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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녀

이제야 딸이 되어갑니다.

by 수성

2012년 10월 첫 출산을 하던 날,

아빠는 직접 끓이신 미역국 냄비를 통째로 들고 병원으로 와주셨습니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제게 그러셨어요.

"내 딸이 엄마가 됐네."

그리고 몇 년 뒤 "엄마 되더니 효녀됐네" 웃으십니다.


스물다섯에 첫 아이를 낳고 서른 살에 세 아이의 엄마

그리고 지금의 저보다 어린 서른여덟에 네 아이의 엄마가 된,

젊고 예뻤던, 여리지만 참 강했던 엄마가 보입니다.


24시간 잠 좀 자보는 게 소원이라는 엄마의 바람이,

하고 싶은 과외활동은 최대한 다 해주려고 하셨던 사랑을,


드시고 싶으셨던 것보다는 저희들이 먹고 싶은 걸 먼저 해주셨던 그 마음을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어요.


얼마 전에는 아이들과 셋이서 캠핑장에 갔었어요.

아이들이 남편과 통화를 하는데


“아빠! 벌레 나왔어!”

“어떡하냐. 엄마 벌레 무서워하는데!!!”


귀신보다 벌레를 더 무서워하거든요.


“아빠...근데 방금 엄마가 벌레를 잡았어...”

“뭐야! 그동안 약한 척 했던 거야?”


약한 척이 아니라 아이들과 있으니 잡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엄청난 용기를 낸 거였어요.


문득 아빠 생각이 났습니다.


“아빠!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큰 거미를 잘 잡아요? 나는 너무 무서운데”

“사실은 아빠도 무서워. 하하”


딸이 너무 벌레를 무서워하니 그땐 아빠가 용기를 내신 거였어요.

엄마가 되고서야 아빠를 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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