둥이 언니의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그 시기 나는 2010년 중후반 음악 영화들을 집약적으로 감상하게 되었다. <킵 온 키핑 온>, <코펜하겐의 두 재즈 거장>, <전설의 스튜디오, 머슬 숄즈>, <드럼의 마왕 진저 베이커>, <킨샤사 심포니>, <로큰롤과 트랙터>, <파라디소 콘서트홀의 추억>.


내 인생의 찬가를 생산하는 ‘아리아나 그란데’를 알려준 것도 부족했던지 쌍둥이 언니는 나를 시네필로 만들어버렸다. 쌍둥이 언니와 대화를 하려면 밤까지 기다려야 했고 그 사이 시간을 메꾸는 데는 영상 언어가 제격이었다. 결국 그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는 거의 매일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음악 영화를 보다가 지루해지면 1990년대 로맨틱 코미디 계보를 훑었다. 그것도 지겨워지면 어떤 달은 다큐멘터리를 집중적으로 시청했다. <프랑스판 국산으로만 살아보기>, <장 프랑수아의 낡은 세탁소>, <50번의 콘서트>, <헬베티카>, <마이크로토피아>, <세계 견문록 아틀라스 아시아 맛 기행>, <국수의 문명사 누들로드>…….

쌍둥이 언니의 야근 덕분에 나는 네덜란드의 어느 관현악단 뒷모습을 원 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파리의 스러져가는 세탁소를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세계경제전쟁의 역사를 보다가 한국 환율 역사를 뒤적거리기도 했다. 아이폰 속 폰트를 확대하며 글꼴의 세계를 기웃거렸다.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나서 핸드폰을 힐끔거리며 '아 왜 안 와…'라고 중얼거릴 때쯤이면 쌍둥이 언니에게서 카톡이 왔다.


- 나 곧 도착~


밤 11시가 되면 도어록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거실을 가로질러 뛰어 나갔다. 현관에 서서 쌍둥이 언니를 맞이했다. 대문이 열리면서 등장한 조금 피곤해 보이는 허연 얼굴은 곧 웃음이 피어오르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 순간이 나는 참 좋았다.


쌍둥이 언니는 집에 과자를 사 가지고 오곤 했다. 칸쵸, 썬칩, 치킨팝 같은 달달하고 짭조름한 과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편의점 신상 과자를 사 올 때도 많았다. 어떤 날은 대체 어떻게 구한 건지 ‘허니버터칩’같은 과자도 사 왔다. 지금이야 이 과자는 편의점에 널리고 깔려있지만, 한때는 웃돈을 주고 사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무실에서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쌍둥이 언니는 허니버터칩을 내 손에 건네며 말했다.


“왜 나와 있어. 안 자고.”


왜 나오긴 왜 나왔겠어? 보고 싶고 얘기 나누고 싶으니까 기다렸지. 과자도 어차피 나 주려고 사 왔으면서 쌍둥이 언니는 말을 참 퉁명스레 했다. 그래도 나를 보고 웃으니 기분이 좋았다.


비서 일을 하다 보니 더 잘하고 싶었다. 잘하려 노력하다 보니 비서가 되었다. 누군가를 챙기고,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 일이 즐거워졌다. 비서 주변에는 사장님의 비밀과 업무 일정을 캐내려는 사람이 한 다스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나와 내 자리를 지키려면 입조심이 생명이었다. 할 말을 가려하고 안 할 말은 입 속에서 지워버리는 것. 함구의 힘을 알고 나는 더욱 말을 조심했다. 나는 천천히 비서의 미덕을 깨우치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내 성정도 바뀌었다. 어느새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더 편안해졌다.

나는 쌍둥이 언니 회사 이야기가 늘 재미있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 직원 수는 50명이 채 되지 않았는데 쌍둥이 언니 회사는 대기업이었다. 계열사도 많고 주식 사이트에서 시가총액을 운운하는 회사. 대기업에 이름을 올린 쌍둥이 언니가 나는 못내 자랑스러웠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쌍둥이 언니와 눈이 맞으면 우리는 식탁 의자를 빼 앉아 물 한 컵씩 떠 놓고 회사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쌍둥이 언니가 사 온 과자를 먹으면서. 내 돈 주고 먹을 때보다 쌍둥이 언니가 사 온 과자가 더 맛있었다.


대기업의 일원으로서 착실히 일을 해도 조직이 조직인지라 스트레스가 여간 쌓이는 게 아닌 듯해 보였다. 대기업은 들어가기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했고 칼 없이 싸우는 것 같아 보였다. 쌍둥이 언니는 내부 조직의 불합리성을 토로했고, 나는 사장님 칭찬과 욕을 섞어했다. 다른 가족들이 잠든 밤에 소곤거리며 우리는 서로 회사의 복지와 다양한 사람들의 군상을 공유했다.


“너무 늦었다. 내일 출근해야지.”


한창 재밌는 대화를 겨우 끝맺을 때는 언제나 이렇게 얘기했다. 그러면서 서로가 욕한 상대방을 ‘그래도 품으라’며 인자하게 다독여주었다. 우리의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대기업에 입사한 쌍둥이 언니가 못내 자랑스러워 나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든든했다.


한 달에 통장에 입금되는 숫자도 다르고, 업무의 강도도 다르게 되었다. 한날한시에 일란성쌍둥이로 태어났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시간과 상황과 성정과 취향이 우리를 이곳에 도달시켰다. 나는 한 사람의 편안함을 돕는 일을 택했고, 쌍둥이 언니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헌신하는 업을 택했다. 



쌍둥이 언니가 맡은 업무들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 수 있었다.

어떤 날에는 쌍둥이 언니가 “밖에서 저녁 먹자”라는 카톡이 와 밥집에 도착하면 여지없이 쌍둥이 언니 얼굴에 눈물 자국이 있었다. 곱게 바른 파운데이션 위로 굵은 눈물이 종단해있었다. 밝은 곳에서 화장을 좀 하지. 어두운 곳에서 대충 수정 화장을 한 것 같아 보였다. 쌍둥이 언니와는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밥을 먹었다. 


식사 중에 나는 때로 말없이 쌍둥이 언니의 빈 술잔을 채워주었다. 말갛게 차오르는 술잔에 떠오른 동그란 불빛을 보고서야 알았다. 왜 쌍둥이 언니가 집에 돌아올 때마다 본인이 먹지도 않는 과자를 한 봉지씩 사 오는지. 왜 나와 집이 아닌 바깥에서 밥을 먹는지. 시끄럽고 화려한 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면서 밥을 먹어야만 넘길 수 있는 시간이 쌍둥이 언니에게 얼마나 자주 찾아오는지.


때로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일이 정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겪지 않고도 알게 되었다. 말없이 누군가를 위로하고 쓰다듬는 방법 역시 쌍둥이 언니 덕분에 알게 되었다. 아주 쉽게.




나는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내 선택을 통해 일궈왔다. 사람, 친구, 애인, 인맥, 물건, 공간.


그러나 어떤 존재는 인생에서 내가 결코 선택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런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 쌍둥이는 거의 유일하게 내 인생에서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 속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의 형제이고, 그 사람은 내 가족의 일원이니까. 이 지점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낀다. 


말로 풀어도 쉬이 해결되지 않는 괴로움에 잠긴 쌍둥이 언니를 볼 때면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 곁에 있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그깟 육신 하나 더 붙어 있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싶다가도,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그의 곁에 꼭 붙어 카페에 가고 여행을 간다. 덕분에 우리는 여러 지역, 멋진 공간들을 솔찬히 탐방해왔다. 그런 나날이 쌓이며 우리는 이전보다 더 견고하고 튼실한 마인드셋을 갖춘 일꾼으로 성장했다. 기쁘고, 즐겁고,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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