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과거)

by 프렌치힐

“첫 실험은 어땠나?”


“뭐,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요환의 대답과는 달리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첫 실험은 원래 그런 것이라네. 자네가 실험을 한 두 번 한 사람도 아니고. 변수를 계속 바꾸어 가며 실험해 보면 곧 나아질 거야. 이곳에선 제한 시간도 없으니 마음껏 연구하게나. 자네가 편히 연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네.”


“실험 결과가 예상보다 잘 나오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단지...”


“핫산 때문인가?”


요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핫산은 고집이 매우 센 사람이야. 자존심도 세고. 이곳에 오게 된 것도 그 고집을 꺾지 못해서였지. 이곳에 와서 나아진 점도 있지만, 아직도 저 고집불통 성격을 못 고치고 있어. 이 부분을 자네도 이해해 주어야 한다네. 우리는 이제 가족이니까.”


가족이란 단어에 그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제가 하려는 실험이 그 정도로 위험한 것일지는 몰랐습니다.”


“엑시온은 내가 전에 말했듯이 미지의 물질이라네. 핫산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안전할 수도 있고 또는 더 위험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 폭발력뿐 아니라 만일 자네가 블랙홀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일지도 몰라. 실상 자네가 만든 블랙홀 안의 중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네. 만약, 자네 계산보다 훨씬 더 강한 중력이 발생한다면 시간여행은 고사하고 자네 몸이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거야.”


요환은 왓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그가 한 말을 그려 보았다.


블랙홀 내부의 중력이 일정 수준 이상보다 더 커진다면 그의 몸은 아마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이다.


끔찍한 상상에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쨌거나 나는 자네가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실 내가 자네를 부른 것은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네.”


“달리하실 말씀이 있나요?”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니 긴장 풀게나.”


왓슨은 잔뜩 긴장한 듯한 표정의 요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는 우리들만의 암호를 공유하고 싶어서 그렇다네.”


“암호요?”


암호라는 말에 요환은 흠칫 놀랐다.


만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사람에게 대뜸 암호를 공유하자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바벨의 후예는 오랜 세월 동안 쫓겨 다니는 신세였다네. 지금 자네에게 전부 말해줄 수는 없지만 때가 되면 내가 알려줄 것이 많다네. 지금은 잠자코 내 이야기를 들어주게나. 궁금한 것이 많더라도.”


왓슨의 말에 요환은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언제 바벨의 후예가 습격을 받을지 몰라. 그리고 이 바벨탑의 정체도 언젠가 세상에 알려질 때가 오겠지.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야 하겠지. 만일 그렇다면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암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물론 난 자네가 이 암호를 사용할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말이야.”


요환은 조용히 왓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앞으로 우리의 암호는 ‘작은 보석’이라네.”


“작은 보석이요?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작은 보석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자네의 몫이라네. 이것은 우리끼리의 암호이지.”


‘작은 보석’이란 단어를 듣고 요환은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카론을 찾았을 때처럼 여러 가지 연상되는 단어를 떠올렸지만,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작은 보석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일까?’


혼자서 곰곰이 생각하던 차에 왓슨이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와 자네만의 비밀이라네.”


“다른 사람들은 모르나요?”


“응, 내 딸 캐서린 조차도 모르지.”


“박사님, 왜 저에게만 이것을 알려주시는 것이죠? 따님과 다른 헤드 마스터 박사님들께도 말하지 않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암호 자체의 뜻을 둘째 치고, 자신의 딸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것을 자신에게 알려준 것일까?


그렇다고 두 부녀의 관계가 나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걸세. 절대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말게나. 그리고 내가 자네에게 이것을 말해주는 것은 자네가 나랑 닮았기 때문이지. 일종의 알 수 없는 연민이랄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자네만큼은 나 자신을 보듯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네.”


왓슨 박사와의 대화를 끝내고 요환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에 타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요환, 잠시 이야기 좀 해요.”


요환의 뒤에는 캐서린이 서 있었다.


“캐서린, 할 말이 뭐죠?”


요환은 피곤한 기색을 하며 캐서린에게 물었다.


하루종일 지속된 실험으로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죄송해요. 아까 아버지와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어요.”


“어떤 대화를 말하는 거죠?”


요환은 일단 시치미를 뗐다.


분명 암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암호요.”


“아... 그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해서요.”


“됐어요. 스캇은 비밀에 대해서는 철저하신 분이세요. 바벨의 후예를 책임지고 있다 보니 어쩔 수도 없는 것 같아요. 그 마음이 이해는 가요. 뭔가 뜻이 있겠죠.”


캐서린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딸에게까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하네요.”


“음... 단지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벨의 후예가 누군가에게 위협을 받고 있고, 정말 만약에라도 바벨탑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 암호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이라고 말했어요.”


이 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딸이니까.


“제가 아버지께 밉보인 것이 있나 보네요. 그렇지만 평생을 함께 산 저보다 이제 겨우 며칠 본 당신에게 비밀을 공유한다는 것은 너무 한 것 같아요. 이거 은근 기분 나쁜 거 알아요?”


캐서린은 팔짱을 끼고 심술이 잔뜩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어도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 모습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저도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캐서린, 오늘 하루 고마웠어요. 옆에 계속 있어 줘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더 말해봤자 손해라는 생각에 요환은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녀가 알려달라고 보챘으면, 암호를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외로 캐서린은 더 이상 암호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아니에요. 내일 실험도 기대하고 있어요. 내일은 꼭 좋은 성과가 있을 거예요.”


요환은 캐서린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후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기 전에 오늘 하루 있었던 실험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도 왓슨 박사가 말한 ‘작은 보석’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실험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잊어버리기로 했다.


요환에게 있어서는 매우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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