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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락, 쓰지 말아야 할 일본식 한자어

우리말 속에 남아 있는 일제의 우리 민족 차별 의식

by 문성희

‘부락(部落)’은 ‘촌(村), 촌락(村落), 마을’의 뜻을 가진 일본식 한자어인데, 지금도 우리나라 시골에서 주로 ‘리(里)’ 단위의 마을을 부르는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 물론 일제 강점기 이후에 붙여진 이름이다. 구글 지도에서 ‘부락’을 검색해 보면 한자가 다를 것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도 셀 수 없이 많이 나온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아무런 비판 없이 쓰이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과연 이 말에 대해서 알고 쓰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나라의 봉건 사회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네 신분과 그 아래 ‘천민(賤民) 계급이 있었다는 것이나,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의 네 계급과 그 아래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계급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일본의 봉건적 신분제도는 잘 알지 못한다. ‘부락(部落)’이나 ‘부락민(部落民)’은 바로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일본의 전통적 신분 개념이 담겨 있는 말이다.

일본어 ‘부라쿠(部落)’도 기본적으로는 ‘여러 집들이 모여 이룬 마을, 즉 촌락(村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 이 말은 ‘피차별 부락(被差別部落, 차별을 받는 부락)’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부락민(部落民)’을 일본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集落(しゅうらく)に住(す)む人人(ひとびと)’라고 나와 있다. ‘부락(部落)’ 대신 우리에게는 생소한 ‘집락(集落)’을 썼지만 ‘부락(部落)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 말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일본은 에도 시대(江戸時代)에서 도쿠가와 시대(徳川時代)에 이르는 1603년부터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전까지의 막부가 통치하던 시대였다. 이른바 막부 시대이다. 이 시기의 일본은 ‘병농공상(兵農工商)’의 네 신분과 그 외의 천민(賤民)으로 구분한 신분제 사회였고, ‘부락(部落)’은 바로 ‘천민들이 사는 지역(地域), 또는 구역(區域)’으로 일종의 ‘게토(ghetto, 하층민들이 사는 특정 관리 지구)’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부락민(部落民)’이라는 말은 본래 전근대 일본의 신분 제도 아래에서 최하층에 위치해 있었던, 우리나라의 백정(白丁)이나 망나니와 같은 일을 했던, ‘에타(穢多), 히닌(非人)’ 등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한국에서는 갑오경장(甲午更張, 1894)과 일제 강점기(1910-1945), 그리고 한국 전쟁과 1970-80년대 급속한 산업화의 영향으로 혈통 중심의 전통적 신분 개념이 무너지고 자본주의적 신분 관계로 대체되면서 천민 계층에 대한 차별 의식도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이나 사회 내부의 격변이 거의 없었던 일본에서는 오늘날까지도 ‘피차별 부락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결혼이나 취직, 승진 등 사회에서의 불이익과 차별을 당하고 있어서 민감한 사회 문제로 남아 있다.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때인 1871년,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부락 해방령(部落解放令)’으로 보통 국민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였지만, 현대까지도 ‘부락 部落(ぶらく)’은 여전히 ‘천민’이 사는 지역으로 인식되는 말이어서 일본 사람들조차 이 말을 꺼리고 ‘집락, 集落(しゅうらく)’라는 말을 대신 쓰기도 한다(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부라쿠민).

일본의 웹사전(https://dictionary.goo.ne.jp/word)에서 ‘部落’을 검색하면 이와 관련된 설명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연관 검색어로 ‘부락 해방운동(部落解放運動)’, ‘부락 차별 해소 추진법(部落差別解消推進法)’ 등이 제시되어 있다(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어 번역을 달았다).


1) 部落(ぶらく)

①比較的少数の民家が集まっている地区。共同体としてまとまりをもった地縁団体で、村の単位となる。(비교적 소수의 민가가 모여 있는 지구. 공동체적 성격을 띤 지연 단체로, 마을의 단위가 된다)

②被差別部落 : 近世初期以降、封建的身分制で最下層に位置づけられた人々を中心に形成され、現在もさまざまな差別を受けている地域。明治4年(1871)の解放令によって法的差別は解消されたが、社会的差別や偏見、それに伴う人権侵害は解消されてはいない。未解放部落。(‘차별을 받는 부락 : 근세 초기 이후 봉건적 신분제의 최하층에 자리 잡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현재도 다양한 차별을 받고 있는 지역. 메이지 4년(1871) 해방령으로 법적 차별은 해소됐지만 사회적 차별과 편견, 그에 따른 인권침해는 해소되지 않았다. 해방되지 않은 부락)

2) 部落解放運動(ぶらくかいほう‐うんどう) : 被差別部落の人々に対する社会的差別を撤廃することを目的とする社会運動。大正11年(1922)創立の水平社を中心として展開されてきた。(피차별 부락의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 운동. 대정 11년(1922) 창립된 수평사(水平社)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3) 部落差別解消推進法(ぶらくさべつかいしょうすいしん‐ほう) : 被差別部落に対する差別を解消するため、施策の基本理念、国・地方公共団体の責務、および相談体制の充実などを定めた法律。平成28年(2016)施行。(피차별 부락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시책의 기본이념, 국가·지방공공단체의 책무 및 상담 체제의 충실 등을 정한 법률. 2016년 시행)(출전 : https://dictionary.goo.ne.jp/word/部落)


핵심 내용을 살펴보면, 1) ‘부락【部落(ぶらく)】’은 메이지 4년(1871)에 부락 해방령을 내렸음에도 사회적 차별과 편견, 인권 침해가 해소되지 않은, 즉 ‘해방되지 않은 부락’을 의미한다는 것, 2) ‘부락 해방운동’이 100년 전인 1922년에 시작되었고, 3) 거의 100년이 지난 2016년에야 부락민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려는 ‘부락 차별 해소 추진법’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즉 부락민을 사회적으로 차별하지 말 것을 법률로 강제할 정도로 ‘부락민(部落民)’에 대한 차별 의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고 쉽게 없어지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야마토 민족(大和民族)은 현재 일본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족으로, 인구·언어적으로 일본인의 다수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지배적인 세력이다. 이들이 사회적으로 차별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소수 민족이나 집단은 북해도 지역의 아이누(Ainu,アイヌ)인, 재일 한국인과 재일 중국인, 오키나와 지역의 류큐(Ryūkyū,琉球(りゅうきゅう))인 등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23년에 일어난 일본 관동대지진은 당시 위정자인 군부와 군국주의자들이 정치적 위기에 처한 때이기도 했다. 1920년대 이후 코민테른의 확산에 따른 사회주의 사상의 확대, 중국의 민족 해방 운동, 조선의 독립 운동과 소작 쟁의 등이 격화되고, 앞에서 언급한 1922년의 부락 해방 운동, 여기에 대공황의 여파까지 겹쳐서 극도로 혼란한 시기였다. 그들에게 희생양이 된 것이 바로 재일 조선인이었다. 그들은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약을 푼다는 헛소문을 퍼뜨려 당시 일본 군경과 자경단에 의해 피살된 조선인이 일본 각지에서 6천여 명이 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마치 암흑기였던 중세 시대의 마녀 사냥처럼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구로 ‘사회적 차별’을 이용한 것이다.

1988년에 창작과비평사에서 발간된《일본의 본질을 묻는다》는 민족적 차별 속에서 살아가는 재일 한국인의 문제를 부락민의 관점에서다루고 있는데,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외국인뿐만 아니라, 그들이 식민지화하고 태평양 전쟁으로 군사 물자 보급과 군수 기지 역할을 해야 했던 북해도의 아이누와 오키나와의 류큐인들은 당대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차별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일본어에서 차별의 아이콘인 ‘부락(部落)’이라는 말이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것도 우연이 아니다. 즉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식민지 조선인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 바로 우리말 속에 서 아무런 비판 없이 쓰이고 있는 ‘부락(部落)’과 ‘부락민(部落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말을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는 것은 이 말에 담긴 차별 의식을 몰랐기 때문이겠지만, 일본과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거나, 이미 익숙하게 쓰는 말이어서 불가능하다고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부락【部落】 ☞촌(村), 마을.

중국어: 村子[cūn‧zi], 村落[cūnluò]

일본어: 部落(ぶらく)

예) 부락을 이루고 살았다.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부락민【部落民】[부랑-] ☞촌민(村民); 마을 사람

중국어: 村民[cūnmín]

일본어: 部落民(ぶらくみん); 集落(しゅうらく)に住(す)む人人(ひとびと).

예) 부락민들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도 하면서 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도 하면서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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