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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順序)와 순번【順番】

전통적 한자어와 일본식 한자어: 일본식 한자어의 의미 분화 08

by 문성희

‘순서(順序)와 차례〔次例〕, 순차(順次)와 순번【順番】’은 모두 일이나 대상이 일정한 질서에 따라 배열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일상생활에서 섞여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 네 단어는 쓰이는 맥락과 강조점이 다르다. 순서(順序)는 논리적·절차적 배열을 가리키는 한중일 공용 한자어이고, 차례〔次例〕는 어떤 행위나 진행상의 순서(順序, turn)나 기회를 뜻하는 한국의 고유 한자어이며, 순차(順次)는 돌아오는 순서나 차례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이고, 순번【順番】도 순서에 따라 정해진 번(番)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和製漢語]이다. 차례는 고유어처럼 그 의미의 폭이 넓은 만큼 순서의 의미로도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순서와 순차, 순번은 문맥에 따라 그 쓰임이 다르므로 구별해서 써야 한다.


우선, 차례〔次例〕는 중국어나 일본어에서는 쓰지 않는 한국 고유의 한자어이다. 이 말은 본래 ‘次第(차뎨, 아래아)’에서 온 말인데, 차(次)는 ‘버금(으뜸의 바로 아래), 다음, 둘째로’의 뜻이고, 제(第)는 ‘제일(第一, 여럿 가운데 첫 번째)’, ‘제이(第二, 그 다음)’처럼 ‘차례(次例), 순서(順序)’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러므로 차례(次例)의 기본적 의미는 ① ‘앞뒤로 이어지는 것들을 순서(順序) 있게 구분(區分)하여 벌여 놓은 것. 또는 그 구분(區分)에 따라 각각(各各)에게 돌아오는 기회(機會)’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번이 내 차례다’, ‘다음은 네 차례야’, ‘이제 내가 이야기할 차례야’처럼 일의 진행 순서, 또는 사람이나 사건이 순서대로 이어지는 것에 쓴다. 이것이 ② ‘전체를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배열한 것’이라는 의미로도 쓰여 책의 ‘목차(目次)’의 뜻으로도 쓰이고, ③ 횟수를 나타내는 의존 명사로도 쓰이는 말이다.

‘순서(順序)’와 ‘순번【順番】’은 모두 ‘차례 또는 잇다’는 뜻의 순(順) 자를 포함하고 있지만 의미와 용법은 다르다. 먼저, 순서는 어떤 일정한 기준이나 정해진 규칙과 같은 내적 질서에 따라 일이나 사물을 배열한 것, 또는 일정한 내적인 질서에 따라 일을 실시하는 수순(手順)·단계(段階)를 가리킨다. 그래서 ‘발표 순서를 정하다’, ‘일의 처리 순서; 일을 처리하는 순서’, ‘실험의 순서를 지키다’처럼 쓰고, ‘번호순(番號順, 번호 순서), 신장순(身長順, 키순)’처럼 ‘-순(順)’으로 줄여서 쓰기도 한다.

순차(順次)는 돌아오는 차례나 순서라는 뜻으로 ‘순차대로 입장하다(入場―).=순서대로 입장하다; 차례대로 입장하다’처럼 ‘순서(順序)’나 ‘차례〔次例)〕’와 유사한 뜻으로 쓰인다. 다만, 우리말에서는 ‘순차(順次)’는 명사로 분류하지만, 순서(順序)나 차례(次例), 순번【順番】처럼 단독으로 쓰이기보다 주로 ‘순차대로’, 또는 ‘순차적으로’의 형태로 다음에 오는 동사를 꾸미는 말로 쓰이는데 중국어順次[shùncì]와 일본어 順次(じゅんじ)[junji]도 ‘순서대로, 차례차례’라는 뜻으로 쓰이는 부사이다.

순번【順番】은 일본식 한자어로 ‘순서(順)에 따라 돌아오는 번(番)’이라는 말이다. 즉 순서에 따라 번갈아 일을 맡는 것, 또는 그 순서에 따라 ‘할당된’ 개개의 위치(位置)나 번호를 가리키는 말이다. 번(番)은 본래 ‘차례로 숙직이나 당직을 하는 일. 또는 그 차례’라는 뜻이다. 지금은 단독으로는 쓰지 않고 ‘일의 횟수를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로 주로 쓰이지만, ‘당번【當番】, 비번【非番】, 주번【週番】, 번갈아’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당번【當番】은 ‘어떤 일을 차례로 돌아가면서 맡음. 또는 그 사람’의 뜻이고, 비번【非番】은 당번이 아니라는 말이며, 주번【週番】은 주로 군대나 학교에서 한 주일 동안씩 교대로 하는 근무. 또는 그 근무를 서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번갈아 주로 ‘번갈아’의 형태로 쓰이는 ‘번갈다’는 ‘어떤 일을 교대(交代)로 하다, 차례대로 하다’의 뜻이다. 그래서 순번은 ‘순번을 정하다’, ‘순번이 돌아오다’, ‘순번대로 진료하다’처럼 쓰는데, 여기서 순번은 단순한 순서나 자기 차례가 아니라 ‘자기가 맡아야’ 할 순서이다. 그래서 은행이나 병원에 가서 번호표를 뽑고, ‘순번을 기다리다.(X)’가 아니라,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또는 순서를 기다리다’라고 해야 맞다. 즉 순서는 ‘일이나 사물을 벌여 놓는 방법이나 기준’, 또는 ‘전체를 일정한 기준이나 정해진 규칙에 따라 배열한 것’이고, 순번은 어떤 범위의 사람들이 어떤 일을 ‘돌아가며 맡아야 하는 순서’를 정한 것, 또는 그 ‘순서에 따라서 자신이 맡아야 할 위치나 돌아오는 차례’를 의미한다.

일본어에서 順番(じゅんばん)[junban]은 일상적으로 매우 널리 쓰이지만, 중국어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이므로, 순서나 차례의 뜻인 顺序[shùnxù]; 次序[cìxù]나 직역한 序号[xùhào]를 쓴다. 한국어에서도 순번【順番】을 ‘일정한 순서(順)에 따라 매겨지는 번호(番號). 또는 자기가 맡아야 할 순서를 나타내는 번호(番號)’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향이 있다. 즉 순번【順番】의 번(番)을 ‘번호(番號)’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순번을 매기다, 순번을 정하다…’ 등의 표현에서 순번은 단순한 차례나 순서라기보다는 ‘자기가 맡아야 할 차례나 순서를 나타내는 번호’의 뜻으로 쓰는 것이겠지만, 이는 본래의 뜻에서 벗어난 것이다. 우리말에 들어온 일본식 한자어를 우리식대로(?) 쓰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러다가 언젠가는 순번【順番】이 일반적인 의미의 순서(順序)라는 전통적 한자어를 대체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의구심이 든다.

순번【順番】을 써야 할 맥락이나 상황은 기본적으로 ‘돌아가며 당번【當番】을 맡는 일’, 즉 ‘자기가 어떤 일을 맡게 될 차례나 순서’일 때로 제한해서 써야 한다. 당직【當職】, ㊐ 当職(とうしょく)은 ‘근무하는 곳에서 숙직이나 일직 따위의 당번이 됨. 또는 그 차례가 된 사람’을 뜻하는 말로 당번【當番】 ㊐ 当直(とうちょく)과 비슷한 뜻의 일본식 한자어이다. 순번【順番】은 바로 당직【當直】을 서거나, 당번【當番】을 맡게 될 차례〔次例〕나 순서(順序)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당직 근무를 서는 날을 정해야 할 때, 순번에 따르는 것이다.



차례〔次例←次第〕① n. 순서에 따라 구분하여 벌여 놓은 것. 또는 그에 따라 각각에게 돌아오는 기회. ≒순서(顺序). <참> 순번【順番】

次序[cìxù], 顺序[shùnxù], ㊐ 順序(じゅんじょ); 順番(じゅんばん); 順(じゅん), 番(ばん), Ⓔ drder; turn.

예) 차례를 지키다. 遵守次序。zūnshŏu cìxù. 이번은 내 차례야. 这次是我的顺序; 这次轮到我了。(일) 今度は私の番だ。It's my turn. 차례차례〔次例次例〕(-로) ad. 按次序. 순서에 따라 하나씩. 또는 (순서에 따라) 한 사람씩. ex) 차례차례로 탑승하다.

차례〔次例←次第〕② n. (책이나 글에서) 소제목이나 내용을 순서대로 벌여 적어 놓은 항목. =목차(目次)

目次[mùcì] ; 目录[mùlù] ㊐ 目次(もくじ), Ⓔ table of contents. 예) 차례를 보다. 책의 차례

차례〔次例)③ ‘單位’ (의존명사) 일이 일어나는 횟수를 세는 단위. ≒번(番); 회(回)

次[cì], 回[huí], 遍[biàn], 番[fān] ㊐ 回(かい); 度(ど); 番(ばん), Ⓔ times.

예) 한두 차례=한두 번 一两次[yīliăng cì], ㊐ 一回か二回; 一二度(いちにど); 一再(いっさい). 몇 차례=몇 번 数次[shùcì]; 几番[jǐfān], 几度[jǐdù]. 그동안 몇 차례 다녀갔다.

{어법} 한국어에서는 일반적으로 ‘차례〔次例), 번(番)’을 쓰고 ‘회(回)’는 주로 문어로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어에서는 ‘番(ばん), 度(ど)’를 쓰지만, 중국어에서는 일반적으로 次[cì]를 쓰고 度[dù]는 주로 문어로 쓰임.


순서(順序)[순ː‧]ⓢ n. (여러 사람이나 사물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선후(先後)로 나열하거나 배열한 것. 또는 그러한 구분에 따라 어떤 일을 하기로 정해 놓은 차례. =차례〔次例〕①. <참> 순번【順番】[순ː‧] 序号[xùhào]

㊥ 顺序[shùnxù]ㅅxù, 次序[cìxù], ㊐ 順序(じゅんじょ); 順番(じゅんばん), Ⓔ order.

예) 순서를 매기다. 시간적 순서【時間的順序】=시간의 흐름에 따른 순서 时间顺序[shíjiān shùnxù], chronological order; time sequence; time order. 공간적 순서【空間的順序】=(전후, 좌우, 내외 등) 공간의 이동에 따른 순서 空间顺序[kōngjiān shùnxù], spatial order; space order. 인과적 순서=인과 관계(因果關係) 因果顺序[yīnguǒ shùnxù]; 因果关系[yīnguǒ guānxì], causal sequence; causal order. 순서를 지키다. 遵守次序。zūnshŏu cìxù. ㊐ 順序を守(まも)る。순서를 지키세요.=차례를 지키세요. 请遵守次序。qĭng zūnshŏu cìxù. ㊐ 順番を守(まも)ってください。순서대로 입장하다(入場―). 依次入场。yīcì rùchǎng. ㊐ 順番(じゅんばん)で入場する。순서가 바뀌다. 顺序改变。shùnxù găibiàn. ㊐ 順序が変(か)わる。입장 순서(入場順序)[-짱#‥] 入場顺序[rùchǎng shùnxù], ㊐ 入場順序(にゅうじょうじゅんじょ); 入場順番(にゅうじょうじゅんばん).


순번【順番】[순ː‧] n. (당번, 당직, 숙직 등) 순서에 따라 번갈아 맡는 것. 또는 그 순서나 차례. ≒윤번(輪番) 轮番[lúnfān], ㊐ 輪番(りんばん); 回(ま)わり番(ばん).

㊥ 顺序[shùnxù]; 次序[cìxù], ㊐ 順番(じゅんばん), Ⓔ turn

<참> 순서(順序)[순ː‧] 顺序[shùnxù], ㊐ 順序(じゅんじょ).

ex) 순번을 정하다(定―): 어떤 일을 맡을 순서를 정하다. 排定顺序。páidìng shùnxù. ㊐ 順番を決(き)める。당직 순번【當直順番】 值班顺序[zhíbān shùnxù]; 值班次序[zhíbān cìxù], ㊐ 当直順番(とうちょく じゅんばん). 설거지 순번

순번【順番】[순ː‧] n. 일정한 순서에 따라 매겨지는 번호. 또는 자기가 맡아야 할 순서를 나타내는 번호.

㊥ 序号[xùhào], ㊐ 順番(じゅんばん, Ⓔ order.

예) 순번을 매기다. 排号。páihào. ㊐ 順番をつける。대기 순번〘待機順番〙[대ː…]☞대기 번호【待機番號】[대ː…] 等待序号[děngdài xùhào]; 待机号码[dàijī hàomǎ], ㊐ 順番待(じゅんばんま)ち; 待機番号(たいきばんごう). 순번을 기다리다.☞순서를 기다리다. 等候顺序。děnghòu shùnxù; 等待轮到自己。děngdài lúndào zìjǐ. ㊐ 順番を待(ま)つ。발표 순번을 정합시다.☞발표 순서를 정합시다. 决定发表的顺序吧。juédìng fābiǎo de shùnxù ba. ㊐ 発表(はっぴょう)の順番を決(き)めましょう。


순차(順次)[순ː·] n. 돌아오는 순서나 차례

㊥ 順次[shùncì] ad. (일) 順次(じゅんじ) ad. Ⓔ (in) order

예) 순차대로 입장하다(入場―).=순서대로 입장하다; 차례대로 입장하다. 순차적【順次的】(-으로) 按顺序[àn shùnxù]; 依次[yīcì], (일) 逐次的(ちくじてき).=순서대로〘順序―〙; 차례대로〔次例―〕; 차례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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