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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Nov 19. 2022

아이를 낳고 세상을 다르게 본다

"아이가 내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주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나의 유전자를 세상에 더 긴 생애주기로 남겨 놓는다는 뜻이다. 나 혼자서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100살까지 산다고 치면, 앞으로 60년만 더 살면 된다. 물론 60년의 세월도 길다면 길겠지만, 급속도로 진보된 세상 속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큰 변화가 있을까 추측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아이를 낳게 되는 순간 아이의 생애 주기로 인해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나의 흔적이 연장된다. 아이가 또 아이를 낳게 되면 가늠하기도 힘든 세월이 펼쳐진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낳고 세상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 많이 확장된 것이 느껴진다. 아이가 없을 때는 그저 내 삶이 끝나는 시점까지만 세상이 잘 돌아가면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뉴스에서 뭐라고 떠들든 미래 세대에 대한 얘기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이런 생각들이 180도 변했다. 세상이 더 오래 잘 돌아갔으면 좋겠고, 미래 세대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따라서 아이를 낳은 후 세상을 다르게 보는 내 시야를 하나씩 따라가 보기로 한다.


환경 문제

  아이를 낳고서는 가장 먼저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요즘 세계에서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지구가 뜨거워짐에 따라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나타난다.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40년 만의 폭설, 60년 만의 폭우, 100년 만의 고온 등의 심삼치 않은 징후들이 보도된다. 인류는 뒤늦게 깨닫고서는 친환경, ESG, 저탄소라는 용어를 앞세워 모든 나라가 환경 문제 대응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아이가 없을 때는 이런 환경 문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동안만 별 이상 기후 없이 버텨주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자식과 자식의 자식까지도 환경 문제로 괴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되돌릴 수 없기 전에 빠르게 이 환경 문제를 이 세대에서 극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앞선다.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마는 나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와 빨대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텀블러와 머그컵을 샀다. 조금이라도 친환경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회사에서도 종이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 연구과제가 있으면 관심을 갖고 알아보기도 한다. 이러한 작은 실천들을 아이를 위해서 또는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세대에서 환경 문제를 잘 해결해서, 아이가 사는 세상은 신선한 공기와 건강한 생태계를 갖춘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미래 세대의 짐

  요즘 세대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아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최악을 달리고 있다. 정부에서 이를 개선할 여지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2057년 정도면 고갈된다고 하는데, 그때 되면 내 나이가 70살이 넘어간다. 아마도 내 자식은 올라간 보험료율 때문에 아무리 일해도 부모세대 다수를 먹여 살리느라 많은 돈이 국민연금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요즘 세대가 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라고 하는데, 내 자식 세대는 '못 사는 부모를 부양하는 짐을 진 세대'라고 해야 하겠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급속한 경제 발달의 폐해인가, 서로 비교하는 민족의 특성 때문인가,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 세력 때문인가... 나라에선 별 다른 대책도 없 것 같지만, 나만큼은 결코 내 아이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자고 마음먹었다. 내 노후를 위해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고, 아끼지 않아야 할 때도 아껴야만 하겠다. 아이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아이가 배우고 싶다고 하는 게 있어도 내 노후가 스스로 보장될 수 있는 수준에서만 지원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게 장기적으로 서로에게 좋다는 판단이다. 어쨌든 나는 아이에게 '미래의 짐'으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무거운 발걸음으로 얼마 못가 지치지 않도록 말이다.


기술의 진보

  내 아이는 코로나19가 한창인 20년 7월 생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자라면서 마스크를 쓰는 생활 익숙해지고 있다. 가끔은 깜박하고 마스크를 안 씌워도, 본인이 마스크를 스스로 챙기기도 한다. 아이가 말이 늦었을 때는 '마스크를 쓰는 어른들의 입모양을 보지 못해서일까?'라는 의문도 들었었다. 걱정과는 다르게 지금은 내 귀에서 피 날정도로 말을 하니, 괜한 우려였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태어나자마자 마스크를 쓰는 생활을 하게 만든 아이에게 어른으로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답답한데 아이는 얼마나 더 답답할까. 인류는 아무리 기술 발달을 이뤄냈다고 하더라도 이런 전염병조차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코로나 위기 속에서 비대면, 거리두기 관점에서는 많은 기술 진보가 급속도로 이뤄진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미래 세대에서는 런 전염병에 더 빠르게 기술적으로 대응할 것이고, 답답한 마스크와도 점차 멀어지게 될 것이다. 기술의 진보만이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희망적으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유산이다. 앞서 얘기한 환경문제나 저출산 문제도 어쩌면 새로운 기술로 극복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엔지어로서 일을 하고 있지만, 내 미래세대에겐 좀 더 편리한 생활을 누리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좀 더 내 일의 가치를 스스로 재정립할 수 있었던 기회 되었다.


  아이를 낳기 전과 후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상당히 달라졌다. 내 유전자로 인한 세대의 영속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내 자식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까지도 생각해본다면, 세상은 더 희망적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이 떠드는 환경문제, 인권문제, 전쟁 문제 등을 가볍게 흘려듣지 못하겠다. 나부터 바뀌어야 내 자식이 좀 더 편한 세상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문제는 제대로 된 재활용부터 시작하고, 인권문제는 색안경 낀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전쟁 문제는 평화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렇게 아주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고자 한다. 엔지니어로서 주어진 일도 좀 더 미래세대를 위한 무게감을 갖고 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결국 이렇게 아이가 내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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