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파도바.
다른 여타 도시처럼 이탈리아의 화려함을 품은 도시는 아니지만, 그 만의 수수한 멋이 묻어 나오는 소도시이다.
이 도시를 람보르기니 오픈카 한 대가 가로지르고 있다.
“베네치아에서 기차를 탔어도 되지 않았을까요?”
셀레나는 고개를 차 밖으로 돌린 채 홀로 볼멘소리를 냈다.
“미안해요, 셀레나. 기동성이 있는 자동차가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이렇게 작은 도시일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확실히 여기엔 람보르기니가 다닐 만한 도로가 없을 듯하네요.”
요환은 힐끗 셀레나를 쳐다보았다.
“박사님, 제가 보기엔 당신은 가끔 알기 어려운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네요.”
요환은 운전하면서 다시 셀레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옷을 봐도 명품보다는 깔끔한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고, 그렇다고 비싼 시계를 차고 있는 것도 아니고, 생활습관은 참 검소해 보이는데...”
요환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람보르기니 말인가요?”
“네, 정말 이해가 안 가요.”
요환은 그녀가 자기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어느 정도 공감이 되었다.
“제가 비싼 자동차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셀레나는 직접적인 요환의 물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입으로 말하니까 제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맞아요, 당신을 만나고 항상 차를 렌트할 때 비싼 차를 빌리더군요.”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한데, 제가 비싼 차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다만?”
“오픈카가 다 비쌀 뿐이죠. 애초에 베네치아에서 차를 렌트할 때도 이 람보르기니를 원했던 것은 아니에요. 단지 오픈카가 필요했을 뿐이죠. 하필이면 남은 오픈카가 제일 비싼 람보르기니 한 대여서 운이 나빴죠.”
“아아, 오픈카를 좋아하는군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오픈카밖에 타지 못 해요.”
“에? 오픈카밖에 타지 못한다니. 무슨 사연이 있나요?”
“어릴 적 트라우마예요.”
요환의 목소리는 그리 밝지 않았다.
셀레나는 괜히 말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 후회되었다.
“자동차 사고 같은 거 말하는 거죠?”
“뭐, 비슷해요. 그때 제가 탔던 차가 천장이 없는 오픈카였다면, 이란 생각 때문에 그런지 다른 자동차를 못 타겠더군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안해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을 텐데.”
“괜찮아요. 그래도 제가 말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저를 명품 외제차를 좋아하는 사치스럽고 유흥을 즐기는 교수로 생각했을지도 몰랐겠네요.”
셀레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박사님.”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도로는 더욱 좁아졌다.
주위에는 고대 이탈리아의 향기가 물씬 나는 고풍의 건물들이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가야 할 것 같아요.”
요환이 자동차 시동을 끄며 말했다.
둘은 자동차에서 내려 파도바 광장으로 들어섰다.
“자, 그럼 박사님. 이제 설명을 해줄래요?”
“네?”
“아직 나한테 말을 안 해줬잖아요. 어떻게 ‘작은 보석’이란 말을 듣고 이곳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까지 오게 되었는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미안해요. 왓슨 박사님이 위험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마저 급해진 것 같네요. 혹시 이탈리어 조금 할 줄 아나요?”
“아뇨, 전혀 못 해요. Buon gjorno였나요? 간단한 인사만 여기 오느라 인터넷으로 검색해봤죠.”
“일 조이엘로”
“일 조이엘로??”
“네, 이탈리아어로 ‘작은 보석’이란 뜻이에요.”
“그것이 파도바랑 무슨 관계가 있죠?”
“이곳 파도바는 갈릴레이랑 관련이 있는 도시예요. 말년에 그는 자택에 감금되어 살게 되었어요. 그곳이 여기 파도바예요.”
“잠시 만요. 갈릴레이랑 보석, 일 조이.. 그 이상한 단어랑 무슨 관련이 있는 거죠?”
“일 조이엘로는 갈릴레이가 살았던 저택을 뜻하는 말이에요. 이탈리아 사람들도 잘 모르긴 하지만요. 왓슨 박사님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갈릴레이였거든요. 거기서 힌트를 얻었죠.”
“아! 그렇군요.”
“저도 가 본 적이 없기에 잘 모르겠지만, 우선 그곳에 가면 왓슨 박사님께서 계신 곳을 대충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둘은 어느새 광장을 지나 작은 시장으로 들어섰다.
나란히 이야기를 하며 걷던 도중 셀레나가 갑자기 요환에게 다가서며 귀에 대고 말을 했다.
“요환, 누군가 우리 뒤를 쫓는 거 같아요.”
“미행 말인가요?”
요환이 고개를 돌리려 하자 셀레나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뒤돌아보지 말아요. 앞을 보고 자연스럽게 행동해요.”
요환은 뻣뻣하게 앞을 바라본 채 걸음을 걸었다.
“언제부터 따라온 거죠?”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확실한 건 베네치아에서 차를 타고 이곳까지 올 때도 우리 뒤에 검은 차가 계속 따라왔던 것 같았거든요. 혹시나 했는데 미행이 맞는 것 같아요.”
인생을 살면서 나름대로 정직하게 살아왔다.
그 누구에게 폐를 끼친 적도 없었고, 그 누구에게 부당한 일을 행하거나 의심받을 일을 한 적 없었다.
하지만 며칠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서를 가서 심문을 받아봤고, 오늘은 난생처음 미행을 당하고 있다.
혹시 ‘카이퍼 벨트’가 아닐까 생각되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셀레나, 어떻게 해야 하죠?”
“저쪽에 골목 보이죠?”
셀레나는 손 대신 자신의 고개를 위로 올리며 골목을 가리켰다.
“네, 보여요.”
“일단은 지금 속도를 유지해서 저 골목 쪽으로 걷는 거예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네, 셀레나.”
요환은 긴장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요환은 그러면서도 자기와 셀레나를 미행하는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도 모르게 고개가 뒤로 돌아가려 하자 셀레나가 그의 옆구리를 쳤다.
생각보다 세게 맞은 듯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박사님! 뒤돌아보지 말라니까요.”
“알, 알겠어요.”
요환은 긴장했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어느새 둘은 골목에 가까이 다다랐다.
낡고 오래된 두 건물 사이의 골목은 멀리서 볼 때 보다 훨씬 좁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함께 들어가기에는 무리지만 한 사람은 충분히 지나갈 만한 너비의 골목이었다.
골목 어귀가 가까워져 오자 셀레나는 요환의 어깨를 잡아당겨 자신의 입을 요환의 귀에 댔다.
그리고 그에게 무엇인가 속삭였다.
요환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침착하게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골목에 다다르자 셀레나가 요환을 골목 안으로 밀어 넣으며 외쳤다.
“지금이에요! 뛰어요!”
요환은 셀레나가 시키는 대로 골목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뒤쫓아 오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