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도 읽어보기로 했다!

"소설을 쓸 운명인가?"

by 똥이애비

나는 그다지 소설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최근에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는데 주로 자기 계발서를 읽었다. 자기 계발서를 통해 동기부여받고 깨달은 바를 내 삶에 하나씩 시도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경제 서적을 통해 자본주의에서 투자하는 노하우를 배웠는데, 자신들이 성공해 온 투자법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있기에 내 기준에는 열 권을 읽으면 열 권 모두 다른 투자법을 얘기하고 있어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중에서 나만의 투자법을 찾아야만 했다. 결국 지금은 더 이상의 투자서는 읽지 않기로 했고 그냥 미국 주식 시장에만 적립식으로 장기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그게 작년이니까 수익률은 처참하다는 뜻이다. 환율이 올라 어느 정도 손실을 방어해준 게 있기도 하고, 장기 투자이므로 당장의 수익률은 의미가 없다는 자기 최면으로 애써 위안을 삼고 있다.


다음으로 많이 읽은 분야는 인간관계와 심리학을 다룬 서적이었다. 이를 통해 통찰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고, 내 마음속 분노를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역사 관련 서적도 최근 흥미를 갖고 읽고 있다. 학창 시절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된 연도나 순서를 외우면서 시험만 대비하고 있으니 당연히 재미가 없을만했다. 내가 읽었던 인물 중심으로 당시 사건을 다룬 역사 서적은 마치 그 시대를 살아가는 것과 같은 생동감을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해 주었고, 나는 흥미진진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게다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교훈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 결국 소설까지 분야가 확장되려는 찰나 나는 소설책 읽기를 주저했다. 으로는 대략 이런 마음이었다.


"차라리 소설책 읽는 것보단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소설책은 시간 아까운데 자기 계발서나 더 읽을까?"


여기서도 효율성에 목숨 거는 나의 성향이 드러난다. 한동안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아 소설책은 신경이 쓰이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둔 채로 한동안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또 내가 읽고 싶은 분야의 책들만 읽어가다 지겨워져 또 한 번 소설책을 흘깃 보게 되었다.


"그래, 시간 여유도 있고, 오늘은 한 번 재미 삼아 읽어보자. 보다가 도저히 시간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도중에 덮어버리면 되니까..."


베스트셀러인 두 권의 소설책 <불편한 편의점>, <작별인사>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는 소설도 읽고 있다. 이렇게 읽다 보니 내가 소설책을 꺼려했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맞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비효율적이다. 만약 TV나 영화관에서 영상으로 보았다면, 더 이해하기 쉽고 편했을 테다. 그럼에도 소설책을 세 권이나 읽어가고 있는 것은 내가 발견한 소설만의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결국 내가 읽고 싶은 책 분야에 소설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묘사의 달인

소설책은 장면과 인물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구체적이다. 나무면 나무지, 전나무니 백송이니 그 종에 대해서 얘기하고, 나무가 어떠한 형상으로 어떻게 위치해 있는지, 분위기가 어떠한지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거기서 작가의 섬세함이 돋보이고, 사용하는 단어에서 나오는 문장의 화려함과 작가가 단어 하나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공들였던 깊은 고민이 느껴진다. 나 같은 메마른 감성 소유자는 그런 묘사를 흉내내기도 힘들 것이라는 거대한 좌절감도 맛보게 했다. 인물 묘사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의 생김새, 피부, 헤어스타일, 전체적인 분위기, 성격, 말투 등 모든 것이 아주 정밀한 묘사이다. 그런 섬세한 배경과 인물 묘사 속에서 사건이 전개되고,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러한 묘사는 읽는 독자들에게 장면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아주 친절한 설명이다. 묘사를 통해 머릿속에서 장면이 아주 잘 그려진다면 성공적인 묘사가 될 것이다. 나는 소설책을 읽고 이러한 정밀한 묘사에 우리 언어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좀 더 내 주변의 모습들과 장면들을 관찰해 보기로 했다. 그러면 내가 줄곧 쓰고 있는 글들이 보다 살아 숨 쉬지 않을까.


상상력

아무래도 책이다 보니,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듯이 장면을 직관적으로 나타내 주지는 못한다. 아무리 세밀한 묘사라도 머릿속 장면에 빈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은 독자 스스로 메꿔야 한다. 따라서 독자의 상상력도 총동원된다. 만약 소설 속 장면에서 꽃에 대한 묘사가 빠졌다면, 나는 내 맘대로 장미든 아카시아든 내 취향대로 상상하여 장면 속에 끼워 넣었을 것이다. 지나가는 행인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빠졌다면, 나는 그 행인의 얼굴에 아이유나 수지의 얼굴을 끼워 넣을 테다. 그게 더욱 나를 흥미롭고 재밌게 만드는 요소가 되고 몰입도 쉬워진다. 이런 식으로 소설책에서 다루는 묘사가 아무리 세밀하더라도 독자마다 비어있는 틈새를 각자 다르게 발견할 것이고, 그 틈새는 독자의 취향대로 꾸며질 것이다. 그렇게 작가와 독자가 함께 그려내는 소설은 드라마와 영화랑은 다르게 쌍방향에서 소통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책은 드라마와 영화랑 다르게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내가 소설의 매력의 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혹시 나도?

지금도 계속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내 경험에 의존한 에세이 형식의 글이 대부분이다. 그 글 또한 투박하고 정돈되어 있지 못하다. 이렇게 에세이만 줄곧 쓰다가는 내 모든 인생의 경험을 글로 다 풀어내게 될 것이고, 그 소재가 고갈되면 난 또 무엇을 쓸 것인가? 소설책을 읽고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결국 나도 소설책을 쓰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다양한 소설책을 읽고, 그 속에서 작가들을 통해 기법과 노하우를 전수받아야 할 것이다. 러다 글이 살아 숨 쉬는 게 느껴지는 날에 난 결국 내 소설을 쓰게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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