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언젠가부터 우리 가족이 모두 식탁에 모여 함께 식사하는 날이 드물어졌다.
나는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온 가족이 함께 외식이라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네가 웬일이니?’ 하며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고, 아빠는 ‘용돈 필요하냐?’고 물었다. 대학교 졸업반인 누나는 내 중학교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날 입사 면접이 있었다. 이번에도 누나는 ‘지금 외식할 시간이 어디 있어?’ 하면서 참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다 내 얼굴을 슬쩍 바라보고는 쯧쯧쯧 혀를 찼다.
내 초등학교 졸업식 이후 온 가족이 이렇게 함께 외식한 적이 있었던가. 오랜만에 온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처음에는 가끔 이렇게 외식하자는 둥 분위기가 좋았다. 나는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는 샐러드만 뒤적거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조심스럽게 레이저 시술까지는 아니더라도 피부과 치료를 좀 더 받고 싶다는 말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누나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취업 준비의 어려움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졌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계속 취업에서 떨어져. 난 머리가 나빠 그런 건지, 아니면 남들처럼 어학연수라도 다녀왔어야 하는 건지….”
헉, 지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누나는 자신이 타고난 머리가 좋은 것 같다고 큰소리쳤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취업이 잘 안된다며 어학연수라도 다녀와야겠다는 말이 아닌가.
순간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이 밀려 올라오며 설움이 복받쳤다.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 아빠도 알잖아? 누나보다 내가 더 머리 나쁘다는 거. 그런데도 누나는 하고 싶어 하는 거 다 해주고, 나는 왜 항상 참으라고만 해?”
엄마, 아빠 얼굴이 어두워졌다. 누나는 당황해하며 나를 나무랐다.
“야! 좀 조용히 해.”
한번 말문이 열리자, 그동안 참고 참았던 말이 술술 터져 나왔다.
“여드름이 나는 게 내 탓은 아니잖아? 난 여드름 때문에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어. 그런데 엄마, 아빠는 나한테 관심도 없고 내 이야기는 들어주지도 않잖아!”
이게 다 유전자 때문이라고. 어떻게 나한테 이런 피부를 물려줄 수 있어,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진짜 그 말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은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지도 못한 채 입을 쩍 벌리고 있고, 누나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부끄럽다며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