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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영 Oct 25. 2024

언더워터 카우보이

3화

그러던 어느 날, 병수가 함께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했다. 자기가 검색해 보니 천식에 좋은 운동 중 하나가 수영이며, 폐활량을 늘리는데 스쿠버 다이빙만큼 좋은 게 없다나 뭐라나. 

난 가끔 숨이 차는 것일 뿐 천식은 아니고, 폐활량을 늘릴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그제야 병수는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러 가고 싶은데 혼자 가기엔 용기가 안 난다고 했다. 자신이 동호회 가입은 다 해뒀다고,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두항에 스쿠버 다이빙 가게 겸 동호회가 있다는 것도 알아뒀다는 것이다.


토요일 늦은 오후,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간 도두항은 황량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눈이 부시게 푸른 바다도, 아기자기한 카페나 식당도 없었다. 커다란 주차장에는 가끔 관광객을 실은 관광버스가 들어왔다. 허름한 기념품 가게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금세 사라졌다. 항구 가장자리에 시멘트로 대충 지은 판잣집 건물이 있었다. 

“여기가 분명 맞는데….”

병수가 건물 주변을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꽤 깊은지 물빛이 어두웠다. 계속 내려다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몸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역시 처음부터 병수를 따라오는 게 아니었다. 


가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왔다. 얼굴만 빼고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까만 고무 옷을 입은 남자의 눈이 둥그레졌다. 남자가 놀란 듯 후다닥 머리에 쓴 고무 모자를 벗었다. 안경을 벗고 있어 잠깐 못 알아봤다. 윤찬의 얼굴이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병수가 놀라 물었다. 

“야, 윤찬! 왜 여기 있어? 너 여기 사냐?”

윤찬이 어이없어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여기 살겠냐?”

“뭐야. 너도 여기서 스쿠버 다이빙 배우냐? 야, 범생인 줄만 알았는데 ”

병수가 반가워하며 다가갔다. 윤찬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너희가 여긴 웬일이냐?”

“우리도 이 동호회에 가입했지. 언더워터 카우보이! 와, 멋있지 않냐. 우리 여기서 물고기 좀 잡아보려고.”

“스쿠버 다이빙으로 물고기를 잡으면 안 되는 것도 모르냐. 무슨 말을 하는지 좀 알고나 해라.”


그때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큰 남자가 윤찬과 같은 복장을 한 채로 밖으로 나왔다. 손바닥만 한 작은 고무 모자를 간신히 머리에 눌러 쓴 남자의 얼굴은 독이 잔뜩 오른 복어처럼 부풀어 있었다. 

병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블루드래곤…님?”

“혹시 불가사리…님?”

풋, 헛웃음이 나왔다. 병수가 ‘왜?’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 불가사리가 뭐냐. 이 불가사의한 인간아.

“블루드래곤 강사님은 급한 일로 며칠 동안 육지로 가셨고, 난 바다표범이다.”

“와, 동호회 카페에서 봤어요. 블루드래곤 강사님하고 범섬으로 다이빙 갔던 사진이요. 진짜 멋있었어요. 사실 저 바다표범 님에게 반해 이 동호회 가입한 거잖아요.”

“이런, 팬이 있었다니. 하하하하하.”

바다표범이라는 남자가 몸을 흔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까만 잠수복 위로 볼록한 배가 너울이 일 듯 출렁거렸다. 

바다표범이 병수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윤찬의 친구들인가?”

윤찬이 피곤하게 됐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친구는 아니고. 같은 반이야, 삼촌.”

병수가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에에, 윤찬이 바다표범 님 조카예요?”

내가 봐도 외모나 성격 면에서나 바다표범과 윤찬은 닮은 구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바다표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병수의 어깨를 꽉 잡았다. 

“너희들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고 싶다고?”

“네!”

병수가 힘차게 소리치자, 바다표범이 흐뭇한 얼굴로 우리의 어깨를 두들겼다.

“좋았어. 특별히 내 팬들을 위해 이 바다표범이 직접 가르쳐주지.”


그렇게 토요일마다 나와 병수는 스쿠버 다이빙을 배웠다. 이론 수업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표범은 공기통과 부력조끼를 연결하는 법을 반복해서 연습하게 했다. 병수는 만날 똑같은 것만 연습시킨다고 투덜거렸지만, 그만두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도 탐탁지 않은 얼굴로 병수를 따라갔지만, 바다에 들어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고 시시때때로 호흡이 엉키는 순간, 바다에 들어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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